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미국 시장에서 중국 업체를 포함한 글로벌 업체 간 협업이 확대되고 중국 유통기업의 유럽 시장 영향력이 강화되는 등 경쟁 환경 변화도 동시에 나타나고 있어 경쟁은 더욱 치열해질 것으로 예상한다."
유종인 LG전자 HS사업본부 경영관리담당은 지난 28일 3분기 실적발표 컨퍼런스콜에서 이같이 밝혔다.
중국 업체들이 현지 브랜드와 생산시설, 유통망을 활용해 시장을 넓히면서 LG전자가 오랜 시간 일궈온 미국과 유럽에서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는 진단이다.

LG전자 생활가전을 담당하는 HS사업본부는 3분기 매출 7조444억원, 영업이익 2592억원을 기록했다. TV 등을 담당하는 MS사업본부도 1467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전장과 냉난방공조를 포함한 4개 사업본부 모두 흑자다.
다만 경쟁이 치열한 시장에서 원자재와 물류비 상승분을 판매가격에 모두 반영하기는 쉽지 않다. LG전자는 프리미엄과 보급형 제품을 함께 강화하면서 설계·구매·생산·판매 전 과정의 비용을 줄인다는 방침이다.
현지 브랜드에 중국 제조역량 결합…유통망까지 넓어지는 공세

중국 가전업체의 해외 진출은 저렴한 자사 제품을 수출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소비자에게 익숙한 브랜드와 판매망을 확보하고 여기에 대량생산과 원가 경쟁력을 결합하는 방식으로 확대되고 있다.
북미에서는 메이디와 일렉트로룩스의 협업이 대표적이다. 양사는 올해 냉장고·세탁기의 생산과 판매를 아우르는 장기 협력을 발표했다. 지난 9월에는 미국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앤더슨의 세탁기 생산 합작법인이 출범했다. 공장을 개조한 뒤 2027년 상반기부터 프리미엄 통돌이 세탁기를 생산할 예정이다.
일렉트로룩스의 현지 브랜드와 시장 기반에 메이디의 생산·공급망 경쟁력을 결합하는 구조다. 일렉트로룩스는 이번 협력을 통해 북미 제품군을 확대하고 향후 3년간 비용 효율을 높일 계획이다.
하이얼은 앞서 2016년 미국 제너럴일렉트릭(GE)의 가전사업을 인수해 GE어플라이언스를 확보했다. 소비자 인지도와 유통·서비스망을 갖춘 현지 브랜드를 인수해 미국 시장에 진입한 사례다.
TV 시장에서는 중국 TCL과 일본 소니가 손을 잡았다. 양사는 지난 3월 소니의 TV·홈오디오 사업을 운영할 합작사 설립 확정계약을 체결했다. 지분은 TCL이 51%, 소니가 49%를 보유한다.
합작사는 소니와 브라비아 브랜드를 유지하면서 TCL의 디스플레이 기술과 생산 규모, 수직계열화된 공급망을 활용할 예정이다.
유럽에서는 중국 전자상거래 기업 징둥이 미디어마르크트와 자투른을 운영하는 독일 세코노미 인수를 추진하고 있다. 거래가 완료되면 중국 업체가 유럽 주요 가전 유통망에 직접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게 된다. 다만 현재 유럽연합(EU)의 규제 심사가 진행 중이다.

이들이 확보하려는 것은 공장만이 아니다.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은 '중국기업의 인수합병을 통한 해외진출 전략과 정책 시사점' 보고서에서 하이얼의 GE 가전사업 인수 목적을 브랜드와 가전 기술 확보로 정리했다. 해외 기업 인수로 브랜드 이미지를 높이고 기술 역량을 보완해왔다는 분석이다.
가전업계 관계자는 "중국 업체들이 자체 브랜드만으로 현지 소비자의 신뢰를 얻는 데 한계가 있다는 점을 인식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기존 브랜드의 이미지와 고객 기반은 유지하면서 지역별 생활환경에 맞춘 설계와 기능, 유통·서비스 경험을 흡수하고 자사의 제조 역량을 더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미국과 유럽의 전통 가전기업 중에는 100년 넘게 현지 소비자와 관계를 쌓아온 곳도 있다. 한국 업체로서는 중국 브랜드의 저가 제품뿐 아니라 중국의 생산·원가 경쟁력을 등에 업은 미국·유럽 브랜드와도 경쟁해야 하는 셈이다.
공장 옮길 때 효율도 높였다…설계·구독까지 수익성 방어
LG전자는 프리미엄 시장의 진입장벽을 높이면서 보급형 점유율도 확보하는 투트랙 전략으로 대응하고 있다. 주요 부품의 공급선과 구매 시점을 조정하고 사양을 최적화해 원가 부담을 줄이겠다고도 밝혔다.
김창태 LG전자 최고재무책임자(CFO) 부사장은 "저(低) 원가 국가의 현지 생산능력 확대와 공급선 다변화를 통해 원가 변동에 유연하게 대응하겠다"고 밝혔다.
인도·멕시코·미국·브라질·폴란드 등에 분산된 생산시설은 시장별 수요와 관세, 인건비, 물류비에 대응하는 기반이다.

가전업계 일각에 따르면, LG전자는 트럼프 행정부 출범 이후 관세 부담에 대응해 일부 제품의 생산을 다른 국가로 옮기는 과정에서 스마트팩토리 기술을 적용해 운영 효율을 높였다고 한다.
생산 이전에 투자가 필요했지만, 그 과정에서 확보한 효율이 수익성 방어에도 도움이 되고 있다는 설명이다.
부품 설계부터 극한 효율 추구…브랜드 신뢰로 판매가격 유지
LG전자가 최근 10년간 개발 단계부터 비용을 관리해온 점도 눈길을 끈다. 부품과 금형 설계 단계부터 여러 제품에 적용 가능하도록 개발해 비용을 줄여왔다는 것이다.
프리미엄 제품군과 브랜드 신뢰는 판매가격을 지키는 힘이다. 실제로 국내에서는 '가전은 LG'라는 인식 아래 가격이 다소 높더라도 제품과 서비스에 대한 신뢰로 선택하는 고객층이 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김민경 하나증권 연구원은 "물류비와 마케팅 비용, 원재료비 부담에도 운영 효율성 제고와 고부가 제품 비중 확대로 전년 대비 수익성이 개선됐다"고 평가했다. HS사업본부에 대해서는 중국 업체 대비 경쟁우위와 유통채널 내 입지를 강화하며 북미 시장점유율을 확대했다고 분석했다.

삼성전자는 '적자 탈출'부터 고심
반면 삼성전자는 가전사업의 적자 탈출이 과제다. 3분기 TV·생활가전 등에서 2000억원의 영업손실을 기록했다. 생활가전도 적자를 냈으며 단독 손익은 공개하지 않았다.
TV는 글로벌 스포츠 행사 종료 이후 수요가 감소했고, 생활가전은 구독과 B2B 확대로 판매가 늘었지만 원자재와 물류비 상승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
삼성전자는 프리미엄 제품 비중을 높이고 AI 제품과 서비스·플랫폼 등 고수익 사업을 확대할 계획이다. 박순철 CFO 부사장은 지난 29일 컨퍼런스콜에서 생산부터 판매까지 전 과정의 효율을 높여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고 밝혔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