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팹만 지어선 안 된다"…800조 반도체 투자에 글로벌 소부장 유치전[현장]

"팹만 지어선 안 된다"…800조 반도체 투자에 글로벌 소부장 유치전[현장]

정부·지자체, 생산·R&D·양산 실증 아우르는 서남권 공급망 구상
앰코 광주 1조 증설·도레이 장기투자…쿠리타는 초순수 협력

[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반도체 공장이 완공된 뒤 소재·부품·장비 기업을 유치하면 늦습니다. 팹 건설과 생산라인 설계 단계부터 함께 들어와야 합니다."

17일 서울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6 소부장 국제투자 콘퍼런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 관계자들은 행사장을 찾은 글로벌 소재·부품·장비(소부장) 기업들을 상대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의 800조원 규모 서남권 반도체 투자를 집중적으로 소개했다.

정부의 구상은 메모리 팹 4기를 건설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클러스터 조성 초기부터 해외 소부장 기업을 유치해 생산과 연구개발(R&D), 양산 실증을 한곳에서 진행할 수 있는 공급망을 구축하겠다는 것이다.

17일 서울 롯데호텔 월드에서 열린 '2026 소부장 국제투자 컨퍼런스' 전경. [사진=권서아 기자]

산업통상부 관계자는 이날 "한국은 첨단 소재·부품·장비를 대규모로 구매할 팹이 바로 인접해 있는 시장"이라며 "팹 건설과 라인 설계 단계부터 소부장 기업이 현지에 들어와 협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행사에는 반도체와 이차전지, 바이오 분야의 국내외 기업 120여곳이 참석했다. 산업부와 지방자치단체들은 외국인투자 인센티브와 산업 기반을 설명했고, 행사장 곳곳에서는 기업 간 투자 상담이 이어졌다.

전남광주통합특별시가 글로벌 소부장 기업을 대상으로 지역 투자 여건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권서아 기자]

전남광주통합특별시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각각 400조원을 투자해 메모리 팹 2기씩을 짓는 계획을 앞세웠다.

하루 65만톤 이상의 용수와 6.3기가와트(GW) 전력, 826만제곱미터(㎡) 부지도 투자 여건으로 제시했다.

전남광주 측은 "앵커 기업이 입주한 후가 아니라 클러스터 조성 단계부터 글로벌 소부장 기업이 참여하는 구조를 만들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어 "기업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자원의 총량만이 아니다"며 "핵심은 필요한 시점에 실제로 공급할 수 있느냐"라고 강조했다.

이미 광주에 생산거점을 둔 글로벌 기업의 추가 투자도 이어진다.

반도체 패키징·테스트(OSAT) 기업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는 기존 광주 K4 사업장에 첨단 패키징 생산시설 2개동을 추가한다. 전체 투자 구상은 약 1조원으로 1000명 이상의 신규 고용이 예상된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송도·광주 사업장 투자 계획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권서아 기자]

박성호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 상무는 "광주 신축 건물은 다음 달부터 첫 삽을 뜰 것"이라고 말했다.

1단계에는 약 5000억원을 투입해 내년 11월부터 운영한다. 2층까지 가동하는 2단계는 5000억원 이상 규모로 미국 본사와 협의하고 있다.

앰코는 인천 부평 K3, 광주 K4, 송도 K5 사업장을 운영하고 있다. 송도에 추가로 짓는 테스트 시설도 올해 말 준공해 내년부터 가동한다.

앰코테크놀로지코리아가 주요 반도체 기업과 반도체 생태계를 소개하고 있다. [사진=권서아 기자]

한국은 앰코의 첨단 패키징 핵심 거점이다. 지난해 글로벌 매출 67억달러(약 9조2600억원) 가운데 약 40억달러(약 5조5300억원)가 한국에서 나왔다.

박 상무는 "어드밴스드 패키징 매출의 90% 이상이 한국에서 나온다"며 "어드밴스드 테크놀로지의 허브가 한국"이라고 말했다.

도레이첨단소재가 한국 내 R&D·설비 투자 현황을 소개하고 있다. [사진=권서아 기자]

탄소섬유 세계 1위 대기업 일본 도레이도 한국에 장기간 투자한 이유로 국내 산업 생태계를 꼽았다. 도레이는 1963년부터 한국에 투자해 삼성그룹과 제일합섬, 스테코·스템코 등의 사업에 참여했다.

구덕진 도레이첨단소재 경영기획실장은 "삼성, LG, SK 같은 경쟁력 있는 기업들과 협력할 수 있는 산업 생태계도 존재했다"고 말했다.

도레이첨단소재는 서울 마곡 한국도레이 R&D센터와 구미기술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전자·정보통신(IT) 소재와 탄소섬유, 고기능 플라스틱 등의 생산설비 투자도 이어가고 있다.

일본 쿠리타 계열 쿠리타한수는 반도체용 초순수를 비롯한 수처리 사업을 하고 있다. 수처리 약품 업체 한수와 설비·유지관리 업체 한수테크니칼서비스가 통합돼 현재의 사업 구조를 갖췄다.

반도체 등 전자산업에 필요한 초순수 설비와 수처리 약품, 유지보수를 함께 제공한다. 국내 R&D센터에서는 일본 쿠리타의 기술과 노하우를 국내 고객사에 맞게 적용하고 있다.

쿠리타한수는 지난달 고객사별 요구에 맞춘 수처리 약품을 생산하는 새 공장도 가동했다.

정부가 글로벌 소부장 기업을 끌어들이려면 결국 팹 건설 일정에 맞춰 전력과 용수 등 기반시설을 갖추는 게 관건이다.

한 반도체 업계 관계자는 "전력과 용수 공급 계획이 구체화돼야 기업들이 실제 투자 시점과 규모를 정할 수 있을 것"이라며 "현재는 인프라 여건을 먼저 봐야 하는 단계 같다"고 말했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