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미래’를 위한다면서 지방의 미래부터 가져가나

[기자수첩] ‘미래’를 위한다면서 지방의 미래부터 가져가나

추경호 “지방의 미래 빼앗는 것”…이철우 “자주재원 줄여 중앙이 재배분해선 안돼”
미래대응기금 놓고 TK 두 단체장 한목소리…지방주도 성장의 출발점은 결국 ‘돈 쓸 권한’

[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이름은 ‘미래대응기금’이다. 국가의 미래를 준비하자는 데 반대할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문제는 그 미래를 준비할 돈을 어디에서 가져오느냐다.

대구와 경북에서 거의 동시에 같은 질문이 나왔다.

추경호 대구시장과 이철우 경북도지사다. 표현은 달랐지만 두 사람이 정부를 향해 던진 질문은 하나로 모인다.

기자수첩 [사진=아이뉴스 24DB]

“지방주도 성장을 하겠다면서 지방이 스스로 미래를 설계할 돈부터 줄이는 것이 맞느냐”

추 시장은 22일 대구 남구 아트파크에서 열린 아시아포럼21 초청 정책토론회에서 미래대응기금을 거론하며 작심한 듯 말을 이어갔다.

그는 기금 신설 자체를 문제 삼지는 않았다. 그러나 미래대응기금을 만들면서 지방교부세 재원에 영향을 주는 방식에는 분명한 반대 입장을 보였다.

추 시장은 “지방주도 성장이라는 것은 행정 권한을 지방으로 대거 내려보내고 재원도 지방의 자주재원을 대폭 확충해 줘야 되는 것”이라고 했다.

그래야 지방이 복지에 쓸지, 청년에게 투자할지, 미래 성장동력을 만들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다는 얘기다.

그러면서 발언의 수위를 한껏 끌어올렸다.

“지방정부가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 재원을 빼앗아 중앙정부가 미래를 대비하겠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 지방으로 보면 미래대응기금은 지방의 미래를 빼앗아가는 것이다”

하루 전 경북도청에서는 이철우 지사가 비슷한 문제를 제기했다.

21일 김민재 행정안전부 차관이 직접 경북도청을 찾아 미래대응기금과 지방교부세 개편안을 설명하며 협조를 요청했지만, 이 지사는 국가 차원의 미래투자 필요성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방 자주재원을 축소해 재원을 만드는 방식에는 동의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달했다.

이 지사는 “지방이 스스로 지역의 미래를 설계하고 투자할 수 있도록 안정적인 재정 기반을 보장하는 것이 진정한 지방분권”이라며 “국가와 지방이 재정적으로 함께 책임지는 방향으로 미래대응기금을 추진해야 한다”고 말했다.

대구시장과 경북도지사가 사전에 말을 맞췄다고 볼 근거는 없다.

그런데 결론은 닮았다.

추경호는 ‘지방의 미래를 빼앗는다’고 했고, 이철우는 ‘지방이 미래를 설계할 재정 기반을 보장하라’고 했다.

두 발언 사이에 놓인 단어가 바로 ‘자치’다.

지방자치는 지방정부 청사에 간판을 달고 단체장을 주민이 직접 뽑는 것만으로 완성되지 않는다.

스스로 결정할 권한과 그 결정을 실행할 재원이 함께 있어야 한다.

돈을 쓰는 결정권은 중앙이 쥐고 지방정부가 사업계획서를 들고 서울을 찾아가야 한다면 ‘지방주도’라는 말의 무게는 가벼워질 수밖에 없다.

이번 논란에서 눈여겨볼 부분은 지방교부세 법정률 19.24%라는 숫자 그 자체만은 아니다.

정부가 입법예고한 지방교부세법 개정안은 미래대응기금에 적립되는 금액을 지방교부세 재원이 되는 내국세 범위에서 제외하는 내용을 담고 있다.

법정률을 그대로 둬도 계산의 기초가 되는 재원이 달라지면 지방으로 돌아가는 돈에는 영향을 줄 수 있다.

추 시장이 토론회에서 “19.24%는 그대로 두고 내국세 모수를 건드리는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인 이유도 여기에 있다.

그렇다고 정부 논리를 외면할 수는 없다.

정부는 미래대응기금을 국가 전략 분야에 투자하면서 세수 변동에 대응하기 위한 장치로 설명하고 있다.

행정안전부는 기금 재원의 일부를 지방정부가 자율적으로 사용할 수 있는 일반재원으로 교부하고, 지방재정이 어려워질 경우 제때 지원할 수 있는 재정 안정화 장치도 마련했다는 입장이다.

미래대응기금의 상당 부분이 다시 지방에 사용돼 균형성장에도 도움이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그렇다면 오히려 질문은 더욱 선명해진다.

지방에 다시 돌려줄 돈이라면 왜 처음부터 지방이 스스로 판단해 쓸 수 있도록 두지 않는가.

바로 이 지점에서 ‘지원’과 ‘자치’는 전혀 다른 말이 된다.

중앙정부가 사업을 정하고 지방에 돈을 내려보내는 것은 지원이다.

지방이 자기 재원으로 자기 지역에 필요한 사업을 결정하는 것은 자치다.

둘은 비슷해 보이지만 지방분권이라는 관점에서는 출발점부터 다르다.

대구에는 신청사 건립, 산업구조 전환, 청년 유출 대응과 같은 숙제가 쌓여 있다.

경북 역시 인구감소와 지역소멸 대응, 산업 전환, 광역 SOC 등 적지 않은 재정 수요를 안고 있다.

대구와 경북만의 사정도 아니다. 경남 역시 미래대응기금 조성으로 지방재정이 줄어서는 안 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히고 있다.

따라서 이번 논쟁을 ‘정부 대 TK’의 지역 갈등으로만 보는 것은 문제의 본질을 놓칠 수 있다.

쟁점은 어느 지역이 얼마를 더 받고 덜 받느냐에 앞서 국가가 지방을 미래투자의 ‘주체’로 볼 것인지, 중앙이 정한 사업을 수행하는 ‘대상’으로 볼 것인지​에 가깝다.

추경호 시장의 표현은 거칠 만큼 직설적이었다.

이철우 지사의 표현은 상대적으로 절제돼 있었다.

그러나 두 사람이 가리킨 방향은 같다.

지방의 미래는 지방이 가장 잘 안다는 것이다.

정부가 진정 지방주도 성장과 균형발전을 국정의 중요한 축으로 삼고 있다면 지방정부에 책임만 요구해서는 부족하다. 결정할 권한과 그 결정을 실행할 재정적 기반도 함께 줘야 한다.

물론 지방정부 역시 자주재원이 늘어난 만큼 그 돈을 제대로 썼는지 더 무거운 책임을 져야 한다. 자율성 확대가 방만한 재정운용의 면허가 될 수는 없다.

그래서 미래대응기금 논쟁에서 정부와 지방 모두에게 필요한 것은 하나다.

돈을 누가 쥘 것인가의 싸움이 아니라, 누가 더 책임 있게 미래를 설계할 수 있는가를 놓고 제도를 다시 들여다보는 일이다.

‘미래대응기금’이라는 이름은 그럴듯하다.

하지만 국가의 미래와 지방의 미래가 따로 존재하는 것은 아니다.

지방의 미래를 줄여 국가의 미래를 만든다면, 그 미래가 과연 온전할 수 있을까.

지금 정부가 대구와 경북에서 나오는 목소리에 답해야 할 대목이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