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김현동 기자] 정부가 가상자산 과세를 2년 더 미룬다. 2020년 12월 과세 근거를 만든 뒤 네 번째 유예다. 정부 입장은 한 달여 사이 '예정대로'에서 '숙고'를 거쳐 '유예'로 바뀌었다. 정부가 든 근거 세 가지는 과거 유예 사유를 이름만 바꿔 다시 꺼낸 모양새다. 의제취득가액 기준일도 함께 늦춰져 유예 기간의 가격 상승분은 과세에서 빠진다. 과세체계의 구조적 문제는 2년 뒤 과제로 넘어갔다.
이형일 경제부총리가 제시한 가상자산 과세 2년 유예의 근거는 세 가지다. 해외에 비해 국내 시장이 불이익을 받을 수 있다는 우려, 디지털자산법 제정에 따른 변화 반영, 미국과의 과세정보 교환이 2029년부터 시작된다는 점이다.
미국 근거부터 좁다. 국회입법조사처가 이날 낸 보고서는 OECD 자료를 인용했다. 이에 따르면 암호자산 보고체계(CARF) 정보교환은 2027년 한국·일본·영국·독일 등 46개국에서 시작된다. 싱가포르·홍콩·UAE 등 27개국은 2028년이다. 2029년에 합류하는 나라는 미국 등 4개국뿐이다. 이 부총리도 질의응답에서 CARF 교환이 "내년부터 개시될 예정"이라고 답했다.
디지털자산법은 아직 발의 전이다. 입법 시기를 묻는 질문에 유영준 금융위 디지털금융정책관은 관계기관 협의를 "조속한 시간 내에" 마무리하겠다고만 답했다.
앞선 유예 사유는 그사이 하나씩 해소됐다. 1차(2021년 12월)는 과세 인프라 미비, 2차(2022년 12월)는 이용자 보호체계 정비, 3차(2024년 12월)는 CARF 시행 일정이 이유였다. 가상자산이용자보호법은 2024년 7월 시행됐고, CARF는 내년 시작된다. 이번 근거는 이용자 보호를 '디지털자산법'으로, CARF를 '미국 합류'로 바꿔 기준선을 한 칸 뒤로 옮긴 것으로 풀이된다.

참여연대는 이날 성명에서 해외 과세정보 확보는 집행력을 높이는 보조 수단일 뿐 과세 자체를 미룰 이유가 되지 않는다고 비판했다. 2년을 더 미루면 무엇이 달라지는지 설명하라고도 요구했다.
◇ 세가지 유예근거 모두 불충분
이번 결정은 여당 대표의 공식 제안 하루 만에 나왔다. 김민석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가상자산 소득 과세 유예를 정부에 공식적으로 제안했다.
정부 입장은 한 달여 새 세 번 바뀌었다. 이 부총리는 10월 22일 종합감사에서 업계와 국회 의견을 모아 최대한 숙고해 판단하겠다고 했다. 6일 국감에서는 김상훈 국민의힘 의원이 '예정대로 시행이 기본 입장이냐'고 묻자 의견을 폭넓게 수렴하겠다고만 답했다. 9월 재경위에서는 현행 세법상 내년부터 과세하게 돼 있다고 했었다.
여당도 마찬가지다. 윤후덕 민주당 의원은 22일 종합감사에서 여야가 합의해 의결한 법률을 유예하거나 폐지하는 것은 대한민국의 기본을 흔드는 일이라고 했다. 13일 뒤 당 대표가 유예를 공식 제안했다.
과세기준을 담은 국세청 고시도 같은 길을 걸었다. 조승래 재경위원장은 22일 정부가 고시를 10월 말까지 확정하겠다고 보고했다고 밝혔다. 그러나 28일 당정협의회에서는 조 위원장이 과세 여부를 결론 내기 전까지 고시부터 미루자고 요구했다. 고시는 끝내 나오지 않았다.
◇ 구멍은 그대로, 상승분은 비과세
입법조사처는 시행 시기보다 과세체계 자체를 문제 삼았다. 현행법은 가상자산 소득을 상금·복권당첨금 같은 기타소득으로 분류한다. 이 때문에 양도소득에 적용되는 이월과세가 적용되지 않는다. 값이 오른 가상자산을 배우자에게 증여한 뒤 팔면 증여 전 평가이익에는 세금이 붙지 않는다. 해외주식은 같은 문제가 지적돼 2024년 말 세법 개정으로 막혔다. 스테이킹·에어드롭 등 거래 유형별 과세기준도 불분명하다.
정부는 기타소득 분류를 유지할 방침이다. 조만희 재경부 세제실장은 거래 성격이 섞인 가상자산을 나누지 않고 포괄해 과세할 수 있는 게 기타소득의 장점이라고 했다. 다만 세법에 '대여'의 정의조차 없다는 점은 인정했다.
이번 정기국회에서 손대는 것은 손실 3년 이월공제 하나다. 정부는 일본도 이월공제를 허용했다는 점을 들었다. 그러나 일본은 올해 세법을 고치면서 자국 거래소 양도 소득을 아예 양도소득으로 바꿔 15%로 분리과세하기로 했다. 해외 거래소 소득은 최고 45% 종합과세를 유지한다. 국내 시장 불이익이라는 같은 고민을 세율 차등으로 푼 것이다. 한국은 이월공제만 가져왔다.
형평성 문제도 생겼다. 해외주식 양도소득에는 이월공제가 없다. 조 실장은 비과세인 국내주식과의 형평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결과적으로 가상자산이 해외주식보다 유리해졌다.
나머지 과제는 민관합동 워킹그룹으로 넘어갔다. 세부 과세기준은 2028년 상반기에 나온다. 의제취득가액 기준일도 2026년 말에서 2028년 말로 옮겨진다. 유예 기간의 가격 상승분은 과세에서 빠지는 셈이다.
네 차례 유예로 조세정책의 예측가능성과 신뢰가 흔들린 만큼, 이번 2년이 다섯 번째 유예의 준비기간이 되지 않도록 미뤄둔 구조 문제부터 다뤄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김현동 기자(citizenk@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