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세훈, "국가유산의 가장 큰 적은 국가유산청"

오세훈, "국가유산의 가장 큰 적은 국가유산청"

세운4구역 매장유산 심의 3차례 연속 보류…"행정의 탈 쓴 몽니"

오세훈 서울시장이 10월 7일 서울시청에서 열린 '민선 9기 취임 100일 기자간담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서울시]

[아이뉴스24 김한빈 기자] 오세훈 서울시장이 종묘 앞 세운4구역 재개발 사업과 관련해 국가유산청이 매장유산 보존방안 심의를 반복적으로 보류하는 것을 두고 "지금 국가유산의 가장 큰 적은 다름 아닌 국가유산청"이라고 직격했다.

오 시장은 5일 페이스북에서 "국가유산청은 사업 하나를 막으면서 승리했다고 여길지 모르지만, 그 대가로 문화유산을 향한 시민의 애정을 갉아먹고 있다"며 이같이 밝혔다.

그는 "종묘 맞은편 세운4구역은 낡은 도심을 새로 짓고 종묘에서 남산까지 녹지축을 여는 사업"이라며 "2004년 정비구역으로 지정됐지만 22년째 첫 삽도 뜨지 못했다. 지금은 국가유산청이 그 앞에 빗장을 걸어두고 있다"고 지적했다.

이어 "세운4구역은 세계유산지구 밖에 있다"며 "국가유산청은 종묘 경관을 해친다는 억지 주장을 앞세워 법적 의무도 없는 세계유산영향평가를 강요하고, 인가 취소까지 요구했다"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이제는 공사 전에 반드시 거쳐야 하는 매장유산 심의마저 8월, 9월, 10월 석 달 연속 보류했다"며 "처음에는 사업계획 변경이 확정되면 다시 보겠다고 했고, 다음에는 현지조사가 필요하다고 했다. 현지조사를 마치자, 유적을 제자리에 그대로 둬야 한다는 원위치 보존 원칙을 들고나왔다"고 꼬집었다.

오 시장은 "2024년 첫 심의 땐 일부 이전보존을 결정했었다"며 "공을 차 넣을 때마다 골대를 옮기는 심판에게 휘슬을 맡길 수 있느냐"고 말했다.

그는 "기준이 없다는 사실은 국가유산청 스스로도 털어놓았다. 올해 1월에는 '1분기 내로 시행령 개정이 완료되면, 국내법에 의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법적으로 요청할 계획'이라고 했고, 4일에는 앞으로 관리기준을 마련하겠다는 입장문을 냈다"며 "지금까지 법적 근거도 기준도 없이 주민들을 묶어왔다는 자백"이라고 직격했다.

이어 "(국가유산청은) 사안이 터진 뒤에야 서둘러 규정을 만들고, 그 규정을 몽둥이 삼아 주민들을 몰아세우고 있다"며 "(이는) 경기가 시작된 뒤에 규칙을 새로 쓰는 격"이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런 심의는 심의라 부를 수 없다. 행정의 탈을 쓴 몽니"라며 "국가유산청은 그 몽니를 당장 멈추고, 합당한 법적 근거와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심의하라"고 촉구했다.

오 시장은 "주민들은 이미 상당한 비용과 시간 소요로 국가 상대 250억원대 손해배상 소송을 냈다"며 "오는 18일 다섯 번째 심의마저 보류한다면, 그 결정은 곧 소송의 증거가 될 것"이라고 했다.

이어 "'유네스코사이드(UNESCOcide)'라는 말이 있습니다. '유네스코'와 집단 학살을 뜻하는 '제노사이드'를 합친 말로, 세계유산 보호를 명분 삼은 규제가 주민의 삶을 질식시키는 현상을 가리킨다"며 "지금 같은 근거 없는 행정갑질과 몽니가 계속되면 유네스코사이드에 대한 반감이 쓰나미처럼 우리 사회를 덮칠 것"이라고 경고했다.

