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고] 집만 짓는다고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기고] 집만 짓는다고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니다

함께하는 여유가 있는 교육·주거 도시 고양특례시를 바라며
한수연 | 고양특례시 MODU 교육연합회 회장

[아이뉴스24 김재환 기자] 집값이나 직장과의 거리도 중요하지만, 10년, 20년 한곳에서 아이를 키우며 뿌리를 내리는 이유는 그것만으로 설명되지 않습니다. 아침이면 아이를 안심하고 학교에 보내고, 저녁이면 가족과 함께 걸을 길이 있으며, 주말이면 멀리 떠나지 않아도 문화와 자연을 누리는 곳. 바쁜 하루 끝에 ‘여기서는 조금 쉬어도 되겠다’고 느낄 수 있는 도시, 저는 그런 고양특례시를 꿈꿉니다.

◇ 사람은 왜 한 도시에 오래 살고 싶어질까요?

고양에는 이미 좋은 자산이 많습니다. 북한산과 창릉천, 한강과 행주산성, 일산호수공원이 있고 킨텍스와 아람누리, 어울림누리가 일상 가까이에 있습니다. K-컬처밸리와 고양 아레나까지 제자리를 잡는다면 고양의 매력은 더욱 커질 것입니다. 일산의 축적된 인프라와 덕양의 새로운 가능성은 경쟁 대상이 아닙니다. 둘이 연결될 때 비로소 ‘고양’의 경쟁력이 완성됩니다. 서울과 가까워 선택하는 도시를 넘어 ‘고양이 좋아서 선택하는 도시’가 되었으면 합니다.

흔히 고양시를 ‘베드타운’이라고 하지만, 베드타운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닙니다. 하루를 치열하게 살아낸 사람이 돌아와 가족과 저녁을 먹고 쉬는 ‘여유와 쉼’이 있는 좋은 주거도시는 그 자체로 경쟁력입니다. 문제는 배우고, 문화를 즐기고, 아이를 키우기 위해 결국 도시를 떠나야 하는 현실입니다. 교육과 문화, 체육과 휴식이 도시 안에서 연결될 때 고양은 ‘머물러도 되는 도시’에서 ‘오래 머물고 싶은 도시’가 됩니다.

통학버스 신설, 학교 설립, 지역상생급식과 청소년 공간을 고민해 온 이유도 어른들의 행정과 도시계획에서 놓치기 쉬운 아이들의 일상을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최근 창릉6초와 창릉3중 신설 승인은 반가운 일이며, 이제는 지축고와 덕은고 등 신규 생활권의 고등학교 신설에도 적극적인 관심이 필요합니다. 아파트는 먼저 짓고 학교와 생활 인프라는 나중에 고민하는 도시가 되어서는 안 됩니다.

고양e통학버스는 멀리 통학해야 하는 아이들의 안전을 위해 꼭 필요했습니다. 하지만 안전하게 보내는 것만으로 충분하지 않습니다. 아이들의 한 끼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이들과 학부모에게 왜 우리 지역의 신선하고 안전한 농축산물을 먹어야 하는지 그 가치와 필요성을 안내하는 인식 개선에서 출발합니다. 광역 급식체계의 안정성을 살리면서 고양의 우수한 먹거리를 나누는 경험을 통해, 아이들은 내가 자라는 도시와 농촌을 이해하고 지역사회와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웁니다. 아이의 건강한 한 끼가 지역 농가의 안정적인 판로가 되고, 더 나아가 따뜻한 지역 공동체를 만드는 선순환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고교학점제 역시 지역 대학, 기업, 문화 자원을 교육 인프라로 활용한다면 배움터는 고양 전체로 확장됩니다. 초·중·고에서 대학까지 고양에서 미래를 준비할 수 있다면 머물 이유는 늘어납니다. 좋은 교육정책은 곧 좋은 정주(定住)정책입니다. 학교를 새로 짓는다면 도서관, 청소년 공간, 생활체육이 연계된 ‘교육·문화·복지 복합거점’으로 조성하여 낮에는 학생이, 방과 후에는 청소년이, 저녁에는 주민이 함께 이용하는 공간이 되길 바랍니다.

고양특례시 MODU 교육연합회 한수연회장.[사진=고양특례시 MODU 교육연합회]

◇ 시민의 선의가 행정의 문턱과 절차 앞에서 멈추지 않도록

저 역시 신도시에 부족한 청소년 공간을 만들고자 주민참여예산에 제안자로 참여했습니다. 감사하게도 사업이 선정되었지만, 현장에서 전용 공간을 확보하는 일은 부지 매입과 재정 매칭 문제로 막혔고, 향후 발생할 인건비와 관리비도 지속적인 부담이었습니다.

어렵게 확정한 예산이 사장되는 것을 막고자, 고정 관리비 부담이 없는 '청소년 어울림 프로그램'으로 사업 방향을 전환해 예산을 아이들에게 환원하는 대안을 제안했습니다. 그러나 당초 의결된 '공간 조성'을 '프로그램'으로 변경하는 것은 제도의 형평상 불가능하다는 행정의 답변을 받았습니다.

