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6년 6월11일 이탈리아에 2-3으로 패한 한국은 숙원인 월드컵 첫 승리와 16강 진입에 실패했다. 하지만 한국으로서는 최선을 다했고 충분히 자존심을 세울 수 있었다.
김종부는 이탈리아 전에서도 후반 25분 교체 투입돼 성실한 플레이로 AFP 등 외신들과 국내 신문으로부터 찬사를 들었다.
김종부의 무한한 가능성과 재질은 멕시코월드컵대회에서 다시 한번 확인된 것이다. 현지 언론의 찬사 속에 귀국길에 오른 김종부는 적잖은 기대와 희망을 가지고 있었다.
멕시코월드컵에서의 선전이 곤경에 몰린 자신에게 적잖은 힘이 돼 주리라 믿었다. 사실 국내에서도 큰 재목감 김종부에게 관대한 처분을 내려야 한다는 주장이 비등했다.
그러나 나중의 일이지만 김종부는 결국 대표팀에서 다시 제외돼 서울에서 열린 아시안게임 출전이 좌절됐다.
따라서 김종부를 둘러싼 현대와 대우의 싸움은 끝 모르게 계속 됐다.
어찌 보면 멕시코월드컵에서의 선전이 내연하던 불씨를 크게 되살린 촉매가 된 셈이다.구만리장천을 가로 지르는 김종부의 귀국 비행기는 그러니까 호랑이 입안으로 날아드는 형국이었다.
김종부 스카우트 파동이 시작된 지 1년6개월여가 지난 1987년 여름이 됐지만 대우와 현대는 각각 가계약을 내세워 ‘김종부는 우리 선수’라며 한 치의 양보도 않고 있어 ‘2중 계약’ 파문은 답보 상태였다.
김종부 또한 고려대로부터 징계 처분을 받아 그해 졸업을 못한 채 무적선수가 돼 답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이때 대우는 ‘김종부의 대우행’을 확인 겸 시위를 위한 기획을 했다.
이른바 1987년 8월18일 대우와 일본 대표팀 친선경기에 미등록 선수 김종부의 출전이 바로 그것이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