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래온 기자] 한입 베어 물자 양상추와 양파튀김이 후두둑 쏟아졌다. 두툼한 패티 사이로 녹아내린 치즈가 손가락에 묻고, 소스는 빵 밖으로 흘러나왔다. 버거를 고쳐 쥘수록 속재료는 더 빠져나왔다. 좋아하는 사람과 마주 앉았다면 적잖이 민망했을 모습이다.
맥도날드가 내놓은 대형 비프버거 '빅아치' 얘기다. 한 손에 들고 간편하게 먹는 햄버거의 장점은 커다란 몸집 앞에서 무색해졌다. 배를 채우기 전에 흘러내리는 재료부터 수습해야 했다.

빅아치는 지난달 22일 국내에 첫선을 보인 뒤 2주 만에 누적 판매량 100만개를 돌파했다. 단품 1만2400원, 세트 1만3900원이라는 높은 가격에도 소비자들의 지갑을 여는 데 성공한 것이다. 더 크고 든든한 버거를 앞세운 맥도날드의 승부수가 초기 흥행으로 이어진 셈이다.
상자를 열자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4.5인치 빵 사이로 113g짜리 순쇠고기 패티 2장과 화이트 체다 치즈 3장이 층층이 모습을 드러냈다. 크리스피 어니언과 생양파, 피클, 양상추까지 빈틈없이 들어찼다. 중량은 374g으로 빅맥(223g)의 약 1.7배. 열량도 1036㎉에 달한다. 한 끼 식사치고는 크기도, 무게도 만만치 않았다.
첫입은 기대 이상이었다. 패티에는 쇠고기를 구웠을 때 특유의 고소한 향이 살아 있었고 간도 적절했다. 치즈는 꾸덕하게 녹아들어 고기의 풍미를 한층 진하게 만들었다. 양이 많다는 사실을 떠나 맛 자체에도 공을 들였다는 인상이었다.

특히 크리스피 어니언이 돋보였다. 부드러운 빵과 패티 사이에서 바삭하게 씹히며 자칫 단조로울 수 있는 식감에 변화를 줬다. 진한 소스와 양파의 풍미도 고기와 치즈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었다.
아쉬운 대목은 피클이었다. 소스와 양파에 피클의 산미까지 더해지자 순간 새콤한 동치미를 연상시키는 맛이 올라왔다. 느끼함을 잡아주려는 의도였겠지만 오히려 고기와 치즈의 진한 풍미를 방해하고 있었다. 피클의 신맛이 유독 도드라지면서 잘 어우러지던 재료들의 균형도 흐트러졌다. 풍성한 구성이 반드시 풍부한 맛으로 이어지는 것은 아니었다.
처음의 만족감은 버거를 먹어갈수록 옅어졌다. 한입 크게 베어 물면 속재료가 떨어지고, 흘러내리는 재료를 잡으려고 빵을 누르면 소스가 새어 나왔다. 양상추를 다시 집어넣고 손에 묻은 소스를 닦는 일이 반복됐다. 어느 순간부터는 버거를 맛보는 시간보다 형태를 유지하는 데 더 신경이 쓰였다.
양도 부담스러웠다. 절반쯤 먹자 남은 반쪽은 다음 날 먹어도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처음에는 반가웠던 진한 치즈와 소스도 후반부에는 무겁게 다가왔다. 포만감은 확실했지만 마지막까지 맛있게 먹었다는 만족감과는 거리가 있었다.
패티를 두 장 넣은 선택에도 의문이 남았다. 고기의 양이 늘어난 만큼 풍미는 진해졌지만 그 자체로 특별한 맛의 차이를 만들어내지는 못했다. 차라리 한 장의 두툼한 패티에 집중하거나 고기의 육즙과 식감을 더욱 살리는 편이 낫지 않았을까. 재료를 추가하는 것과 맛의 완성도를 끌어올리는 것은 별개의 문제다.

