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메달 뒤의 박수보다, 메달 전의 투자가 필요하다.

[기자수첩] 메달 뒤의 박수보다, 메달 전의 투자가 필요하다.

황서현·강준이·오상욱이 보여준 체육영재 육성의 힘…AI·스포츠과학 접목한 ‘지역 인재 성장사다리’ 구축해야

평택 펜싱 김서율 2관왕처럼 지역에 숨은 인재 발굴 중요…아시안게임·올림픽 때만 반짝 관심 아닌 지속 가능한 육성정책 필요

[아이뉴스24 이윤 기자] 아시안게임 시상대에 오른 133.8㎝의 작은 선수가 우리에게 던진 질문은 결코 작지 않았다. 우리는 금메달을 딴 선수를 축하하는 데 익숙하지만 그 금메달이 만들어지기까지 한 명의 체육영재에게 얼마나 오랫동안 관심을 기울였는지는 돌아볼 필요가 있다.

2026 아이치·나고야 아시안게임에서 17세 황서현은 여자 기계체조 평균대 정상에 올랐다. 한국 여자 체조가 아시안게임 평균대에서 금메달을 따낸 것은 1986년 서울 대회 이후 40년 만이다. 황서현은 대표 선발 과정에서도 개인종합 성적만으로는 출전권을 얻기 어려웠지만 평균대 종목별 경쟁력을 인정받아 추가 선발됐고 결국 자신의 첫 아시안게임에서 금메달을 목에 걸었다.

스케이트보드에서는 강준이가 새로운 역사를 썼다. 강준이는 남자 스트리트 결승에서 180.85점을 기록하며 한국 스케이트보드 사상 첫 아시안게임 금메달을 차지했다. 어린 시절부터 가능성을 보였던 선수가 국내외 경험을 쌓고 아시아 정상까지 성장한 것이다.

펜싱에서는 오상욱이 다시 한번 한국 펜싱의 힘을 보여줬다. 남자 사브르 개인전 결승에서 중국 선천펑을 15대13으로 꺾으며 정상에 섰고 남자 사브르 대표팀은 단체전에서도 일본을 45대44로 제압하며 아시안게임 4연패를 달성했다.

이들의 금메달을 단순히 몇몇 천재 선수의 등장으로만 바라봐서는 안 된다.

금메달은 어느 날 갑자기 만들어지지 않는다.

선수를 발견한 지도자가 있었고, 어린 선수의 가능성을 믿어준 부모가 있었으며 수없이 반복된 훈련과 실패가 있었다. 그리고 무엇보다 성장할 때까지 기다려주는 시간이 있었다.

그렇다면 우리 체육정책도 이제 질문을 바꿔야 한다.

‘누가 메달을 땄는가’에서 ‘다음 메달리스트를 우리는 어디에서, 어떻게 키우고 있는가’로 시선을 옮겨야 한다.

◇ AI 시대, 체육영재 교육도 달라져야 한다.

인공지능(AI) 시대의 체육은 과거와 전혀 다른 환경을 맞고 있다.

과거에는 지도자의 경험과 직관이 선수 육성의 상당 부분을 차지했다면 앞으로는 경기 영상, 움직임, 훈련량, 심박수, 회복 상태, 부상 위험, 상대 선수의 경기 패턴 등 방대한 데이터를 분석해 선수별 맞춤형 훈련을 설계하는 시대가 더욱 빠르게 다가올 것이다.

AI는 선수의 재능을 대신할 수 없다. 지도자의 역할도 대신할 수 없다.

그러나 숨어 있는 재능을 보다 빨리 발견하고 선수마다 다른 성장 속도를 분석하며 부상 위험을 줄이고 장점을 극대화하는 데 중요한 보조수단이 될 수 있다.

특히 체육영재 교육에서 AI의 가치는 크다.

현재의 기록이 뛰어난 아이만 선발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신체 조건과 반응속도, 운동학습 능력, 집중력, 기술 습득 속도와 성장 가능성 등을 장기간 데이터로 축적한다면 당장 1등이 아닌 아이에게서도 미래의 국가대표 가능성을 발견할 수 있다.

황서현의 사례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대표 선발 당시 개인종합 성적만 놓고 보면 기회를 잡기 어려웠지만 평균대라는 특정 종목에서 가진 경쟁력이 평가받았고 결국 아시아 정상에 올랐다.

영재교육은 이미 잘하는 아이를 골라내는 작업에 그쳐서는 안 된다.

아직 완성되지 않은 가능성을 발견하는 교육이어야 한다.

◇ 대한민국 체육영재의 출발점은 지역이다.

국가대표는 처음부터 국가대표가 아니었다.

동네 체육관과 학교 운동장에서 시작한 아이가 지역대회를 거쳐 전국대회에 출전하고 청소년 대표와 국가대표를 거쳐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무대에 선다.

따라서 체육영재 육성의 가장 중요한 출발점은 국가대표선수촌보다 오히려 지역일 수 있다.

평택 펜싱에서도 그 가능성을 확인했다.

평택시펜싱협회 유소년팀 김서율은 제55회 전국소년체육대회 남자 12세 이하부 플뢰레 개인전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이어 경기도 대표로 출전한 단체전에서도 정상에 오르며 개인·단체전 2관왕을 차지했다.

전국 정상에 오른 어린 선수가 지역에서 성장하고 있지만 펜싱은 축구나 야구 등 인기 종목과 비교하면 시민들의 관심과 지원을 끌어내기가 쉽지 않은 종목이다.

이 지점에서 우리는 생각해야 한다.

