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설재윤 기자] 국내 컨테이너선 최초로 북극항로 시범운항에 나선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을 출발한 지 22일 만에 네덜란드 로테르담에 도착했다.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보다 거리와 운항기간을 줄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확인했지만 정기 상업항로로 자리 잡기까지는 넘어야 할 산이 많다. 안정적인 물동량과 추가 운항비용, 북극 환경 훼손 우려, 러시아와의 외교·안보 문제 등이 대표적인 과제로 꼽힌다.

15일 해운업계에 따르면, 팬스타 아크로호가 부산항에서 출발한 지 22일 만인 지난 13일 네덜란드 로테르담항에 안착했다.
화학제품과 중고차, 자동차 부품 등 수출 화물 약 737TEU를 싣고 출항한 아크로호는 지난달 31일부터 이달 9일까지 북극해를 통과했다. 이어 지난 12일 첫 기항지인 영국 펠릭스토우항에 도착한 뒤 로테르담으로 이동했다.
아크로호는 앞으로 폴란드 그단스크항에 기항한 뒤 다시 북극항로를 거쳐 부산신항으로 돌아올 예정이다. 왕복 운항거리는 약 3만㎞이며 귀항은 10월 초로 예정돼 있다.
이번 운항은 국적 선사의 컨테이너선이 북극항로를 이용해 유럽을 왕복하는 첫 사례다. 국내 선박의 북극항로 시범운항으로는 2016년 이후 10년 만이다.

부산에서 로테르담까지 북극항로의 거리는 약 1만3000㎞다. 수에즈운하를 거치는 기존 항로 약 2만㎞보다 35%가량 짧다. 운항기간은 약 10일, 연료 사용량은 약 30% 줄일 수 있을 것으로 팬스타는 예상한다.
정부는 이번 시범운항에서 확보한 극지 운항 경험과 연료 소비, 선체 거동 등의 데이터를 바탕으로 2030년 북극항로 정기 상업화를 추진한다는 구상이다.
다만 시범운항의 최종 성과는 부산 귀항까지 왕복 일정을 모두 마친 뒤 판단할 수 있다. 해양수산부와 팬스타도 10월 중 전체 운항을 완료한 뒤 정시성과 안전성, 경제성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거리는 짧지만 비용은 별개…물동량 확보가 관건
가장 먼저 검증해야 할 것은 경제성이다.
북극항로는 운항거리가 짧아 연료비와 시간을 줄일 수 있지만 극지 운항에 따른 별도의 비용이 발생한다. 해빙 상황에 따라 쇄빙선의 지원이 필요할 수 있고 극지 전용 선박과 전문 인력, 높은 보험료, 선체·장비 유지보수 비용도 고려해야 한다.
이번 항해에서는 러시아 쇄빙선의 호위를 받지 않았지만 다른 시기에도 같은 조건으로 운항할 수 있다고 장담하기 어렵다. 북극해의 해빙 분포와 두께가 매년 달라지는 데다 겨울철에는 운항 자체가 제한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짧아진 운항기간으로 절감하는 비용이 극지 운항에 추가로 들어가는 비용보다 커야 상업성이 성립한다.
정기선 운영에 필요한 물동량도 과제다. 컨테이너 정기선은 정해진 일정에 맞춰 반복 운항해야 하므로 출항지와 도착지 양쪽에서 일정 규모 이상의 화물을 지속적으로 확보해야 한다.
중국은 자체 수출 물동량을 기반으로 북극항로 정기 서비스를 시작했지만 한국은 계절과 운항 조건이 제한적인 북극항로에 안정적으로 투입할 화물을 확보할 수 있을지 검증이 필요하다.
화물 관리에도 별도의 기준이 요구된다. 북극해의 낮은 기온은 화물과 선박 장비의 성능에 영향을 줄 수 있어 품목별 저온 보관·운송 조건과 사고 대응 체계를 마련해야 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운항일수 단축으로 얻는 이익과 극지 운항에서 추가되는 비용의 균형을 따져봐야 한다"며 "정기 컨테이너 항로로 정착하려면 지속적인 물동량과 왕복 화물을 확보하는 것이 우선"이라고 말했다.
항로 열린 배경이 기후변화…환경 논란 불가피
환경 문제도 북극항로가 안고 있는 딜레마다. 북극항로의 운항 여건이 나아진 배경에는 기후변화로 인한 해빙 감소가 있다. 운항거리가 짧아지면 전체 연료 사용량을 줄일 수 있지만 선박 운항이 늘어나면 북극 생태계에는 새로운 부담이 발생한다.
선박에서 배출된 검댕인 블랙카본이 눈과 얼음 위에 쌓이면 햇빛 흡수량이 늘어 해빙을 촉진할 수 있다. 소음과 배기가스가 해양 생태계에 미치는 영향도 따져봐야 한다.

사고가 발생했을 때 대응이 어렵다는 점도 문제다. 북극해는 항만과 구조·방제 인프라가 부족해 연료나 화학제품이 유출되면 일반 해역보다 수습이 어렵고 피해가 장기간 이어질 수 있다.
운항거리 단축에 따른 탄소 배출 감소 효과와 북극 현지에서 발생하는 환경 부담을 함께 평가해야 하는 이유다.
러시아 협력 불가피…대러 제재가 외교 변수
외교적 불확실성도 크다. 북동항로의 상당 부분은 러시아 연안을 따라 이어지며 러시아의 관할과 운항 지원 체계 아래 놓여 있다.
통항 허가와 해빙 정보, 쇄빙 지원, 긴급 구조 등을 위해서는 러시아와의 협력이 필요하다. 그러나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미국과 유럽의 대러 제재가 계속되고 있어 국내 선사의 거래와 결제, 보험, 항만 이용 과정에 변수가 생길 수 있다.

북극항로가 러시아와 중국 중심으로 개발되고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한국이 항로 활용을 확대하는 과정에서 미국·유럽과의 제재 공조를 훼손하지 않도록 운항 방식과 협력 범위를 세밀하게 설계해야 한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북극항로는 높은 운항비용과 계절적 제약 때문에 단기간에 수에즈운하 항로를 대체하기 어렵다"며 "당장은 주력 노선보다 공급망 위기나 운하 통행 차질에 대응할 수 있는 보조 항로로 가능성을 점검하는 접근이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아크로호의 유럽 도착은 북극항로의 물리적 운항 가능성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그러나 한 차례 선박이 무사히 통과한 것과 정해진 일정에 따라 수익을 내는 정기 항로를 운영하는 것은 다른 문제다.
최종 평가는 아크로호가 부산으로 돌아온 뒤 시작된다. 왕복 운항에서 실제로 절감한 시간과 연료비, 추가로 발생한 비용과 정시성 등을 분석해야 북극항로의 상업적 가치도 구체적으로 드러날 전망이다.
/설재윤 기자(jyseo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