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아이뉴스24 김정수 기자] 최근 글로벌 빅테크 수장들과 인공지능 연구진들이 일제히 개발 속도 조절과 'AI 안전성(Safety)' 확보를 요구하고 나섰다.
AI가 단순 질문에 답하는 수준을 넘어 스스로 판단하고 시스템을 제어하는 단계로 진화하면서, 통제 불능이나 예기치 않은 독자 행동에 따른 위협이 현실화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러한 경고의 진정한 본질은 기술의 둔화가 아니다. 거스를 수 없는 다음 세상의 주도권이 결국 '에이전트 AI(Agentic AI)'에 있음을 알리는 역설적 신호이자, 본격적인 질주에 앞서 브레이크를 점검하자는 예방책이다.
따라서 우리는 통제 불능에 대한 두려움에 머물 것이 아니라, 안전성에 대한 선제적 대비를 무기 삼아 다음 단계의 주도권을 쥐어야 한다.
이러한 주도권 전환이 시급한 이유는 산업 현장의 AI 활용 양상이 이미 근본적으로 바뀌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생성형 AI 보급 초기에는 AI 챗봇에게 질의응답을 받아보는 보조적 활용에 머물렀다.
AI가 보고서 개요나 요약본을 출력해주더라도, 직원이 직접 사내망에 접속해 데이터를 정제하고 협조 메일을 작성해야 했다. 당시의 AI는 지식은 풍부하지만 실행할 손발이 없는 '말 잘하는 조수'에 불과했던 셈이다.
그러나 불과 1~2년 사이에 AI가 목적을 이해하고 실제 업무 시스템을 직접 제어하는 ‘에이전트 AI’ 패러다임이 산업 전면에 등장했다.
그렇다면 에이전트 AI는 어떻게 조수를 넘어 스스로 과업을 완수하는 '디지털 동료'가 될 수 있었을까. 그 비밀은 챗GPT 같은 거대언어모델(LLM)이라는 중앙 두뇌를 중심으로 네 가지 핵심 모듈이 유기적으로 결합해 움직이는 구조에 있다.
복잡한 목표를 연쇄적 사고(Chain-of-Thought)로 쪼개고 순서를 설계하는 기획 모듈이 동작하고, 이전 작업의 결과와 문맥을 저장하는 기억 모듈이 더해져 긴 업무 중에도 맥락을 유지한다.
여기에 사내 데이터베이스 검색, API 연동, 코드 실행 등 필요한 프로그램을 호출하는 도구 사용 모듈이 손발이 될 도구를 쥐며, 두뇌의 판단에 따라 실제 시스템 버튼을 누르고 데이터를 조작하는 행동 및 실행 모듈이 결합해 과업을 완수한다.
이 모듈들이 하나의 선순환 루프를 이루면서, AI는 단순 응답을 넘어 시스템을 실제 움직이는 단계로 진화했다.
실제로 유럽의 의료 플랫폼 닥터립은 코드 오류를 스스로 찾아 고치는 에이전트를 도입해 개발 검증 시간을 수주일에서 단 몇 시간으로 줄였으며, 국내 B2B 현장의 AI 상담원 알프는 교환·환불 요청 시 배송지 변경과 물류 접수까지 인간의 개입 없이 일괄 처리한다.
톰슨 로이터의 코카운셀은 변호사를 대신해 수십 년 치 판례를 검토하고 계약서 위험 요소를 도출해 수정안까지 자율 제시한다. 나아가 테슬라나 피구어 AI의 휴머노이드 로봇처럼 인간의 음성을 인식해 물체를 자율 조립·정리하는 '피지컬 AI'로까지 파급력이 확장되면서, 에이전트 AI는 노동 시장의 지형도를 뿌리째 흔들고 있다.
그러나 에이전트 AI가 시스템 제어 권한을 갖고 깊숙이 침투할수록, 앞서 언급한 '안전성 확보'라는 전제 조건은 더욱 치명적인 문제로 부상한다.
에이전트는 목표 달성에만 몰두하는 특성이 있어, 예측하지 못한 변수를 만났을 때 시스템을 멈추지 않고 최단 경로를 찾는 과정에서 주요 데이터를 훼손하거나 보안 규칙을 우회하는 등 '제어 불능' 상태에 빠질 수 있다.
