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기철 기자] 검찰청 폐지와 공소청·중대범죄수사청 출범으로 새 형사사법체계가 가동된 가운데 사회적 약자를 보호하기 위해 마련한 일부 제도가 오히려 범죄 피해자의 권리 행사를 어렵게 할 수 있다는 지적이 나왔다. 사건기록 열람부터 수사기관 선택, 기소 후 추가 증거 제출까지 절차가 서로 맞물리지 않아 피해자가 제도를 이용하기 어려워졌다는 것이다.
김예원 장애인권법센터 대표 변호사는 15일 CBS 라디오 '박성태의 뉴스쇼'에 출연해 "피해자를 정성껏 조롱하는 제도들이 이번에 대거 들어왔다"고 비판했다.
김 변호사는 전날 김지용 초대 중수청장 후보자 인사청문회에도 참고인으로 출석해 같은 문제를 제기했다. 피해자 보호 장치를 늘린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 사건 처리 과정에서는 절차가 복잡해지고 책임 주체도 불분명해졌다는 주장이다.

"전건 송치됐지만 기록 못 볼 수도"
김 변호사는 우선 사회적 약자 대상 범죄에 도입된 전건 송치와 사건기록 열람·등사 절차가 제대로 연결되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사회적 약자 대상 7대 범죄는 △성폭력과 △아동·청소년 대상 성범죄 △아동학대 △장애인학대 △스토킹 △노인학대 △가정폭력이다. 새 제도에서는 경찰이 이들 사건을 불송치하더라도 공소청에 사건을 모두 보내 다시 살펴보도록 했다. 필요한 경우 보완수사 절차도 거친다.
문제는 기존의 사건기록 열람·등사 절차가 불송치 결정에 대한 피해자의 이의신청을 전제로 설계돼 있다는 점이다. 경찰이 사건을 자동으로 공소청에 보내면 피해자가 별도로 이의신청을 하지 않을 수 있는데, 이 경우 오히려 기록을 열람하거나 복사할 근거가 불분명해질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이의 신청한 사람은 열람·등사를 할 수 있지만, 이의신청이 없는 전건 송치 사건은 열람·등사를 못 하게 될 것"이라며 "피해자를 국선 변호하는 변호사 입장에서는 이의신청서를 쓰지 않는데 열람·등사도 못 하는 상황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많은 것을 해주는 것처럼 만들어 놓았지만 실제로 들여다보면 피해자가 이용하기 어려운 제도들이 있다"고 했다.
피해자가 검사에게 직접 피해 사실을 설명하는 면담 절차도 실효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검사가 수사권을 행사할 수 없는 만큼 면담에서 들은 내용을 직접 증거로 확보하거나 보강하기 어렵다는 이유다.
김 변호사는 "피해자가 검사에게 두세 시간 울면서 얘기해도 그 내용을 증거로 사용할 수 없고 결국 경찰에 가서 같은 이야기를 다시 해야 한다"며 "피해자가 용기를 내서 얘기했는데 검사는 상담자 역할만 하게 되는 셈"이라고 지적했다.
"같은 피해도 죄명 따라 수사·보호 절차 달라져"
수사와 피해자 보호를 위한 각종 제도의 적용 범위가 서로 다른 점도 문제로 꼽았다. 중수청이 직접 수사하는 중대범죄와 사회적 약자 대상 7대 범죄, 피해자 국선변호사가 지원되는 범죄의 범위가 일치하지 않아 사건마다 어떤 절차가 적용되는지 따로 확인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변호사들도 매번 찾아볼 정도로 헷갈린다"며 "매일 생업에 바쁜 사람들이 이런 것까지 모두 챙겨서 이용하기 어렵다. 법이 너무 복잡해졌다"고 말했다.
같은 피해 사실도 수사기관이 어떤 부분에 주목하고 어떤 죄명을 적용하느냐에 따라 담당 기관과 사건 처리 절차가 달라질 수 있다.
김 변호사는 장애인이 감금·폭행을 당하면서 임금도 받지 못한 사건을 예로 들었다. 폭행에 초점을 두면 일반 폭행 사건이 되고, 임금 미지급을 중심으로 보면 임금체불 사건이 된다. 장애인 권익옹호기관이 개입하면 장애인학대 사건으로 처리될 수도 있다.
그는 "똑같은 사건인데 처음 누가 사건을 보고 어떤 수사관에게 배정되느냐에 따라 죄명이 달라질 수 있다"며 "이런 상황에서 7대, 8대, 10대 범죄를 만들어 놓는다고 제도가 제대로 작동하겠느냐"고 반문했다.
"관할 정하는 동안 증거 사라지거나 피의자 도망 우려"
경찰과 중수청 사이의 수사 관할이 명확하지 않아 사건 처리가 늦어질 가능성도 제기했다.
