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환자의 생명과 직결되는 필수의료기기의 공급중단 위험이 커지고 있지만, 정부가 확보한 공급정보를 활용한 사전 감시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15일 국회 보건복지위원회 소속 더불어민주당 소병훈 국회의원(경기도 광주시 갑)이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제출받은 자료에 따르면 2023년부터 올해 8월까지 접수된 의료기기 생산·수입 중단예고는 총 166건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는 2023년 13건, 2024년 16건에서 지난해 83건으로 급증했다. 이는 전년 대비 약 5.2배 증가한 수치다. 올해도 8월까지 54건이 접수됐다.
이 가운데 국내 대체품이 없어 의료현장의 진료 차질이 우려된 사례는 21건에 달했다.
식약처는 해당 사례에 대해 의료기기 제조 및 품질관리기준(GMP) 심사 신속지원과 긴급도입 의료기기 제도 등을 활용해 공급 차질을 방지했다고 설명했다.
실제 심장수술에 사용되는 필수 의료기기인 '캐뉼러'는 낮은 치료재료 가격으로 공급중단이 예고된 바 있다.
당시 국내 대체품이 없어 공급이 끊길 경우 심장수술이 전면 중단될 수 있는 상황이었다. 식약처는 보건복지부, 건강보험심사평가원과 협의해 수가를 조정하는 방식으로 공급을 유지했다.
그러나 이 같은 조치는 공급중단 예고 이후 이뤄진 사후 대응이라는 점에서 근본적인 예방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나온다.
필수의료기기 공급 차질로 실제 수술이 중단되거나 연기된 사례도 확인됐다.
지난해 미국 의료기기업체의 국내 공급중단으로 선천성 소아 척추측만증 수술에 필요한 '인공확장형 금속 늑골'을 확보하지 못해 수술이 중단됐다.
앞서 2019년에는 소아 심장수술용 인공혈관 공급중단으로 3세 어린이의 심장수술이 무기한 연기되기도 했다.

◇ 주요 의료기기 공급량 급감…5개 품목 공급실적 없어
정부가 보유한 의료기기 공급내역을 분석하면 업체의 공식적인 공급중단 예고 이전에도 공급량 감소 등 이상 징후를 파악할 수 있지만, 관련 자료가 사전 감시에 활용되지 않는 것으로 드러났다.
소 의원실이 식약처의 의료기관 공급내역을 분석한 결과, 생산·수입 중단 보고대상 의료기기 가운데 최근 2년간 공급량이 크게 감소한 9개 품목이 확인됐다.
특히 의료용보조순환장치, 이식형통증완화전기자극장치, 심부체강창상피복재, 외과용품, 복막투석장치용회로 등 5개 품목은 올해 7월 기준 의료기관 공급실적이 전혀 없는 것으로 나타났다.
나머지 주요 의료기기의 공급량도 큰 폭으로 감소했다.
범용카테터캐뉼러는 2024년 7월 1,388개에서 올해 7월 116개로 91.6% 줄었다. 같은 기간 일회용두피클립은 13만810개에서 1만1,810개로 91.0% 감소했다.
폐동맥카테터 역시 159개에서 32개로 79.9% 감소했으며, 의약품직접주입기구는 3만211개에서 1만742개로 64.4% 줄었다.
다만 해당 수치는 특정 월의 의료기관 공급실적을 비교한 것으로, 국내 전체 재고가 소진됐거나 실제 공급이 중단됐다는 의미는 아니다.
◇ 공급정보 확보하고도 분석 안 해…부처 간 정보 연계도 미흡
문제는 식약처가 의료기기 공급내역을 확보하고도 공급량 변화를 분석하는 데 활용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식약처는 소 의원실 질의에 "현재 공급내역 보고자료를 활용해 특정 의료기기의 공급량을 파악하고 있지 않다"고 답변했다.
의료기기 공급업체로부터 관련 자료를 제출받고 있지만, 이를 토대로 공급량 감소나 수급 불안 가능성을 사전에 확인하는 모니터링 체계는 운영하지 않고 있는 셈이다.
관계부처 간 정보 공유체계도 미흡한 것으로 나타났다.
식약처는 의료기기 생산·수입 중단예고 정보를 보건복지부에는 업체 보고 즉시 제공하고, 건강보험심사평가원에는 분기별로 전달하고 있다. 그러나 관련 정보를 자동으로 연계하는 시스템은 구축되지 않은 상태다.
심평원의 건강보험 청구자료와 식약처의 의료기기 공급정보를 상시 연계하는 방안에 대해서도 식약처는 자료의 형식과 활용 목적이 다르다는 이유로 장기적인 검토가 필요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다만 식약처는 국가필수의료기기 제도 도입을 위한 의료기기법 개정안에 공급내역 분석·평가 관련 규정이 포함돼 있으며, 향후 공급현황 모니터링을 위한 세부계획을 수립해 운영할 예정이라고 설명했다.
◇ 소병훈 “공급중단 신고 의존하는 관리방식 개선해야”
소 의원은 필수의료기기 공급관리체계를 사후 대응 중심에서 사전 예방 중심으로 전환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소 의원은 "심장수술에 필요한 의료기기가 끊길 뻔한 상황까지 발생했는데, 식약처는 이미 확보한 공급내역조차 공급량 파악에 활용하지 않고 있었다"며 "국민의 생명과 직결된 의료기기 공급을 업체의 중단 신고에 의존하는 방식으로 관리해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이어 "정부가 공급중단을 통보받고 뒤늦게 대책을 마련할 것이 아니라, 공급량이 급감하는 단계부터 위험을 찾아내야 한다"며 "식약처와 복지부, 심평원이 공급정보를 연계하고 필수의료기기의 재고와 대체품 확보 상황까지 점검하는 조기경보체계를 구축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광주=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