설상가상으로 최근 글로벌 AI 환경은 기술적 위험뿐만 아니라 패권 경쟁이라는 또 다른 격랑에 직면해 있다. 거대한 내수 시장과 막대한 국가 자본을 앞세운 중국이 레거시 반도체 및 자체 NPU 생태계를 기반으로 저비용·고효율 AI 응용 서비스를 무섭게 키워내며 추격해오고 있다.
이에 대응해 미국과 EU는 에이전트의 시스템 제어 권한과 안전성을 규정하는 국제 규범을 선점하고 있으며, 주요 선진국들은 저전력 차세대 반도체와 산업별 특화 생태계 구축에 국가적 역량을 집중하는 상황이다.
이러한 기술적 안전성과 글로벌 패권 경쟁이라는 이중 과제 속에서, 대한민국이 에이전트 AI 시대를 선도하기 위해서는 명확한 실행 국가 전략을 수립해야 한다.
우선 중국의 하드웨어 추격 격차를 기술적 초격차로 따돌리기 위해 차세대 반도체 기술 선점에 나서야 한다. 에이전트 AI의 24시간 연쇄 추론 연산에 수반되는 막대한 전력 소모와 병목 현상을 해결할 CXL(컴퓨터 익스프레스 링크), PIM(지능형 반도체), 차세대 NPU(신경망처리장치)를 국가 전략기술로 지정해 저전력·고성능 연산 인프라를 국내 공급망으로 완벽히 자립화하는 것이 급선무다.
이와 함께 범용 거대모델 자체의 막대한 체급 경쟁에만 올인하기보다, 우리에게 유리한 특정 분야 특화 및 사내 맞춤형(Private/On-Premise) 에이전트 활성화로 승부수를 던져야 한다.
금융, 의료, 법률, 제조 등 고도의 전문성이 필요한 도메인 특화 에이전트와, 기업 내부 데이터 유출 걱정 없이 보안망 안에서 업무를 자율 수행하는 사내 맞춤형 프레임워크를 국가 차원에서 집중 지원할 필요가 있다. 한국 기업 특유의 독자 데이터와 에이전트 기술이 결합할 때 독보적인 B2B 응용 소프트웨어 경쟁력이 확보된다.
또한 에이전트의 자율적 행동이 산업 현장 사고로 이어지지 않도록 산학연 가상 실증(Red Teaming)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 대학의 AI 안전 알고리즘 기술과 기업의 실제 시스템 환경을 결합해, 에이전트가 금융망, 의료 시스템, 피지컬 로봇을 제어하는 과정에서 데이터 오남용이나 권한 우회, 제어 불능 등 위험 행동을 일으키는지 디지털 트윈 공간에서 미리 시뮬레이션하고 안전 가드레일을 설치해야 한다.
마지막으로 글로벌 시장 진출과 안전성 규범 선점을 위해 행동 제어 표준 및 킬스위치의 국제 공조를 이끌어야 한다. 미·EU 등 주요국 AI 안전연구소(AISI)와 연계해 에이전트가 시스템을 자율 제어할 때 적용할 인간 개입(Human-in-the-Loop) 승인 체계와 비상 정지용 기술적 킬스위치(Kill Switch)의 국제 상호인증 표준을 우리가 주도적으로 수립해 나가야 한다.
과거 우리는 "산업화는 늦었지만 정보화는 앞서가자"는 슬로건 아래 과감한 인프라 투자를 단행해 'IT 강국'의 성공 신화를 썼다. 지금 우리가 맞이한 에이전트 AI 혁명은 정보화 혁명 이상으로 파괴력이 큰 또 한 번의 역사적 골든타임이다.
AI는 더 이상 수동적으로 답변이나 출력하는 계산 도구가 아니며, 상황을 판단하고 시스템을 움직여 과업을 완수하는 에이전트 AI 시대는 거스를 수 없는 대세다. 빅테크들의 경고를 선제적 신호로 받아들여 차세대 반도체, 특화 에이전트, 가상 실증, 국제 공조를 아우르는 정교한 국가 전략을 다져야 한다.
그리해 과거 정보화 혁명을 이끌었던 저력으로 다시 한번 국가적 역량을 모아, 다가오는 에이전트 AI 세상을 선도하는 진정한 글로벌 'AI 강국'으로 대도약해야 할 때다.
<최형일>
숭실대학교 명예교수
/수원=김정수 기자(kjsdm05@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