경제범죄의 피해 규모 등을 기준으로 중수청이 수사를 시작했지만 이후 실제 피해액이 기준에 미치지 못하는 것으로 확인되면 사건이 다시 경찰로 넘어갈 수 있다는 것이다. 반대로 경찰이 수사하던 사건의 피해 규모가 커져 중수청으로 이첩되는 경우도 생길 수 있다.
김 변호사는 "특히 지능범죄 수사는 밀행성과 신속성이 중요한데, 사건이 넘어가는 사이 증거가 사라지거나 피의자가 도망가는 일이 생길 수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들이 사건을 서로 맡으려 할 것이라는 전제도 현실과 다를 수 있다고 했다. 정치적 관심이 큰 사건과 달리 일반 형사사건이나 사회적 약자 사건에서는 수사기관이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 경우가 적지 않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대부분의 사건은 서로 적극적으로 맡으려고 하지 않는다"며 "사회적 약자 사건을 하다 보면 제발 사건을 맡아 달라고 여기 가서도 빌고, 저기 가서도 어떻게든 사건을 입건해 달라고 해야 하는 경우가 있다"고 말했다.
수사기관 사이의 관할 충돌을 협의회에서 조정하도록 한 제도에 대해서도 신속성이 떨어질 수 있다고 우려했다. 그는 "협의회를 거치는 사이 초반 증거가 없어지고 뒤늦게 수사가 시작될 수 있다"며 "오죽하면 협의회를 24시간 AI로 돌릴 것이 아니면 하지 말라고 했다"고 밝혔다.
"기소 뒤 새 증거 나오면 다시 경찰서 시작"
기소 후 새로운 증거가 발견됐을 때 이를 재판에 반영하는 과정에도 공백이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성폭력 피해자가 기소 후 당시 피해 사실을 알고 있던 지인과 다시 연락이 닿거나 과거 대화 내용을 새롭게 확보하는 경우가 대표적이다. 종전에는 공판 검사를 통해 추가 증거를 제출하고 필요한 보강 절차를 밟을 수 있었지만, 검사의 수사권이 사라진 뒤에는 다시 경찰 등 수사기관을 거쳐야 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 변호사는 "이런 경우 과거에는 공판 검사를 통해 추가 증거로 제출할 수 있었지만 지금은 검사가 직접 증거를 보강하기 어려워 다시 경찰을 거쳐야 하는 구조가 됐다"며 "검사가 판례 하나라도 찾아서 기록에 편철하거나 가해자의 범죄경력을 조회한 결과를 기록에 넣는 것도 이제는 수사 행위라는 이유로 못 하게 됐다"고 말했다.
피해자 변호사가 직접 증거를 수집해 제출하는 것도 법적으로 제한돼 있다고 설명했다. 그 결과 피해자 변호사의 역할이 피해 사실과 피해자의 상태를 재판부에 전달하는 수준으로 축소될 수 있다는 것이다.
김 변호사는 "이제 피해자 변호사가 할 수 있는 것은 간병인 역할뿐이다. '피해자가 많이 힘드니까 이런 것 좀 고려해 판단해 달라'는 정도 알려주는 역할만 하는 것"이라며 "이미 수사가 끝난 사건이라면 어느 수사관에게 자료를 가져가야 하는지조차 알기 어려울 수 있다"고 말했다.
이어 "사건을 담당했던 수사관이 계속 같은 자리에 있는 것도 아니고 이미 사건이 떠난 지 오래된 경우도 있다"며 "검사실에서 경찰에 제출하라고 하면 피해자는 누구에게 내야 하는지부터 막막해질 수 있다"고 했다.
"절차 늘수록 피해자 부담…법률비용 증가 불가피"
김 변호사는 새 체계에서 피해자가 자신의 사건이 어느 기관에서 어떻게 처리될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예전에는 피해자에게 어느 정도 기다려야 하는지, 언제 어떤 자료를 내야 하는지 설명할 수 있었다"며 "이제는 사건이 중수청으로 갈지 경찰에서 계속 처리할지, 보완수사 요구가 몇 차례 오갈지 전혀 예측하기 어려워졌다"고 말했다.
이어 "시정조치 등 여러 제도도 너무 복잡해 실제로 써먹기가 어렵다"며 "여러 절차를 거치는 사이 피해자는 더 힘들어지고 법률비용은 폭증한다"고 했다.
대안으로는 검사의 수사지휘 제도 복원을 제시했다. 김 변호사는 "현재 가장 효율적인 방법은 수사지휘를 복원하는 것"이라며 "수사지휘는 검사의 권한을 추가로 강화하는 문제가 아니라 책임의 문제"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책임자를 명확하게 해 사건이 제대로 진행되도록 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최기철 기자(lawch@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