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홍성효 기자] 중국이 아연 순수입국에서 순수출국으로 돌아서면서 글로벌 아연 물량 흐름이 달라지고 있다. 중국의 정련아연 수출이 급증하면서 런던금속거래소(LME) 재고가 빠르게 늘고 가격 상승세가 꺾였지만 국내 주요 아연 제련업체인 고려아연과 영풍은 중국산 아연과 주력 판매시장이 크게 겹치지 않아 단기적인 영향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다만 중국산 물량 확대가 장기화할 경우 가격 경쟁이 심화할 가능성은 배제하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9일 업계에 따르면 중국은 올해 들어 정련아연 수출을 크게 늘리고 있다. 중국의 8월 정련아연 수출량은 4만668톤으로 최근 20년 사이 두 번째로 많은 월간 물량을 기록했다.
올해 1~8월 누적으로는 순수출 규모가 4388톤에 달하며 전통적인 순수입국에서 수출국으로 전환했다. 중국 내수 수요가 약해지는 가운데 중국과 해외 시장의 가격 차이로 수출 채산성이 확보되면서 물량이 해외로 빠져나간 것으로 분석된다.
중국 내 아연 수요가 부진한 상황에서 LME 가격이 중국 내 가격보다 높게 형성되면서 수출 채산성이 개선된 것이 배경으로 꼽힌다. 중국에서 매입한 아연을 해외 시장이나 LME 창고로 보내 차익을 얻을 수 있는 여건이 형성됐다는 의미다.
중국산 아연은 홍콩과 싱가포르, 대만 가오슝 등에 있는 LME 창고로 빠르게 유입됐다. 8월 중순 약 8만8000톤까지 떨어졌던 LME 등록 재고는 10월 초 12만6975톤으로 늘었다. 지난해 6월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LME 아연 3개월물 가격은 9월 초 톤당 4065달러까지 올라 4년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지만 10월 초에는 3715달러 안팎으로 낮아졌다. 중국산 유입이 서방 시장의 극심한 공급 부족을 일부 완화하면서 가격 상승세를 진정시키는 역할을 한 것으로 분석된다.
다만 현물가격이 3개월물보다 높은 백워데이션 상태가 이어지고 있어 서방 시장의 공급이 완전히 정상화됐다고 보기는 어렵다.

고려아연·영풍 “중국과 판매시장 달라”
국내 제련업체들은 중국의 수출량 자체보다 중국산 제품과 실제 판매시장이 얼마나 겹치는지가 더 중요한 변수라고 보고 있다.
고려아연은 중국산 아연 수출 증가가 당장 큰 충격으로 이어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입장이다.
고려아연 관계자는 중국 물량 증가가 시장 경쟁을 심화시키는 요인이 될 수는 있지만 아연 시장은 특정 국가의 수출 여부에 따라 시장 전체가 좌우되는 구조가 아니라며 구체적인 영향은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또 아연 제련수수료(TC)는 연초에 협의하는 구조이기 때문에 중국산 물량이 갑자기 늘었다고 해서 제품 가격이나 수익성이 즉각 움직이는 것도 아니라고 밝혔다.
고려아연은 2025년 아연 제품 수출 매출이 1조4313억원이었으며 수출 판매단가는 톤당 433만6757원으로 집계됐다. 사업보고서의 매출액과 판매단가를 환산하면 지난해 아연 제품 수출량은 약 33만톤이다. 같은 기간 아연 전체 판매량은 58만9495톤으로, 수출이 전체의 약 56%를 차지했다.
영풍 역시 중국산 아연과의 직접적인 경쟁은 제한적이라고 보고 있다.
영풍 측은 중국산 제품이 국내로 들어올 경우 가격 차이가 있더라도 물류비가 추가돼 격차가 줄어들고, 국내 고객사들은 가격뿐 아니라 규격과 품질, 필요한 시점에 안정적으로 공급받을 수 있는지 여부 등을 함께 고려한다고 설명했다. 해외 시장에서도 중국과 영풍의 주요 판매지역이 다르다는 입장이다.

영풍은 중국산 아연이 주로 동남아시아·중동·남미 등으로 향하는 반면 자사는 상대적으로 책임광물 요건을 중요하게 보는 시장에 수출하고 있어 주력 시장이 다르다고 밝혔다. 중국산 브랜드의 LME 등록 등이 확대될 경우 경쟁이 심해질 가능성은 있지만, 현재 글로벌 아연 시장에서는 이미 여러 업체가 경쟁하고 있는 만큼 단기간에 시장구도가 크게 달라지지는 않을 것으로 보고 있다.
영풍의 2025년 아연괴 제품 수출 매출은 5208억원, 수출 판매단가는 톤당 444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이를 기준으로 환산한 제품 수출량은 약 11만7000톤이다. 제품 기준 고려아연과 영풍의 지난해 아연 수출량을 합치면 약 44만7000톤에 달한다.
中 공급 늘어도 글로벌 시장은 아직 '부족'
중국의 수출 증가가 곧바로 글로벌 아연 공급과잉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국제납아연연구그룹(ILZSG)은 올해 세계 정련아연 생산량을 1399만톤으로 전망하면서도 수요가 공급을 약 1만9000톤 웃돌 것으로 예상했다. 중국 정련아연 생산량은 신규 설비 가동에 힘입어 전년 대비 3% 증가할 것으로 전망됐다.
반면 서방 정련아연 생산은 높은 에너지 비용과 원료 부족 등의 영향으로 감소세가 이어지고 있다. 로이터는 올해 상반기 서방 정련아연 생산량이 전년 동기 대비 3.4% 감소했다고 전했다.
아연은 철강재의 부식을 막기 위한 도금재로 가장 많이 사용되며 자동차·건설용 강판뿐 아니라 다이캐스팅과 동합금 등의 원료로도 쓰인다. 다양한 제조업에 폭넓게 사용되는 만큼 중국의 수출 확대가 지속될 경우 특정 산업이나 지역을 넘어 글로벌 가격과 거래 흐름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

업계에서는 중국의 순수출 전환을 단기적인 시장 변화와 구조적인 공급 변화로 나눠서 볼 필요가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현재 중국산 물량은 LME 재고를 늘리면서 서방의 공급 부족을 일부 완화하는 역할을 하고 있지만 중국의 생산 증가와 내수 부진이 동시에 이어져 수출이 구조적으로 확대될 경우 글로벌 시장에서 중국산의 가격 경쟁력이 높아질 수 있기 때문이다.
고려아연과 영풍도 현재는 중국산 물량과 주요 판매시장이 크게 겹치지 않아 직접적인 충격이 제한적이라는 입장이지만 중국산 아연의 유통망과 인증·등록 기반이 확대될 경우 경쟁 환경이 달라질 가능성은 열어두고 있다.
결국 중국의 순수출 전환 자체보다 수출 확대가 일시적인 차익거래에 그칠지, 중국의 공급 증가를 배경으로 장기적인 수출 구조로 자리잡을지가 국내 제련업체들에 새로운 변수가 될 전망이다.
/홍성효 기자(shhong082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