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유범열 기자] 가을이 깊어가는 지난 30일 오후 제주 애월읍의 9.81파크. 카트를 타고 트랙을 내달리자 선선한 바람이 얼굴을 스쳤다. 눈앞에 펼쳐진 억새밭과 어우러진 풍경은 상쾌함을 더했다.

약 1분30초간 트랙을 미끄러져 내려온 뒤 가장 먼저 한 일은 주머니에서 휴대전화를 꺼내 기록을 확인하는 것이었다. 해당 시간대 선두 자리를 아쉽게 놓치자 곧바로 다음 레이스에서 기록을 단축할 방법을 고민하게 됐다.
어느 구간에서 브레이크를 밟고, 코너를 어떻게 돌아야 랩타임을 줄일 수 있을지 머릿속으로 주행 경로를 되짚었다.
휴대전화 화면에 시선을 빼앗긴 사이 관제실에서는 주행을 마친 차량을 '자율주행' 모드로 전환했다. 차량은 별도 조작 없이 기자를 출발 지점으로 다시 데려다 놓았다.
차세대 레저 플랫폼 기업 디에스엠이 운영하는 레이싱 테마파크 '9.81파크'는 이처럼 자체 개발한 주행·안전 기술과 기록 경쟁 시스템을 앞세워 국내외 관광객을 끌어들이고 있다.
9.81파크의 대표 콘텐츠는 별도 동력 없이 중력을 이용해 경사로를 내려오는 '그래비티 레이싱'이다. 9.81이라는 이름 역시 표준 중력가속도 9.81m/s²에서 따온 것이다. 자체 개발한 전용 차량과 트랙을 활용해 헬멧을 착용하지 않고도 최고 시속 40㎞에 달하는 속도감을 즐길 수 있다는 게 특징이다.
전용 차량인 GR(Gravity Racer)은 지상고를 5㎝로 낮추고 무게를 약 300㎏으로 설계해 전복 위험을 최소화했다. 9.81파크에 따르면 2020년 7월 개장 이후 '주행 중 이용객 안전사고'가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자체 개발한 애플리케이션은 주행 전후로 이용객의 승부욕을 자극한다. 핵심에는 NFC(근거리무선통신) 기술을 활용한 주행 기록 관리 시스템이 있다.
이용객이 전용 앱을 설치하고 자신의 정보가 담긴 손목밴드를 차량에 가져다 대면 주행을 마친 직후 최고 속도와 랩타임, 시간대별 순위 등이 휴대전화 화면에 표시된다. 기록은 파크 내부의 대형 전광판에도 실시간으로 공개돼 다른 이용객과의 경쟁심을 자극한다.
우수한 기록을 낸 이용객에게는 더 높은 단계의 레이싱에 도전할 기회도 주어진다. 일정 기준을 충족하면 '마스터 라이선스'를 취득해 최고 시속 60㎞까지 속도를 낼 수 있는 'X코스'를 이용할 수 있다. X코스에서 월간 상위 10위에 오르면 연말 왕중왕전인 '그랑프리' 참가 자격도 얻는다.
단순한 일회성 체험을 넘어 기록 단축이라는 목표를 제시해 반복 방문을 유도한 결과 실제 9.81파크 제주의 누적 재방문 고객은 약 10만 명에 달한다. 파크 측이 추산한 재방문율은 10% 안팎으로, 국내 테마파크 가운데 최상위권 수준이라는 설명이다. 이용객 규모도 꾸준히 확대되고 있다. 9.81파크 제주의 연간 평균 이용객은 약 50만 명이며, 올 상반기 기준 누적 이용객은 300만 명에 이른다.

디에스엠은 제주에서 확인한 액티비티 수요를 바탕으로 9.81파크를 글로벌 종합 테마파크로 육성한다는 구상이다. 첫 단계는 내년 상반기 개장을 목표로 추진 중인 '9.81 인천공항'이다.
인천국제공항 제1여객터미널 인근에 들어서는 9.81 인천공항은 연면적 1만5338.94㎡, 지상 3층 규모의 실내형 테마파크다. 제주가 자연 지형을 활용한 야외형 모델이라면 인천공항점은 날씨와 계절의 영향을 최소화한 실내형 레저 플랫폼으로 조성된다.
수도권과 국제공항에 인접한 입지를 활용해 국내외 이용객의 접근성을 높이는 동시에, 기존 레이싱 중심의 시설을 종합 레저 공간으로 확장한다는 계획이다.
이를 위해 레이싱뿐 아니라 서바이벌 게임인 '아레나(ARENA)'와 '프로 아레나(PRO ARENA)', 스포츠랩 등 9.81파크 주요 콘텐츠의 규모도 제주점보다 확대한다. 다양한 연령대와 이용객이 즐길 수 있는 복합 체험시설로 경쟁력을 높이겠다는 구상이다.
해외 진출도 추진하고 있다. DSM은 현재 중국 항저우 인근 관광도시인 젠더시에 해외 첫 9.81파크를 조성하기 위해 현지 당국과 막바지 협의를 진행 중이다. 중장기적으로는 인천공항점을 해외 사업 확대를 위한 '글로벌 쇼룸'으로 활용해 전 세계 100곳에 9.81파크를 조성한다는 목표다.

최근 방한 외국인 관광객 증가도 새로운 성장 기회로 꼽힌다. 올해 3분기까지 9.81파크 제주를 방문한 전체 이용객 가운데 외국인 비중은 15.1%로, 전년 동기 8.5%보다 6.6%포인트 상승했다. 제주를 찾는 외국인 관광객 사이에서 체험형 관광 콘텐츠의 수요가 확대되고 있다는 분석이다.
이 같은 성장세는 실적에도 반영되고 있다. 올해 상반기 DSM의 매출은 289억원으로 전년 동기 대비 약 26% 증가했다. 같은 기간 영업손실은 34억8000만원으로 전년 동기(46억원)보다 24.4% 감소하며 적자 폭을 줄였다.
디에스엠 관계자는 "IP(지식재산권) 협업과 레저를 넘어선 9.81파크의 스포츠화를 통해 새로운 성장 동력을 확보해 나갈 계획"이라고 말했다.
/제주=유범열 기자(heat@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