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안세준 기자] 사업의 책임은 사업자에게 묻고 경영의 권한은 규제로 묶어놓는다. 지금 케이블TV가 처한 현실이다.
케이블TV에는 채널편성권이 있다. 그러나 그 권한을 행사하는 일은 결코 간단하지 않다. 어떤 채널을 편성해야 하는지 법으로 정해놓고, 기존 채널을 교체하거나 송출을 종료할 때도 여러 절차와 규제가 뒤따른다. 경쟁력을 높이라고 요구하면서 정작 경쟁의 기본 수단인 채널 선택권은 제약하는 셈이다.

케이블TV 경영 현실은 이미 벼랑 끝에 와 있다. 2020년 1947억원이던 종합유선방송사업자(SO)의 영업이익은 2024년 148억원으로 92.4% 급감했다. 같은 기간 방송매출은 12.9% 줄었다. 매출보다 수익성이 훨씬 빠르게 무너지고 있다는 뜻이다.
사업자들은 이미 몇 년에 걸쳐 뼈를 깎는 구조조정을 하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콘텐츠 비용을 줄이고 채널 구성을 바꾸려 하면 규제의 벽에 부딪힌다. 적자는 시장에서 책임지라면서 비용을 줄일 권한은 제한하는 것이 과연 합리적인가 묻지 않을 수 없다.
문제의 뿌리는 오래된 방송 규제에 있다. 방송법 제70조는 종합유선방송사업자에게 채널 구성의 다양성을 확보하도록 의무화하고 있다. 공공·종교·장애인복지·공익채널과 지역채널에 대한 운용 의무도 두고 있다. 시행령은 채널 구성과 운용에 관한 세부 기준을 정한다.
이런 규제가 만들어진 배경은 이해할 수 있다. 케이블TV가 유료방송의 중심이던 시절, 제한된 채널을 특정 사업자나 분야가 독점하지 못하도록 하고 다양한 방송에 대한 접근권을 보장할 필요가 있었다.
하지만 시장은 달라졌다. 시청자는 OTT와 온라인 플랫폼에서 수많은 콘텐츠를 직접 선택한다. 케이블TV는 글로벌 OTT를 상대로 가입자와 콘텐츠 경쟁을 벌이고 있다. 그럼에도 채널 구성에 관한 규제의 기본 철학은 여전히 공급자가 부족한 채널을 나눠주던 30년 전에 상당 부분 머물러 있다.
더 심각한 것은 기존 채널을 교체하는 과정이다. 방송법 제85조의2는 정당한 사유 없이 채널 제공을 거부하거나 중단하고 채널 편성을 변경하는 행위를 금지한다. 본래 불공정행위를 막기 위한 규정이다. 여기에 채널계약 가이드라인에 따른 평가와 협의, 계약 종료 관련 절차가 더해지고 변경 내용에 따라 이용약관 관련 절차도 뒤따른다.
채널을 편성할 때도 규제, 바꿀 때도 규제, 계약을 끝낼 때도 규제다. 물론 PP에 대한 공정한 평가와 시청자 보호는 필요하다. 플랫폼이 우월적 지위를 이용해 특정 채널을 자의적으로 배제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공정한 절차를 보장하는 것과 기존 채널의 송출 지위를 계속 보호하는 것은 전혀 다른 문제다.
채널평가는 경쟁력 있는 콘텐츠를 가려내기 위한 수단이어야 한다. 평가 결과에 따라 새로운 채널이 들어오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채널은 교체될 수 있어야 한다. 그런데 정당한 평가를 거쳐도 채널 종료에 지나친 부담이 따른다면 사업자는 새로운 선택보다 기존 편성을 유지하는 쪽으로 기울기 쉽다. 게다가 일부 복수로 채널을 운영하는 사업자는 묶음판매에 끼워팔기까지 관행적으로 운영하고 있다.
들어올 때는 경쟁하지만 한번 들어오면 나가기 어려운 시장. 이것이 채널편성 규제가 낳을 수 있는 가장 큰 부작용이다.
더구나 채널편성권은 콘텐츠 대가 협상과도 직결된다. 플랫폼이 콘텐츠의 가격과 품질을 평가하더라도 합리적인 채널 교체가 어렵다면 협상에서 행사할 수 있는 선택권은 좁아진다. 비용은 계속 부담하면서 비용에 걸맞은 가치를 요구하기 어려운 구조가 될 수 있다.
그렇다면 묻지 않을 수 없다. 도대체 누구를 위한 규제인가.
시청권 보호는 시청자가 좋은 콘텐츠를 볼 권리를 지키는 일이다. 특정 PP가 한번 확보한 채널을 계속 유지하도록 보장하는 일이 아니다. 기존 채널을 보호하는 동안 새로운 콘텐츠가 진입할 기회가 줄어든다면 시청자의 선택권은 오히려 위축될 수 있다.
시청자를 보호하겠다는 규제가 시청자의 새로운 선택을 가로막는 역설이다. 그렇다고 채널편성권을 무제한으로 허용하자는 것은 아니다. 공익적 채널의 보호와 PP에 대한 공정한 평가, 시청자 사전고지는 필요하다. 다만 법정 의무편성의 범위와 세부 기준은 현재의 미디어 환경에 맞게 재검토해야 한다. 일반 PP 채널에 대해서는 합리적인 평가와 충분한 고지를 전제로 교체와 신규 진입이 실제로 가능해야 한다.
규제의 목적은 사업자를 보호하는 데 있지 않다. 이미 시장에 진입한 사업자의 지위를 보장하는 데 있어서도 안 된다. 규제는 시청자의 이익을 위해 존재해야 한다.
방송미디어통신위원회는 최근 제1기 비전으로 '국민과 함께하는 미디어 기본사회'를 제시했다. 국민의 자율적 선택권을 보장하고 지속가능한 미디어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유료방송의 채널편성 제도부터 그 원칙에 비춰 다시 살펴야 한다.
시청권 보호와 채널 기득권 보호는 다르다. 시청자를 위한 규제라면 기존 채널을 얼마나 오래 지켜주었는지가 아니라 시청자에게 얼마나 좋은 선택지를 제공했는지로 평가받아야 한다.
시청자에게 필요한 것은 오래 살아남은 채널이 아니라 살아남을 가치가 있는 채널이다.
/안세준 기자(nocount-ju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