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인공지능(AI) 반도체에 쓰이는 칩을 더 촘촘히 연결하는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경쟁이 치열해지고 있다.
미국 반도체 장비업체 어플라이드머티어리얼즈가 네덜란드 베시(Besi) 지분을 두 배 이상 늘리기로 한 가운데 ASML과 국내 장비업체들도 차세대 접합 기술 확보에 나섰다.

30일 업계에 따르면 어플라이드는 지난 26일(현지시간) 베시 지분을 기존 9%에서 약 20%로 확대하는 주식 매입 계약을 체결했다. 지난해 4월 첫 투자 이후 1년 6개월 만이다. 실제 주식 인도는 미국 반독점 심사를 거쳐 이뤄진다.
어플라이드는 ASML·램리서치·도쿄일렉트론·KLA와 함께 세계 5대 반도체 장비업체로 꼽힌다. 웨이퍼(반도체 원판)에 회로를 만드는 전공정의 증착·표면 처리 장비에 강점이 있다. 반면 베시는 완성된 칩을 정밀하게 붙이는 후공정 장비 전문업체다.
두 회사는 2020년부터 협력해 지난해 10월 통합 하이브리드 본딩 장비 '키넥스(Kinex)'를 공개했다. 어플라이드의 웨이퍼 표면 처리 기술과 베시의 정밀 접합 기술을 결합한 제품이다. 개별 칩의 표면을 세정하고 위치를 맞춰 웨이퍼에 붙인 뒤 접합 상태를 검사하는 공정을 하나의 시스템에서 수행한다. 여러 장비를 거칠 때 발생하는 오염과 정렬 오차를 줄여 생산 수율을 높이는 것이 특징이다.
이달 1일에는 협력 범위를 차세대 반도체 연결 기술로 확대했다. 기존 하이브리드 본딩을 넘어 서로 다른 반도체를 하나로 묶는 3차원 패키징 시장까지 공략하려는 구상이다.
하이브리드 본딩은 고대역폭메모리(HBM)의 적층 수가 늘면서 중요성이 커지고 있다. 현재 HBM은 D램 내부에 수직 연결 통로인 실리콘관통전극(TSV)을 만들고 칩 사이에는 작은 금속 돌기인 '범프'를 넣어 연결한다. 열과 압력으로 칩을 붙이는 열압착(TC) 본더가 이 공정에 사용된다.
반면 하이브리드 본딩은 범프 없이 칩 표면의 구리(Cu) 배선과 절연막을 직접 접합하는 방식이다. 칩 사이 간격을 줄일 수 있어 기존 8·12단보다 D램을 더 많이 쌓는 16·20단 이상 HBM에 유리하다. 데이터 전송 속도와 전력 효율을 높일 수 있지만 그만큼 정밀한 접합 기술이 필요하다.

세계 1위 노광장비 업체인 네덜란드 ASML도 이 시장에 진출할 가능성이 제기됐다. 반도체 분석업체 세미애널리시스는 지난 15일 ASML이 2022년 12월부터 2024년 11월까지 출원한 본딩 관련 특허군 27개를 분석해 장비 개발 가능성을 제시했다.
지난 3월에는 ASML이 기존 협력사인 프로드라이브 테크놀로지스, VDL ETG와 하이브리드 본더의 구조 설계에 착수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프로드라이브는 ASML의 극자외선(EUV) 노광장비에 쓰이는 정밀 구동장치를 공급하는 1차 협력사다. 다만 ASML은 하이브리드 본더 개발 여부나 출시 일정을 공식 발표하지 않았다.


국내에서도 장비 개발이 한창이다. 한화세미텍은 지난 2월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SHB2 나노' 개발을 완료했다. 2022년 1세대 장비를 납품한 지 4년 만이다. 올해 상반기부터 고객사 성능 평가를 추진했으며, 기존에는 SK하이닉스에 HBM용 TC 본더를 공급해 왔다.
SK하이닉스와 미국 마이크론을 주요 고객사로 둔 한미반도체도 연내 2세대 하이브리드 본더 시제품을 공개할 계획이다. 내년 상반기에는 인천 주안국가산업단지에 건설 중인하이브리드 본더 전용 공장(7공장)을 가동한다.
한미반도체는 기존 HBM용 TC 본더에서 AI 시스템반도체용 패키징 장비로 사업도 넓히고 있다. 지난달에는 'FC 본더 75'를 글로벌 고객사에 처음 출하했다. 미국 반도체 기업 인텔의 EMIB와 대만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업체 TSMC의 CoWoS 등 첨단 패키징 시장을 공략한 제품이다. 일론 머스크가 추진하는 미국 '테라팹'과도 TC 본더 공급을 논의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삼성전자의 반도체 장비 자회사 세메스도 차세대 공정 도입에 대비하고 있다. 지난 7월 '나노코리아 2026'에서 플라즈마 표면 처리부터 세정·접합·검사까지 하나의 장비로 수행하는 하이브리드 본딩 통합 시스템 개발 현황을 공개했다.
당시 도현호 세메스 연구소장은 고객사와 관련 요소기술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고 설명하며 "HBM5 이후 하이브리드 본딩 툴(Tool)이 본격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생각한다"고 밝혔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