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전자, 日 패키징 R&D 거점 문 열어…TSMC도 택한 '소부장 강국'

삼성전자, 日 패키징 R&D 거점 문 열어…TSMC도 택한 '소부장 강국'

5년간 3500억원 투자…日정부 최대 절반 지원
日 반도체 기판·소재·장비 강점 살려 패키징 현지 검증
TSMC도 日서 3DIC 연구…SK도 생산 가능성 열어둬

[아이뉴스24 권서아 기자] 삼성전자가 일본 요코하마에 첨단 반도체 후공정(패키징) 연구거점을 열었다. 기판 등 소재·부품·장비(소부장)가 강한 일본의 반도체 생태계를 활용해 인공지능(AI) 반도체 패키징 기술을 고도화하려는 행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삼성전자는 지난 8일 요코하마 미나토미라이에서 '어드밴스드 패키지 랩(APL)' 개소식을 열었다. 2024년부터 5년간 400억엔(약 3500억원)을 투자한다. 약 6600㎡ 규모로 양산라인과 비슷한 청정시설(클린룸)을 갖췄으며 한일 연구원 95명이 근무한다.

삼성전자 일본 요코하마 첨단 패키징 연구거점이 있는 리프 미나토미라이 빌딩. [사진=officee 홈페이지]

日 소부장과 차세대 패키징 현지 검증

APL은 반도체를 양산하는 공장이 아니라 차세대 패키징 공정을 시험하고 시제품을 만드는 연구시설이다.

일본 정부 지원계획에는 2.xD(2.3D, 2.5D 등 여러 칩을 같은 평면에 배치해 연결하는 방식)와 3D(칩을 위아래로 쌓는 방식)를 결합한 '3.xD 칩렛' 기술이 연구 과제로 담겼다. 본딩(접합)과 인터포저(칩과 기판 사이를 연결하는 중간 부품), 기판 실장 기술도 연구한다.

이 같은 연구를 일본에서 진행하는 배경에는 탄탄한 소부장 기반이 있다. 이비덴은 고성능 패키지 기판을, 나믹스는 칩과 기판 사이를 채우는 보호재인 언더필을 생산한다. 도쿄일렉트론(TEL)은 식각·증착부터 3D 패키징용 웨이퍼 본딩 장비까지 공급하고, 디스코는 웨이퍼를 얇게 갈고 자르는 그라인딩·다이싱 장비에 강점이 있다.

삼성은 일본 기업 50여곳과 협력하고 있다. APL을 활용하면 현지 업체가 개발한 소재와 공정을 바로 평가하고 시제품까지 만들 수 있다. 신소재를 한국으로 가져올 때 필요했던 화학물질 승인과 수출입 절차를 줄여 최대 두 달 걸리던 평가 기간도 단축할 수 있다.

일본 정부도 APL 투자액의 절반인 최대 200억엔(약 1750억원)을 보조한다. 세계 반도체 위탁생산(파운드리) 1위 기업 대만 TSMC 구마모토 공장과 미국 메모리 기업 마이크론의 히로시마 투자에도 대규모 보조금을 지원하며 반도체 생산·연구시설 유치에 나서고 있다.

AI 반도체에서는 연산을 맡는 로직칩과 고대역폭메모리(HBM)를 얼마나 빠르고 안정적으로 연결하느냐가 중요하다. 삼성도 메모리·파운드리·첨단 패키징을 한 번에 제공하는 '원스톱 솔루션'을 앞세우고 있다.

TSMC의 재팬 3DIC R&D센터. [사진=TSMC 홈페이지 캡처]

TSMC·SK도 日 주목…소부장·보조금·용수 강점

대만 TSMC도 2022년 일본 이바라키현 쓰쿠바에 '재팬 3DIC R&D센터'를 열고 현지 기업·대학·연구기관과 기판, 언더필, 열전도 소재, 본딩·검사장비 등 첨단 패키징용 소재와 공정을 공동 연구하고 있다.

TSMC는 코워스(CoWoS)·시스템 온 IC(SoIC)·통합 팬아웃(InFO) 등 첨단 패키징 기술을 '3D패브릭(3DFabric)'으로 묶어 제공하고 있다.

파운드리 시장에서는 TSMC가 크게 앞서 있다. 시장조사업체 트렌드포스에 따르면 올해 2분기 점유율은 TSMC 72.5%, 삼성전자 5.9%다. 삼성은 일본 소부장 업체와의 협력을 늘려 첨단 패키징 경쟁력을 끌어올릴 것으로 전망된다.

SK하이닉스도 일본 생산 가능성을 열어뒀다.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지난달 31일 일본 전역을 살펴보고 있다며 전력·용수 등 생산 여건이 맞는 지역은 검토할 수 있다는 취지로 말했다. 다만 미야기현 공장 검토설에 대해서는 SK하이닉스와 현 모두 정해진 바가 없다고 선을 그었다.

업계에서는 일본의 강점으로 탄탄한 소부장 기반과 정부의 직접 보조금, 일부 지역의 풍부한 공업용수를 꼽는다. 대규모 전력과 용수가 필요한 반도체 생산시설에서는 공급망과 인프라를 함께 갖췄는지가 투자 지역을 가르는 요인이다.

SK하이닉스가 경기 용인에 조성 중인 반도체 클러스터 조감도. [사진=SK하이닉스]

국내도 용인 중심 집적 가속

일본의 소부장 경쟁력이 부각되면서 국내 반도체 클러스터의 집적도 함께 주목된다.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가 입주하는 용인에는 세계 4대 반도체 장비 업체(ASML·램리서치·TEL·어플라이드 머티어리얼즈 등)와 주성엔지니어링·원익IPS·솔브레인 등이 거점을 두거나 투자를 진행 중이다. 입주했거나 입주 예정인 반도체 소부장 업체는 92곳, 투자 규모는 약 3조4000억원이다.

미국에서도 삼성전자 테일러 공장과 SK하이닉스 인디애나 공장을 따라 국내 소부장 업체들의 현지 진출이 이어지고 있다. 한미반도체도 미국 법인 설립을 추진 중이며, SK하이닉스는 인디애나 공장을 중심으로 100개가 넘는 협력사와 공급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AI 반도체 경쟁이 첨단 패키징으로 확대될수록 공장뿐만 아니라 이를 뒷받침할 소부장 업체가 얼마나 가까이 모여 있느냐도 경쟁력을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권서아 기자(seoahkwo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