그는 "서울시는 세계유산을 지키는 일에 누구보다 진심"이라며 "유산 보호의 탈을 쓰고 주민의 삶을 무기한 묶어두는 일만큼은 더는 지켜보지 않겠다"고 강조했다.

2025년 12월 12일 서울 종묘와 세운4구역의 모습. [사진=연합뉴스]

세운4구역은 서울 종로구 종묘 맞은편에 위치한 도시정비형 재개발 사업지다. 서울시는 노후 도심을 정비하고 종묘에서 남산으로 이어지는 녹지축을 조성한다는 계획이지만, 건축물 높이와 세계유산 경관에 미치는 영향 등을 놓고 국가유산청과 갈등을 빚고 있다.

특히 지난해 10월 서울시가 건축물 최고 높이를 기존 71.9m에서 141.9m로 높이는 정비계획을 추진하면서 세계유산영향평가 필요성을 둘러싼 논란이 본격화됐다.

서울시는 세운4구역이 세계유산지구 밖에 있어 세계유산영향평가를 의무적으로 받아야 할 법적 근거가 불분명하다는 입장이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사업지가 세계유산지구 밖에 있더라도 개발로 인해 종묘의 조망경관과 세계유산 가치가 영향을 받을 수 있어 객관적인 평가가 필요하다고 맞서고 있다.

매장유산 보존방안 심의를 둘러싼 갈등도 이어지고 있다. 국가유산위원회 매장유산분과는 2024년 1월 첫 심의 이후 올해 8월과 9월, 10월까지 모두 네 차례 심의를 보류했다.

지난달 21일 심의에서는 '원위치 보존 원칙 및 유적 주변 공간의 역사·문화적 정체성 확보' 등을 이유로 결정을 미뤘다.

이에 서울시는 지난달 30일 입장문을 통해 국가유산위원회가 2024년 첫 심의 당시 일부 유적의 이전보존을 전제로 보완을 요구했으나, 최근에는 원위치 보존을 원칙으로 제시했다며 심의 기준의 일관성에 의문을 제기했다.

시는 기존 심의 의견에 따라 추가 조사와 보존방안 보완, 발굴현장 복토까지 진행했는데도 심의가 반복적으로 보류되고 있다며 사업 지연에 따른 주민 재산권 침해를 우려했다.

그러면서 "국가유산청이 더 이상 심의를 반복적으로 보류하지 말아야 한다"며 문화유산 보존과 시민 권익을 함께 고려해 일관된 기준에 따라 조속히 결정을 내려달라고 촉구했다.

반면 국가유산청은 전날인 4일 입장문에서 세계유산영향평가가 개발을 막기 위한 규제가 아니라 유산 보존과 개발사업의 합리적인 공존을 모색하는 제도라고 반박했다.

국가유산청은 종묘에서 바라보는 경관에 세운4구역 개발이 미칠 영향을 객관적으로 검토해야 한다며 서울시가 평가를 실시하면 신속한 절차 진행을 지원하겠다는 입장이다. 아울러 세계유산별 특성을 반영한 관리기준을 마련하고 중복 규제를 정비하겠다는 방침도 밝혔다.

사업 지연이 장기화하면서 주민들의 반발도 커지고 있다. 세운4구역 주민대표회의는 지난달 22일 국가유산청장에게 공개질의서를 보내 매장유산 심의가 반복적으로 보류되는 이유와 판단 근거를 밝힐 것을 요구했다.

주민들은 정비구역 지정 이후 22년째 착공하지 못한 상황에서 누적 사업비가 약 8000억원에 이르고 매달 상당한 금융비용이 발생하고 있다며 조속한 심의 결정을 촉구하고 있다.

국가유산위원회는 오는 18일 세운4구역 매장유산 보존방안을 다시 심의할 예정이다.

/김한빈 기자(gwnu20180801@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