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자동차의 중앙 디스플레이가 완성차업계의 새로운 전장으로 떠올랐다.
차량 안에서 내비게이션과 동영상, 음악, 인공지능(AI)을 직접 이용하는 시대가 열리면서다. 완성차 업체들은 구글 등 외부 기업의 기술과 콘텐츠를 받아들이면서도 화면 구성과 앱 유통, 소프트웨어 업데이트의 최종 결정권은 자체 플랫폼으로 묶고 있다.
차량 화면의 주도권을 확보하면 고객이 어떤 기능과 콘텐츠를 이용하는지 파악해 제품을 개선할 수 있다. 출고 이후에도 앱과 기능 업그레이드, 구독 서비스를 판매해 새로운 수익을 만들 수 있다.
자동차 경쟁이 주행 성능과 판매량을 넘어 고객과 데이터, 판매 이후 수익을 누가 확보하느냐의 싸움으로 확장되고 있는 것이다.

13일 자동차업계에 따르면 현대차그룹은 지난 5월 출시한 더 뉴 그랜저에 차세대 인포테인먼트 시스템 '플레오스 커넥트'를 처음 적용했다. 현대차·기아·제네시스의 글로벌 판매 차량으로 범위를 넓혀 2030년까지 약 2000만 대에 탑재할 계획이다.
플레오스 커넥트에는 네이버 오토와 네이버 지도, 유튜브, 스포티파이, SBS고릴라, 에센셜, 지니 등이 들어간다. 스마트폰을 연결하지 않고 차량에서 직접 이용할 수 있다. 영상 콘텐츠의 전체화면 재생은 유틸리티·스테이 모드에서 지원한다.
외부 개발사가 차량용 앱을 공급할 수 있는 앱 마켓도 구축했다. 출고 이후에는 무선 소프트웨어 업데이트(OTA)로 기능을 추가한다. 대규모언어모델(LLM) 기반의 '글레오 AI'는 대화 맥락과 주행 상황을 이해해 목적지 설정과 공조장치 등 차량 기능을 음성으로 제어한다.
플레오스 커넥트는 구글의 안드로이드 오토모티브 OS(AAOS)를 기반으로 한 인포테인먼트 시스템이다. 현대차그룹이 별도로 개발하는 차량 제어용 운영체제와는 구분된다. 구글 기술을 활용하되 그 위에 자체 화면과 AI, 앱 마켓을 구축해 플랫폼의 운영권은 직접 쥔 구조다.

화면 뺏기면 고객도 뺏긴다
완성차 업체들이 차량 화면을 직접 관리하려는 이유는 판매 이후에도 고객과 관계를 이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
기존 자동차는 출고 시점에 기능과 성능이 대부분 결정됐다. 판매가 끝나면 완성차 업체가 고객과 만나는 접점도 정비나 신차 구매 정도로 제한됐다.

소프트웨어중심차량(SDV)은 다르다. OTA로 기능을 추가하거나 성능을 개선할 수 있고, 차량 화면을 통해 콘텐츠와 구독 서비스를 판매할 수도 있다. 중앙 디스플레이가 단순한 조작 장치를 넘어 출고 후에도 상품을 판매하는 디지털 매장이 되는 셈이다.
자체 플랫폼을 운영하면 어떤 앱을 제공하고 어떤 기능을 유료화할지도 완성차 업체가 직접 결정할 수 있다. 고객 동의를 받아 수집한 이용 데이터는 화면 구성과 기능을 개선하는 데 활용하고, 개선된 소프트웨어를 다시 OTA로 배포할 수 있다.
글로벌 회계·컨설팅업체 KPMG도 올해 발간한 SDV 보고서에서 차량 내 인터페이스와 결제 체계를 확보한 기업이 고객 정보와 반복 수익을 가져갈 수 있다고 분석했다.
반대로 외부 기술기업의 운영체제와 응용프로그램 인터페이스(API)에 지나치게 의존하면 차량 데이터와 고객 접점의 주도권이 기술기업으로 넘어갈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대차그룹이 플레오스 커넥트의 적용 목표를 2000만대로 잡은 것도 플랫폼의 규모를 키우기 위해서다. 적용 차량이 많아지면 외부 개발사가 전용 앱을 만들 유인도 커진다. 앱이 늘어나면 차량 플랫폼의 활용도가 높아지고, 다시 이용자를 끌어들이는 선순환을 만들 수 있다.
벤츠·BMW도 자체 OS…구글 기술은 선택적으로
메르세데스-벤츠와 BMW도 자체 운영체제를 앞세워 차량 화면의 주도권 확보에 나섰다.
메르세데스-벤츠는 신형 CLA에 자체 소프트웨어 아키텍처 ‘MB.OS’를 처음 전면 적용했다. 인포테인먼트와 주행보조, 충전, 편의 기능 등을 하나의 구조로 통합하고 업데이트도 직접 관리한다.
내비게이션과 음성 AI에는 구글 지도와 구글 클라우드 기반 기술을 활용한다. 외부 기술을 사용하지만 고객이 접하는 화면과 서비스는 메르세데스-벤츠 브랜드 안에서 제공하는 방식이다.