가격표를 떠올리면 아쉬움은 더 커진다. 빅아치 단품 가격인 1만2400원이면 버거킹 와퍼 세트(9600원), 롯데리아 한우불고기버거 세트(1만1200원)를 선택하고도 돈이 남는다. 맘스터치 싸이버거 세트(7700원)와 비교하면 가격 차이는 4700원에 달한다. 물론 구성과 중량이 다른 제품이지만 소비자가 한 끼에 쓸 수 있는 예산이라는 점에서는 충분히 비교 대상이 된다.
고급 버거와의 가격 차이도 좁혀졌다. 쉐이크쉑의 쉑버거는 9200원이며, 파이브가이즈의 쇠고기 패티 2장짜리 치즈버거는 1만5900원이다. 빅아치에 3500원을 더하면 파이브가이즈 버거까지 선택할 수 있는 셈이다. 1만원을 훌쩍 넘는 가격에도 먹기 편하지 않다면 맥도날드를 고집할 이유는 그만큼 줄어든다.
차라리 빅맥에 쇠고기 패티와 치즈를 한 장씩 추가하는 편이 낫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익숙한 맛에 원하는 재료를 더해 취향에 맞게 즐길 수 있기 때문이다. 빅아치만의 특별함을 기대했지만 결국 기존 메뉴를 변형한 선택지가 더 매력적으로 다가왔다.
빅아치는 국내에서 처음 시도한 메뉴도 아니다. 2024년 포르투갈에서 처음 선보인 뒤 독일과 캐나다를 거쳐 유럽과 오세아니아 등으로 판매지역을 넓혔다. 영국과 아일랜드에서는 지난해 한정 판매에 이어 올해 1월 정규 메뉴로 편입됐다. 해외에서 먼저 수요를 확인한 제품인 만큼 국내 도입 전부터 기대를 모을 만했다.
하지만 해외에서 거둔 성과가 국내에서도 지속될지는 미지수다. 호기심에 지갑을 여는 소비자를 끌어모으는 데는 성공했지만, 기존 인기 메뉴를 밀어내고 재구매를 이끌어낼 경쟁력은 아직 검증되지 않았다. 100만개 판매라는 화려한 성적표 뒤에 꾸준한 수요를 확보해야 하는 과제가 남아 있는 셈이다.

실제 해당 메뉴를 시식한 영국 출신 밀리 씨는 "맥도날드에 가면 그날 기분에 따라 여러 메뉴 중 하나를 고르는데, 빅아치는 특별히 먹고 싶은 날이 떠오르지 않는다"며 "맛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메뉴를 제쳐두고 선택할 만한 이유가 부족하다"고 말했다.
캐나다에서 온 찰리 씨는 "친구들과 간단하게 식사하거나 이동 중에 먹기에는 부담스러운 메뉴"라며 "차라리 여러 사람이 나눠 먹을 수 있는 구성이라면 활용도가 더 높을 것 같다"고 평가했다.
최근 식품업계가 고물가와 1인가구 증가에 맞춰 용량을 줄이고 적정량 소비를 강조하는 흐름과 달리 맥도날드는 크기를 키우는 역발상을 택했다. 하나를 먹더라도 든든한 한 끼를 즐기려는 수요를 겨냥한 전략이다. 방향은 흥미로웠다. 다만 소비자가 원하는 것은 단순히 크고 푸짐한 버거가 아니라 먹는 과정까지 만족스러운 한 끼일 것이다.
마지막 한입을 삼키고 상자를 내려다봤다. 미처 먹지 못한 양상추와 양파 조각이 바닥에 흩어져 있었다. 손에는 소스가 묻어 있었고, 입안에는 고기와 치즈의 진한 맛이 남아 다소 텁텁했다.
빅아치는 더 많은 것을 담아 더 큰 만족을 주려 했다. 하지만 배를 가득 채우는 것과 마음에 오래 남는 것은 다른 문제다. 상자는 비웠지만 다시 찾고 싶은 마음까지 채워지지는 않았다.
/설래온 기자(leonsig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