1987년 8월18일 대우와 일본 대표팀 친선경기에 미등록 선수 김종부의 출전은 화약고에 불씨를 던진 꼴이 됐다.
“김종부가 출전하면 소란하던 장내가 정리될 것으로 알았다. 그때 관중들의 분위기는 김종부가 출전치 않으면 당장 그라운드로 뛰어 내려와 난동을 부릴 만큼 극도로 흥분된 상황이었다.
안종복 사무국장이 벤치로 내려와 이재명 단장의 지시라며 그를 출전시키도록 했다. 김종부는 몇 개월 전부터 우리 팀에서 연습 해온데다 친선경기 출전은 별 문제가 없을 것 같아 내보냈다.”
대우 이차만 감독은 당시 김종부의 출전은 급박한 상황에서 불가피한 것이었지 결코 사전에 계획된 것이 아니라고 ‘의도적 사건’을 부인했다.
김종부는 후반 21분 이태호와 교체 투입돼 경기종료 3분전 박현용과 교체될 때까지 21분동안 등번호 9번을 달고 대우 선수로서 비공식 데뷔를 했다.
이재명 단장과 안종복 사무국장도 이감독과 마찬가지로 김종부 출전은 절대 사전 각본에 의한 것이 아니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종부가 출전치 않은데 대해 2만5천여 관중이 흥분, 그라운드 난입 직전까지 이르렀으며 사고를 방지하기 위해 프로축구위원회 이명 부회장의 즉석 출전 승인하에 이뤄졌다는 것이다.
대우는 이날 ‘특수 상황'을 내세우고 있으나 곳곳에서 우발적인 필연이 아닌 사전에 치밀하게 계획됐음을 발견케 된다.
대우는 친선 경기를 주최한 부산MBC와 후원을 맡은 부산일보가 이 경기를 ‘김종부 데뷔전’으로 광고할 수 있는 자료를 제공해 팬들의 관심을 촉발시켰다.
축구협회는 이같은 사태를 우려, 김종부를 출전시키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친선경기를 승인했으나 결과는 정반대였다.
프로위원회는 즉각 이사회를 소집, 3인 조사위원회를 구성했고 조사위원회는 대우의 고의성을 확인했다.
프로축구위원회는 조사위원(정남식 정창수 정일진)의 조사보고서를 토대로 8월27일 마라톤회의 끝에 대우가 프로위원회 상벌규정 8조4항을 명백히 위반했다고 결론짓고 벌금 최고액인 1천만원을 부과키로 의결했다.
그러나 대한축구협회는 1천만원의 벌금만 내면 어떤 불법, 위법행위도 할 수 있다는 선례를 남겨서는 안된다며 승인을 보류했으나 1천만원 벌금으로 결말이 났다.
그러나 대우는 1년간 벌금 납부를 미뤄오다 1989년초 프로위원회가 축구협회에 흡수통합 되면서 ‘결손 처리’돼 끝내 납부치 않았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