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속상한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119 전화 한 통, 한 생명을 붙잡았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세요”…119 전화 한 통, 한 생명을 붙잡았다

북소방 옥유진 수보요원, 새벽 위기신고에 출동대 도착까지 차분한 대화 이어가
신고 8분 만에 현장 도착·안전 인계…성호선 “전화에서 확보한 시간도 생명 구하는 소방활동”

[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지난 9일 새벽 경북 119종합상황실. 오전 4시55분께 걸려온 한 통의 전화에서 경북소방본부 옥유진 수보요원이 건넨 말이었다.

경북소방본부 상황실 전경 [사진=경북도]

화려한 구조장비도, 눈앞의 현장도 없었다. 하지만 전화기 너머 위기에 놓인 한 사람에게 말을 건네고 이야기를 들어주며 구조대가 도착할 때까지 시간을 이어간 것 역시 또 하나의 구조였다.

경북소방본부에 따르면 이날 신고를 받은 옥 수보요원은 즉시 신고자의 위치를 파악한 뒤 경북경찰청에 공동대응을 요청하고 소방력을 출동시켰다.

그의 대응은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신고자의 심리적 불안정성이 높다고 판단한 옥 수보요원은 전화를 끊지 않았다. 상태를 세심하게 살피며 대화를 이어갔다.

“속상한 일이 있으면 말씀해 주시겠어요?”

신고자가 힘든 심경을 털어놓자 판단하거나 재촉하지 않고 이야기를 들었다. 신고자가 안정을 되찾고 현장 출동대가 올 때까지 안전하게 기다릴 수 있도록 대화를 이어갔다.

신고자는 통화 도중 “혼자 있으면 감당이 안 돼 전화를 했다”고 말했다.

누군가에게는 짧은 전화 한 통이었지만 신고자에게는 가장 힘든 순간 혼자가 아니라는 사실을 확인하는 시간이었다.

현장에서도 신속한 대응이 이어졌다.

출동 지령을 받은 대원들은 신고 약 8분 만에 현장에 도착했다. 신고자의 상태를 확인하고 필요한 응급처치를 한 뒤 경찰에 안전하게 인계했다.

신고가 접수된 순간부터 상황이 종료될 때까지 걸린 시간은 약 30분이었다.

이번 사례는 119 수보요원의 역할이 단순히 ‘어디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접수해 출동시키는 데 그치지 않는다는 점을 보여준다.

위기의 징후를 목소리와 대화 속에서 파악하고, 필요한 기관을 움직이는 동시에 현장대원이 도착할 때까지 신고자의 안전을 지키는 ‘보이지 않는 구조대원’ 역할이다.

특히 경북소방본부가 지속해 온 자살위기 대응과 위기상담 교육이 실제 신고 현장에서 활용됐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있다.

경북소방본부는 앞으로 수보요원의 위기상황 판단과 상담 역량을 더욱 강화할 방침이다.

현장 대응 이후에도 자살예방 상담전화 109와 정신건강복지센터 등 전문기관으로 연계해 상담과 사후관리까지 이어지는 생명안전망을 구축할 계획이다.

성호선 경북소방본부장은 “119 수보요원은 도민이 가장 절박한 순간 도움을 요청할 때 가장 먼저 목소리를 듣는 사람”이라며 “한 통의 전화에서 위험을 발견하고 침착한 상담으로 현장 대응에 필요한 시간을 확보하는 것 역시 생명을 구하는 중요한 소방활동”이라고 말했다.

119의 구조는 소방차가 현장에 도착한 순간부터 시작되는 것이 아니었다. 전화기 너머에서 “말씀해 주세요”라고 건넨 한마디, 그리고 그 이야기를 끝까지 들어준 시간이 이미 구조의 시작이었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