지역에서 전국체전과 전국소년체전 금메달리스트가 나왔을 때 축하 현수막 하나를 거는 것으로 체육정책의 역할이 끝나는가?

아니다.

오히려 그때부터 시작돼야 한다.

초등학교에서 발견된 재능이 중학교와 고등학교를 거쳐 실업팀과 대학, 국가대표로 이어질 수 있는 ‘선수 성장 사다리’를 지역사회가 만들어야 한다.

지역에 좋은 선수가 있어도 진학할 학교나 훈련할 팀이 없어 다른 지역으로 떠난다면 지역 체육의 자산은 축적될 수 없다. 한두 명의 스타가 등장했다 사라지는 구조도 반복될 수밖에 없다.

◇ 메달이 나왔을 때만 관심 갖는 체육에서 벗어나야 한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이 열리면 국민들은 비인기 종목까지 밤잠을 줄여가며 응원한다.

펜싱, 체조, 양궁, 사격, 역도 등 평소에는 언론에서 좀처럼 만나기 어려운 종목의 선수들도 그 순간만큼은 국민적 스타가 된다.

그러나 대회가 끝나면 관심은 빠르게 식는다.

다음 올림픽이 열릴 때 다시 선수들을 찾는다.

이제 이런 방식의 관심에서 벗어나야 한다.

우리가 환호하는 10초의 경기를 위해 선수들은 수년, 때로는 10년 이상을 준비한다.

국민이 메달을 기다리는 4년 동안 선수는 매일 훈련한다.

따라서 체육정책도 ‘대회 중심’에서 ‘성장 과정 중심’으로 바뀌어야 한다.

첫째, 지역 단위 체육영재 발굴 시스템을 구축할 필요가 있다. 학교와 교육지원청, 지방자치단체, 종목별 체육단체가 연계해 초등학교 단계부터 다양한 종목을 경험하게 하고 잠재력이 발견된 학생에게 전문적인 교육 기회를 제공해야 한다.

둘째, AI와 스포츠과학을 체육영재 교육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 수도권 일부 엘리트 선수만 첨단 장비와 데이터 분석의 혜택을 받는 것이 아니라 지역의 유소년 선수도 기본적인 체력·기술 데이터를 지속적으로 관리받을 수 있는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셋째, 학교급이 바뀌어도 운동을 계속할 수 있는 연계 시스템이 필요하다. 초등학교에서 뛰어난 선수가 발굴돼도 진학할 중학교 팀이 없다면 선수와 가족은 운동을 포기하거나 다른 지역으로 떠나야 한다. 초·중·고·대학·실업팀을 연결하는 종목별 지역 육성체계가 필요한 이유다.

넷째, 지도자에 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체육영재를 가장 먼저 발견하는 사람은 결국 현장의 지도자다. AI와 데이터가 아무리 발전해도 아이의 심리 상태와 성격, 성장 가능성을 살피고 기다려주는 것은 사람의 영역이다. 좋은 선수를 만들려면 좋은 지도자를 키우고 안정적인 지도 환경을 보장해야 한다.

다섯째, 비인기 종목에 대한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하다. 성적을 낸 뒤 예산과 관심을 집중하는 방식이 아니라 가능성이 있는 종목과 선수에게 장기간 투자하는 구조가 만들어져야 한다.

◇ AI가 찾고, 지도자가 키우고, 지역이 지켜줘야 한다.

AI 시대라고 해서 스포츠의 본질이 바뀌는 것은 아니다.

마지막 1점을 따내는 것은 선수이고, 평균대 위에 올라가는 것도 선수이며 넘어지고 다시 보드 위에 서는 사람 역시 선수다.

AI는 그 선수가 가진 가능성을 더 정교하게 발견하도록 도울 수 있다.

지도자는 가능성을 기술과 정신력으로 성장시키고 학교와 가정은 선수가 포기하지 않도록 지지해야 한다. 지방자치단체와 체육단체는 훈련할 공간과 성장할 경로를 만들어야 한다. 국가는 지역에서 발견된 인재가 세계 무대까지 성장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연결해야 한다.

그것이 AI 시대 체육영재 정책이 가야 할 방향이다.

황서현과 강준이 같은 10대 선수의 금메달은 우리에게 한국 스포츠의 미래가 이미 시작되고 있음을 보여준다. 오상욱의 금빛 찌르기 역시 세계적인 선수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라 오랜 훈련과 경험, 지원의 축적 속에서 완성된다는 사실을 다시 생각하게 한다.

그리고 평택에서 전국소년체전 2관왕에 오른 김서율과 같은 어린 선수들도 오늘 어디선가 같은 꿈을 꾸고 있다.

중요한 것은 그 아이가 유명해진 뒤 우리가 알아보는 것이 아니다.

유명해지기 전에 발견하고, 메달을 따기 전에 투자하며 실패했을 때도 기다려주는 것.

대한민국이 스포츠 강국을 넘어 스포츠 인재 강국으로 가기 위해 필요한 것은 메달 숫자만을 세는 정책이 아니다.

한 명의 아이가 가진 가능성을 지역에서 발견하고 학교가 키우고 과학과 AI가 지원하고 국가가 세계 무대까지 연결하는 체계다.

아시안게임과 올림픽 때만 체육영웅을 찾는 나라가 아니라 평범한 훈련장에서 미래의 영웅이 자라는 시간을 함께 지켜보는 나라가 되어야 한다.

메달이 나온 뒤 보내는 박수도 중요하다. 그러나 대한민국 스포츠의 미래를 바꾸는 것은 메달이 나오기 전부터 보내는 관심과 투자다.

/평택=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