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 속 '남원 백자' 실체 드러났다…15세기 왕실 공납 가마 확인

문헌 속 '남원 백자' 실체 드러났다…15세기 왕실 공납 가마 확인

가마터 11기·폐기장 6기 발굴, 지방요서 드문 '갑번요' 구조 확인…문화유산 지정 추진

[아이뉴스24 최영 기자] 전북 남원에서 조선 전기 왕실에 공납할 고급 백자를 생산했던 것으로 추정되는 가마터가 확인됐다.

남원 왕정동 도요지 학술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조선 전기 백자 가마터. 조사 결과 가마 11기와 폐기장 6기, 수혈 6기 등이 확인됐다. [사진=남원시]

단순히 백자 조각이 출토된 데 그치지 않고 가마와 폐기장, 자기를 별도의 용기에 넣어 굽던 시설까지 확인되면서 문헌에 등장했던 ‘남원 백자’의 생산 현장을 구체적으로 보여주는 유적으로 주목된다.

남원시와 고고문화유산연구원은 국가유산청 허가를 받아 2024년부터 진행한 왕정동 도요지 학술발굴조사를 통해 조선 전기 백자 가마터를 확인했다.

조사지는 남원 왕정동 산15-11번지 일원으로, 사적 만복사지 뒤편 복음산 남사면에 자리한다.

2024년 시굴조사를 시작으로 조선시대 가마와 수혈, 폐기장을 확인했으며 지난해에는 지표조사와 라이다(LiDAR) 분석을 통해 가마터의 분포 범위를 살폈다. 올해는 기존 미조사 구간과 북측 지역까지 조사 범위를 넓혔다.

현재까지 확인된 유구는 가마터 11기와 폐기장 6기, 수혈 6기다. 가마는 대부분 땅을 일부 파고 경사지게 만든 반지하식 구조로, 2호 가마를 제외하면 약 15도의 기울기를 보인다.

이번 발굴에서 특히 눈길을 끄는 것은 가마 바닥에 남아 있는 '갑발'이다.

일부 가마에서는 갑발이 4열로 정연하게 배치돼 있었으며 수평을 맞추기 위한 원판형 받침도 함께 확인됐다. 갑발 위에는 도지미와 자기를 올리고 다시 갑발을 덮는 방식으로 사용한 것으로 조사됐다.

갑발은 자기를 불길과 재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별도의 용기 안에 넣어 굽는 데 사용하는 도구다. 조사단은 이 같은 가마를 지방요에서는 보기 드문 '갑번요(匣燔窯)'로 보고 있다.

이 방식은 고급 자기를 생산할 때 사용됐다는 점에서 왕정동 도요지의 성격을 밝히는 중요한 단서가 된다. 실제 조선시대 왕실용 백자는 갑발에 넣어 굽는 방식이 널리 활용됐다.

현장에서는 분청사기와 백자편을 비롯해 갑발과 도지미 등 자기 생산과 관련된 유물도 함께 나왔다. 가마 구조와 출토유물을 종합하면 왕정동 도요지의 중심 운영 시기는 15세기 초·중엽으로 추정된다.

이 시기가 중요한 이유는 경기도 광주에 왕실용 백자를 전담하는 관요가 설치되기 전이기 때문이다.

조선에서는 1466~1468년 사이 경기도 광주에 관요가 설치돼 왕실과 관청에서 사용할 백자를 체계적으로 생산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그 이전에는 지방 가마에서 생산한 백자를 공물로 받아 사용했다.

남원도 당시 주요 백자 생산지 가운데 하나였다.

조선 전기 문신 김종직의 '점필재집'에는 1442~1447년 사이 광주와 남원, 고령에서 백자가 제작됐고, 그 이전부터 해마다 백자를 공물로 바쳤다는 기록이 남아 있다.

이번에 확인된 가마터의 운영 시기와 생산방식이 이 기록과 맞물리면서, 문헌 속 남원 백자 생산의 실체를 고고학적으로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나온 셈이다.

특히 왕정동 도요지는 관요 체계가 자리 잡기 전 지방에서 왕실과 관청에 공급할 백자를 어떤 시설과 기술로 생산했는지를 살펴볼 수 있다는 점에서 학술적 가치가 크다는 평가다.

남원시와 조사기관은 왕정동 도요지가 조선 전기 왕실 공납용 백자를 생산했던 지방요일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고 추가 조사를 이어갈 예정이다.

남원시는 향후 학술조사와 함께 도요지의 체계적인 보존·관리 방안을 마련하고 문화유산 지정도 추진할 계획이다. 지역사회와 학계 전문가들이 발굴 현장을 직접 살펴볼 수 있는 현장공개 행사도 진행할 예정이다.

/전북=최영 기자(press140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