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이엔드 경쟁' 부메랑…공사비 급등에 조합·시공사 갈등

'하이엔드 경쟁' 부메랑…공사비 급등에 조합·시공사 갈등

정비사업 수주전 과열, 무분별한 최고급화 전략 판쳐
건설공사비지수 138.74로 역대 최고 수준 기록해
원가 부담 마감 사양 조정 움직임…소송전 예고도

현대건설이 제안한 한남4구역(디에이치 한강) 조감도. [사진=현대건설]

[아이뉴스24 이한얼 기자] 정비사업 시장에서 '하이엔드 브랜드'를 앞세운 최고급화 경쟁이 거세지고 있지만 공사비 급등과 맞물려 건설사의 수익성 부담과 조합·시공사 간 갈등이 커지고 있다. 수주 당시 내세웠던 특화 설계와 고급 마감재 등이 원가 상승 국면에서 비용 부담의 부메랑이 되면서 사업 지연 우려도 높아지고 있다.

15일 업계에 따르면 당초 하이엔드 브랜드는 강남 3구나 용산 한남동 등 고가 주택 수요가 집중된 서울 주요 정비사업장을 중심으로 적용됐다. 하이엔드 브랜드는 일반 브랜드 대비 고급 자재와 특화 설계가 많이 적용되는 만큼 공사비 부담이 상대적으로 큰 편이다. 하지만 정비사업 수주전에서 시공권을 확보하려는 건설사들의 경쟁이 치열해지고 조합의 고급화 요구도 높아지면서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이 확대됐다.

정비사업의 무분별한 최고급화 전략은 기록적인 공사비 인플레이션과 충돌했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에 따르면 지난 8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74로 전년 동월 대비 5.98% 상승하며 역대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자재별 가격 상승세는 더욱 가팔라 일반철근의 생산자물가는 전년 대비 11.5% 뛰었고, 시장가격지수는 18.3% 급등해 일선 시공 현장의 직접적인 원가 부담을 가중시켰다.

하이엔드 단지에는 불탑·포겐폴 등 수입 주방가구와 외산 원목마루, 외관 커튼월룩, 스카이라운지 및 수영장 등 호텔식 커뮤니티 조성이 필수적이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글로벌 공급망 교란으로 건자재 가격과 인건비가 동반 폭등하면서, 하이엔드 단지의 3.3㎡(평)당 공사비는 과거 500만~600만 원 선에서 최근 900만~1000만 원 안팎으로 치솟았다.

시공사들은 치솟은 원가 부담을 공사비에 충분히 반영하지 못해 속앓이 중이다. 건설사들은 수익성 방어를 위해 고급 마감재나 외관 특화 사양을 일부 낮추는 식으로 설계도 조정하고 있다. 반면 조합 측은 수주 당시의 약속을 지키라며 강하게 반발해 양측의 품질 갈등이 극단으로 치닫고 있다.

서초구 반포동 강남원효성빌라 재건축 사업이 대표적이다. 해당 재건축조합은 공사비 증액과 하이엔드 브랜드 적용을 둘러싸고 대우건설과 이견을 좁히지 못했다. 조합은 최근 총회를 열어 대우건설의 시공사 지위를 해지했다. 대우건설은 조합의 요구가 지나치게 무리했다며 소송 등 법적 대응을 예고한 상태다.

공사비 증액을 둘러싼 사업장 파행도 현실화하고 있다. 서울 송파구 마천4구역 재개발 사업장에서는 시공사인 현대건설이 도급공사비를 기존 3834억원에서 6733억원으로 대폭 인상해 줄 것을 요청했다. 이는 3.3㎡당 공사비 기준으로 당초 584만 원에서 959만원으로 64% 이상 인상된 수준이다. 시공사와 조합 간 합의점을 찾지 못해 사업 지연 우려가 커지고 있다.

정비업계에서는 과거 출혈 경쟁의 대가가 공사비 증액과 사업 지연이라는 청구서로 돌아오고 있다는 평가가 나온다.

건설업계 한 관계자는 "수주 당시에는 조합원 표를 얻기 위해 최고급 외산 자재와 화려한 특화 설계를 경쟁적으로 쏟아냈지만 현재 원가 수준에서는 제안서대로 시공하면 대규모 적자를 피할 수 없다"며 "공사비를 현실화하거나 마감 사양을 낮추지 않으면 사업을 끌고 갈 수 없는 한계에 봉착했다"고 말했다.

/이한얼 기자(eo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