행정의 엄격한 절차와 원칙은 이해합니다. 하지만 현장의 한계로 공간 조성이 어려워졌을 때, 예산을 버리기보다 대안을 찾으려 했던 학부모들의 고민이 제도의 틀 안에서 멈춰 서야 하는 현실은 참으로 아쉬웠습니다. 학부모들은 아이들을 위해 시간을 쪼개 봉사하는 시민들입니다. 복잡한 절차를 공부하고 대안을 마련해도 제도적 한계에 부딪히면 열정은 지칠 수밖에 없습니다. 시민에게 완벽한 절차 숙지를 요구하기보다, 난관에 부딪혔을 때 대안을 함께 찾아주는 행정의 세심한 조력이 절실합니다.

◇ 손을 내밀었을 때 잡아주는 따뜻한 조력자들, 민·관·학·정의 희망을 봅니다

차가운 제도의 벽에 자칫 동력을 잃을 뻔했으나, 아이들의 삶을 바꾸기 위해 다시 손을 내밀었을 때 따뜻하게 잡아주신 지역사회의 조력자들이 계셨습니다.

아이들의 안전한 통학 환경을 위해 통학버스의 안정적 운영을 살펴주시고, 신도시 청소년 공간의 필요성에 깊이 공감하며 행정복지센터 활용이나 학교 시설 개방 등 다각도의 대안을 함께 모색해 주신 고양특례시장님의 관심과 노고는 현장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비록 현실적인 난관이 적지 않지만, 이처럼 끊임없이 현장의 문을 두드리고 소통하다 보면 아이들을 위한 좋은 대안이 열릴 것이라 기대합니다.

또한 ‘지역상생급식’ 취지에 공감하며 길을 찾아주신 고양특례시의회 환경경제위원장님, 학부모의 목소리를 정책으로 연결하고자 지혜를 모아주신 정책연구회 의원님들, 경기도교육청 미디어교육센터를 연결해 주신 마두·백석 지역 경기도의원님과 학교 신설을 위해 발로 뛰시는 도·시의원님들이 계십니다.

학생과 학부모의 목소리를 담은 설문조사 결과에 귀 기울여 주신 지역 국회의원님들과, 활동공유지에 깊은 관심을 표하며 응답해 주시는 교육청과 교육감님께도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처럼 현장의 진정성을 믿고 응원해 주시는 분들이 계시기에 저희가 활동을 이어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저희 연합회가 강조해 온 ‘민·관·학·정 소통과 협력 플랫폼’의 살아있는 희망입니다.

도시를 먼저 만들어놓고 부족한 인프라를 주민이 나중에 채우게 해서는 안 됩니다. 미처 채우지 못한 것을 채우기 위해 시민이 내민 손을 행정과 지역사회가 유연하게 잡아준다면 도시의 내일은 훨씬 더 따뜻해질 것입니다.

◇ 일산과 덕양이 아니라, 고양입니다

고양의 미래를 일산과 덕양으로 나누어 바라보지 않았으면 합니다. 고양특례시 MODU 교육연합회는 덕양에서 출발했지만 지금은 고양 전역의 학부모들이 함께하고 있습니다. 아이들의 통학과 교육, 안전한 환경을 바라는 마음에는 지역의 경계가 없기 때문입니다. 일산의 노후도시 재정비와 덕양의 신규 인프라 확충은 함께 가야 합니다. 새로운 곳에는 필요한 것을 채우고, 오래된 곳에는 새로운 가치를 더하는 것이 고양의 균형발전입니다.

시민은 현장을 알고, 행정은 제도를 압니다. 학교와 대학은 교육을 알고, 의회는 정책과 예산을 압니다. 각자가 잘 아는 것을 연결하면 됩니다. 갈등과 비난보다는 잘한 것은 칭찬하고 부족한 것은 채우며 서로의 역할을 존중하는 소통 플랫폼이 필요합니다. 연합회의 MODU에도 Meet(만나고) Open(열고) Dream(꿈꾸고) Unite(연결하다)라는 마음을 담았습니다.

통학버스, 학교 설립, 급식, 청소년 공간, 고교학점제 연계까지 바라는 것은 하나입니다. 고양에 살아야 할 이유를 하나씩 더하는 일입니다. 아이에게는 좋은 학교와 건강한 한 끼가 있고, 청소년에게는 머물 공간이 있으며, 부모에게는 안심되는 환경이 있는 도시.

북한산에서 호수공원까지, 초등학교에서 대학까지 모든 것이 일상으로 연결될 때 비로소 ‘고양에서의 삶’이 완성됩니다. 집만 짓는다고 도시가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 안에서 살아갈 사람의 하루와 아이들의 내일까지 함께 지어야 합니다. 시민의 선의가 실제 변화로 이어지고, 사람과 사람이 연결되며 함께하는 여유가 있는 도시. 저는 그런 고양에서 오래 살고 싶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작은 노력들이 따뜻한 영향력이 되어 시민 모두의 행복으로 돌아오기를 바랍니다.

* 이 기고는 본사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고양=김재환 기자(kjh@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