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건희 6주기] 백자 옆 '건희' 두 글자…국민이 누리고 세계가 본다

[이건희 6주기] 백자 옆 '건희' 두 글자…국민이 누리고 세계가 본다

수집 넘어 보존·발굴·해외 한국관 지원
2만3000여 점 기증, 지역 미술관에도 발길
국내 350만 명 관람…런던으로 이어진 문화보국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건희1666', '건희2235'.

국립중앙박물관 소장품인 조선 '백자대호'와 '청화백자산수문병'의 소장품 번호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수집하고 유족이 기증한 작품들이다. 인스타그램 등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작품과 함께 '건희'라는 표기를 담은 인증 사진이 공유되고 있다.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 [사진=삼성]

오는 25일 6주기를 맞는 이 선대회장의 문화유산은 지금도 영향력을 넓혀가고 있다.

그가 평생 모은 작품들은 국민의 문화자산이 됐다. 지역 미술관으로 관람객을 이끌고, 해외에서는 한국의 역사와 예술을 알린다. 수집과 보존에서 출발한 문화보국이 유족의 기증을 거쳐 이어지고 있는 것이다.

수집 넘어 보존으로…작품을 지킬 기반도 남겼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백자 접시. [사진=박지은 기자]
국립중앙박물관에 전시된 고(故) 이건희 삼성 선대회장이 기증한 백자 접시. [사진=박지은 기자]

이 선대회장은 작품을 보존하고 전시할 환경에도 투자했다. 정양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의 회고에 따르면 이 선대회장은 박물관에 필요한 지원을 먼저 물었다고 한다.

정 전 관장이 호암미술관에서 본 진열장을 요청하자, 이 회장은 독일 '글라스바우 한'의 첨단 진열장 20세트를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첨단 진열장이 들어오던 날 전국 공·사립 박물관 큐레이터들이 모여 조립 과정을 지켜봤다고 전해진다.

이종선 전 부관장은 이 선대회장이 "미술관은 설립이 끝이 아니라 시작이다. 특히 후손들에게 잘 남겨주기 위해서는 보존이 중요하다"며 보존과학실에 최신 장비를 도입했다고 회고했다. 작품을 확보하는 데서 나아가 다음 세대에 온전히 전하는 일까지 살핀 것이다.

국립중앙박물관에 소장돼있는 '청화백자산수문병' 일련번호는 건희2235.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고(故) 이건희 회장의 기증품 목록집. [사진=국립중앙박물관]

문화유산 발굴도 도왔다. 정 전 관장은 출토지를 확인하기 위해 유물을 사들일 자금이 필요했을 때 이 선대회장이 10억원을 지원했다고 회고했다. 이 지원은 출토 장소를 역추적해 창원 다호리 유적을 발굴하는 계기가 됐다고 한다.

해외에서 한국 미술을 접할 기반도 지원했다. 김홍남 전 국립중앙박물관장은 미국 메트로폴리탄미술관 등 해외 미술관의 한국관 개관에 이 선대회장과 홍라희 여사의 지원이 있었다고 설명했다. 백남준과 이우환 등 한국 작가의 해외 전시도 후원했다.

'이건희 컬렉션' 까치와 호랑이 © 국립중앙박물관. [사진=국립중앙박물관]

국민 품에 돌아온 유산…지역에서 세계로

수집과 보존은 2021년 4월 유족의 기증으로 전환점을 맞았다.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 등 유족은 미술품 2만3000여 점을 국가와 지역 미술관에 기증했다.

국립중앙박물관에는 고미술품 2만1693점, 국립현대미술관에는 국내외 근현대미술 작품 1488점이 전달됐다. 개인의 소장품이 국민 모두가 감상하고 연구할 수 있는 공공의 자산으로 바뀐 순간이다.

기증처에는 제주 이중섭미술관과 강원 양구 박수근미술관 등 지역 미술관도 포함됐다. 작가의 연고지에서 작품을 만날 기회가 늘어난 셈이다.

미술계 관계자는 "기증 작품을 보러 지역 미술관을 찾는 발길이 이어지고, 미술관이 지역의 명소로 주목받는 효과도 있었다"고 설명했다.

삼성에 따르면 2021~2024년 기증품을 활용한 국내 순회전은 35회 열렸고 약 350만 명이 관람했다. 이 가운데 26회는 서울·수도권 밖에서 개최됐다. 소장품 확충과 순회전이 함께 지역의 문화 향유 기회를 넓혔다는 평가를 받는다.

미국 워싱턴 D.C. 스미스소니언 국립아시아예술박물관에서 열리고 있는 이건희 컬렉션 해외 순회전에서 관람객들이 작품을 둘러보고 있다. [사진=삼성전자]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이 KH컬렉션 순회전 리셉션을 찾은 앤 공주 등을 맞이하고 있다. [사진=삼성]

전시 무대는 미국 워싱턴DC와 시카고를 거쳐 영국 런던으로 확장됐다. 시카고 전시에는 약 11만5000명이 방문했다. 이달 1일 영국박물관에서 개막한 특별전에는 국보 10점과 보물 13점을 포함한 작품 100점이 출품됐다.

이곳에서 대규모 한국 미술 특별전이 열린 것은 1984년 '한국미술 5천년전' 이후 42년 만이다. 내년 1월 31일까지 열리는 전시는 대중문화로 한국을 접한 세계인에게 한국 문화의 뿌리를 소개한다. 생전 해외 한국관과 작가 전시를 지원했던 노력이 이제 그가 남긴 컬렉션을 통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이 회장은 지난달 30일 영국박물관 행사에서 "저희 가족은 여러 세대에 걸쳐 예술과 문화를 보존하는 동시에 함께 나눠야 한다는 신념을 지켜왔다"고 말했다.

한편, 이 회장은 경기 수원 선영에서 삼성 계열사 사장단과 함께 이 선대회장 추모식에 참석한다. 이후 인근 삼성전자 인재개발원로 이동해 사장단과 점심 식사를 함께할 것으로 알려졌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