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고(故) 최불암(본명 최영한) 배우가 영원한 안식에 들었다. 고인의 장례미사가 지난 2일 서울 여의도성당에서 유족과 동료 후배들, 성당신자들 등 참석자들의 눈물속에 거행됐다.
배우 최불암은 영화와 연극에도 출연했지만 많은 사람에게 TV 연기자로 만났다. 마음씨 좋은 아버지 또는 푸근한 할아버지라는 느낌으로 다가왔다.

한 인간의 존재는 있을 때는 잘 모르다가 없어져야 비로소 소중함을 깨닫는다. 배우 최불암은 국민들의 마음속에 꽤 깊이 들어와있던 사람이다. 고인 관련 기사에 “70년대 80년대 90년대 2000년대 대한민국의 정서를 안으시고 사라져간 느낌. 수많은 시간이 빠져나간 느낌. 영원한 곳으로”라는 댓글이 달렸다.
익숙함에 속아 당연하게 여겼던 존재가 사라진 뒤에야 찾아오는 빈자리는 생각보다 훨씬 크게 다가온다. 벌써 그의 존재가 그리워진다.
필자도 오랜 기간 취재하며 방송 관련 행사에서 그 분을 만날 때마다 인사를 드린 적이 있지만, 좀 더 자세하게 대화를 나눌 기회도 있었다. 한 번은 2008년 제 3회 서울드라마어워즈때 심사위원으로 참가할 때였고, 또 한 번은 MBC 사극 ‘연인’이 끝나고, ‘수사반장’의 프리퀼인 ‘수사반장 1958’ 방송을 앞둔 2023년말 여의도에서 함께 식사를 했을 때였다.
최불암 배우와 대화하다 놀랐던 부분은 드라마와 교양물 등 방송 콘텐츠에 대해 정제된 언어로 예리한 분석을 가했던 모습이었다. 문화평론가 못지 않게 작품을 분석하면서 자신의 해석력을 보여준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평소 마음씨 좋은 아버지나 수더분한 노인의 이미지를 가지고 있는 것과는 조금 다른 느낌이었다. '하이퍼리얼리티'(Hyperreality)에 의한 착각이었을까.
하지만 배우 최불암은 ‘수사반장’ ‘전원일기’ ‘한국인의 밥상’ 등을 통해 따뜻한 목소리와 인자한 미소를 잊지 않았다. 무엇보다 우리에게는 따뜻한 마음을 선물로 남겨놓고 가셨다.
18년간 방영된 ‘수사반장’은 급속도로 산업화의 길을 걷던 1970~80년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모습인 생계형 범죄를 접한 박 반장(최불암)의 모습이 관전 포인트다. 범인에게 때로는 호통도 치지만, 따뜻한 말로 위로하고, 희망을 전파하는 아버지 같은 모습이었다. 범인에게 국밥 한 그릇 사주고 차비까지 주며 헤어지는 휴먼 드라마였다. 시청자들은 생계형 범죄자에 연민을 보였던 박 형사를 오래오래 기억한다. 그것은 어렵게 살던 시절 우리에게 적지않은 위로와 희망이 되기도 했다.
1980년부터 10월부터 2002년 12월까지 방송된 ‘전원일기’는 초창기만 해도 야외는 흑백화면으로 나갔다. 여기서 김 회장(최불암)은 보수적인 면모를 지니면서 양촌리 마을 사람들의 각종 분쟁(?)을 해결해주는 어른이었다. 농촌 드라마에서 인자하게 웃는 모습이 잘 어울려 국회의원 시절 그의 의원실에는 농촌 관련 민원이 유난히 많았다고 한다.
14년간 진행했던 ‘한국인의 밥상’은 최불암 배우에게 단순히 음식을 소개하는 프로그램이 아니었다. 사람을 만나고 삶을 배우는 여정이었다. 어머니에게서 자식으로 이어지는 손맛에서 세월의 지혜를 발견했고, 정성이 듬뿍 담긴 밥상에서는 이웃의 수고와 마음을 읽었다.
최불암 배우는 전국 곳곳에서 만난 사람들의 이야기에 귀 기울이며, 고단한 시절을 함께 견뎌온 가족과 이웃의 이야기가 자신이 마주한 밥상에 함께 담겨 있음을 발견했다. 그렇게 해서 평범한 삶 속에 깃든 위대한 가치를 시청자에게 설파했다.
‘전원일기’에서 금동을 입양하는 내용이 방송되면서 국민적 지지를 받았던 최불암 배우는 40년 넘게 초록우산 어린이재단 후원회장을 맡아 소외된 아이들의 손을 놓지 않았다. “스무살이 되면 어른이 되는 게 아니라 어린이를 도울 때 진짜 어른이 된다”는 것도 그 분에게 배웠다.
최불암 배우가 우리에게 남긴 따뜻한 마음은 디지털 시대에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덕목이기도 하다. 매일 방송되는 뉴스를 보면 국회의원들이 품격 떨어지는 막말로 자주 싸운다. 매번 욕설과 조롱, 비난 등으로 공격적이고 자극적인 숏폼 콘텐츠를 찍어내고 있는 정치인들도 배우 최불암이 보여준 푸근한 미소를 한번쯤 기억해봤으면 좋겠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