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농지 투기는 막아야 한다. 그러나 농사를 지을 사람이 없어 이웃에게 논밭을 맡겨온 고령 농민까지 같은 잣대로 봐야 하느냐는 목소리가 대구 농촌 현장에서 터져 나왔다.
정부가 경자유전 원칙에 따라 추진 중인 농지 전수조사를 놓고 대구지역 농업인들이 조사 취지에는 공감하면서도 지방 농촌의 고령화와 관행적인 농지 임대차 현실을 충분히 반영해야 한다고 요구하고 나섰다.

특히 농지 처분 문제와 함께 공시지가의 25%에 해당한다는 이행강제금 부담, 농지가격 하락과 거래 위축 가능성까지 제기되면서 대구시가 정부에 제도개선을 건의하기로 했다.
추경호 대구시장은 21일 산격청사 제1회의실에서 농업인단체 대표들과 간담회를 열고 정부 농지 전수조사와 관련한 현장의 애로사항을 들었다.
정부는 농지 불법 투기를 막고 경자유전 원칙을 확립하기 위해 지난 4월부터 연말까지 1996년 농지법 시행 이후 취득한 농지를 대상으로 전수조사를 추진하고 있다.
이날 농업인들은 투기 목적의 농지 소유를 차단해야 한다는 정책 취지에는 공감했다.
그러나 문제는 지방 농촌의 현실이었다.
고령화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진 소유주가 이웃 농민에게 경작을 맡기거나 상속·증여받은 농지를 임대하는 사례까지 일률적인 기준을 적용할 경우 선의의 농민과 실제 농사를 짓는 임차농에게 피해가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황경동 대구시 농업인단체협의회 회장은 “농지 소유주 대부분이 고령층이며 건강문제 등 현실적으로 직접 농사를 짓기 어려워 농촌 현장에서는 오랜 기간 관행적인 임대차 방식으로 농사를 맡기고 임차료를 받아 생활을 이루는 경우가 많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이번 전수조사로 투기와 무관한 관행적인 임대차 관계까지 위태로워지는 상황”이라며 선의의 소유주와 임차농을 보호할 실효성 있는 대책을 요구했다.
농업인들이 특히 민감하게 받아들이는 것은 농지 처분과 이행강제금 문제다.
전성배 한국후계농업경영인 대구시연합회 회장은 상속·증여 등으로 농지를 물려받았지만 직접 농사지을 사람이 없어 이웃에게 임대한 사례를 거론하며 “강제처분 대상이 되고, 이행하지 않으면 공시지가의 25%에 해당하는 과도한 이행강제금까지 내야 하는 상황”이라고 호소했다.
농지은행이 모든 문제의 해법이 될 수 없다는 주장도 나왔다.
이영희 한국여성농업인 대구시군위군연합회 회장은 직접 경작이 어려운 고령농에게 농지은행 위탁 방안이 안내되고 있지만 농사 여건이 좋지 않은 농지는 현실적으로 농지은행을 이용하기 어려운 경우가 있다며 보완대책을 요구했다.
간담회에서는 전수조사의 파장이 농지 소유주를 넘어 청년농과 지역농협으로 번질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됐다.
이영섭 한국농촌지도자회 대구시연합회 회장은 지방에서는 농지를 사려는 사람을 찾기 어려운 상황에서 처분 부담을 느낀 소유주들이 낮은 가격에 매도하려 할 경우 농지가격 하락과 거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고 주장했다.
정창섭 대구농협운영협의회 의장도 농지가격 하락과 거래절벽이 장기화할 경우 농지 담보대출을 취급한 지역농협의 부실채권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의견을 냈다.
김고헌 대구시4H연합회 회장은 정부 지원을 통해 대출받아 농지를 구입한 청년농의 경우 농지가격이 하락하면 담보가치 저하로 금융 부담이 커질 수 있다며 수도권과 다른 지방 농촌의 현실을 반영해 달라고 요청했다.
다만 이날 제기된 농지가격 하락과 담보대출 부실 우려 등은 농업인단체와 농협 관계자들이 제시한 현장 의견으로, 전수조사에 따른 실제 영향을 판단하려면 향후 거래가격과 거래량 등의 확인이 필요하다.
조사를 수행하는 기초지자체에서도 제도 보완 요구가 나왔다.
이재성 군위군 부군수는 임차농과 고령농, 이웃 간 대리경작 등 현실적인 농지 이용관행과 현행 조사 방식이 충돌할 가능성을 거론하며 임차농 불안과 영농기반 약화 등을 우려했다.
서경현 달성군 부군수는 보다 구체적인 개선안을 제시했다.
청문 전까지 적법한 서면계약이나 농지은행 위탁으로 전환한 농지를 처분대상에서 제외하는 방안과 3년 미만 소유농지에 대한 농지은행 임대위탁을 한시적으로 허용하는 방안을 정부에 건의해 달라고 요청했다.
또 일률적인 수준의 이행강제금 대신 농업소득 등을 고려해 농민의 부담을 완화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대구시는 이날 나온 농업인과 기초지자체의 의견을 정리해 정부에 전달하고 지역 농업인의 피해를 최소화할 수 있는 제도개선 방안을 마련해 달라고 요청할 계획이다.
추경호 대구시장은 “정부가 농지 전수조사를 추진함에 있어 지방 농촌의 현실을 반영하지 못한 채 정책 취지와 달리 선의의 농업인들이 피해를 입어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대구시가 지역 농업인들의 목소리를 정부에 전달하고, 농촌과 농민의 현실을 반영해 정책이 개선될 수 있도록 적극 노력하겠다”고 강조했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