BMW는 신형 iX3에 ‘BMW 오퍼레이팅 시스템 X’를 기반으로 한 '파노라믹 iDrive'를 적용했다.
BMW는 시스템 개발 과정에 연결 차량 1000만대 이상에서 확보한 데이터와 고객 3000명 이상의 사용성 조사 결과를 반영했다. 운전자가 자주 확인하는 정보는 앞유리 아래쪽에 넓게 표시하고 세부 조작은 중앙 디스플레이에서 처리하도록 화면의 역할을 나눴다.
BMW가 세계 시장에서 제공하는 외부 앱은 음악과 영상, 게임, 뉴스, 여행 등 5개 분야에서 60개가 넘는다. 필요한 콘텐츠는 외부에서 가져오되 이용 환경과 업데이트 체계는 BMW 플랫폼 안에서 관리한다.
테슬라는 완성차 업체 가운데 차량 화면을 플랫폼으로 활용한 대표적인 사례다. 중앙 디스플레이에 차량 제어와 내비게이션, 음악·영상·게임 등을 통합하고 OTA로 기능을 지속해서 개선해왔다.
외부 기술은 쓰되 고객 접점은 직접 쥔다
완성차 업체들의 목표는 구글이나 네이버, 유튜브, 스포티파이 같은 외부 기술·콘텐츠 기업을 차량에서 배제하는 것이 아니다.
완성차 업체가 내비게이션과 AI, 동영상, 음악 서비스를 모두 자체 개발하는 것은 현실적으로 어렵다. 소비자 역시 스마트폰에서 사용하던 익숙한 서비스를 차량에서도 이용하기를 원한다.
대신 필요한 기술과 앱은 받아들이면서도 화면 배치와 앱 유통, 결제, 업데이트의 최종 결정권은 직접 갖겠다는 전략이다. 자동차 브랜드가 고객과 만나는 첫 화면을 외부 기업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미다.

과제도 있다. 차량용 앱 시장이 성장하려면 스마트폰과 비교해 부족한 앱 종류를 늘려야 한다. 주행 중 사용할 수 있는 기능과 정차 상태에서만 허용되는 콘텐츠를 구분하고, 결제 정보와 차량 데이터도 안전하게 관리해야 한다.
운영체제와 앱이 복잡해질수록 오류와 사이버보안 위험이 커질 수 있다는 점도 부담이다. OTA가 편의 기능을 추가하는 수단인 동시에 차량 안전과 직결되는 만큼 안정적인 검증 체계를 갖춰야 한다.
결국 차량 중앙 디스플레이를 둘러싼 경쟁의 본질은 화면 크기나 화질에만 있지 않다. 어떤 앱과 AI를 제공하고, 고객 데이터를 어떻게 제품 개선으로 연결하며, 출고 이후 어떤 서비스를 판매할 수 있느냐의 경쟁이다.
앞으로 완성차업계의 승부는 자동차를 얼마나 많이 판매하느냐뿐 아니라 판매한 차량을 자체 플랫폼으로 연결해 고객과 얼마나 오래 관계를 이어가느냐에 따라 갈릴 전망이다.
/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