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가 100달러인데 정유사는 웃는다?…'정제마진'이 답

유가 100달러인데 정유사는 웃는다?…'정제마진'이 답

원유보다 휘발유·경유 공급 더 부족…정제마진 급등
사우디 OSP도 할증서 할인 전환…원가 부담까지 완화
정유 4사 하반기 실적 '청신호'…관건은 고마진 지속 여부

[아이뉴스24 송대성 기자]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다시 넘어섰다. 통상 유가 상승은 정유사에 부담으로 작용하지만 이번에는 분위기가 다르다. 원유보다 휘발유·경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공급이 더 빠듯해지면서 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빠르게 뛰고 있기 때문이다.

원유를 들여와 석유제품으로 만들어 판매하는 정유사 입장에서는 오히려 수익성이 좋아질 수 있는 환경이 만들어지고 있다. 여기에 사우디아라비아산 원유의 공식판매가격(OSP)까지 할증에서 할인으로 돌아서면서 국내 정유업계의 하반기 실적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국제 유가가 배럴당 100달러선을 돌파한 9일 서울 종로구 연합인포맥스에 설치된 모니터에 브렌트유와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이 표시돼 있다. 2026.3.9 [사진=연합뉴스]

11일 정유업계에 따르면, 지난 10일 브렌트유 선물 가격은 전날 배럴당 101.21달러에 거래를 마쳤다. 하루 만에 3.4% 상승한 것으로, 장중에는 101.58달러까지 올랐다. 브렌트유가 100달러를 넘어선 것은 지난 7월 이후 처음이다. 이날 오전에도 101달러 안팎의 높은 가격을 유지하고 있다.

하지만 정유업계가 바라보는 핵심 지표는 국제유가 자체가 아니다. 원유를 얼마나 비싸게 사느냐보다, 이를 가공해 만든 석유제품을 얼마나 비싸게 팔 수 있느냐가 더 중요하다.

원유는 있는데 경유가 없다…마진 100달러 돌파

정유사의 수익성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지표가 정제마진이다.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금액으로, 정유사가 원유를 가공해 얻는 부가가치를 가늠할 수 있다.

따라서 국제유가가 오르더라도 석유제품 가격이 더 큰 폭으로 상승하면 정유사의 수익성은 개선된다. 반대로 유가가 안정적이어도 제품 가격이 약세를 보이면 정유사 실적은 악화될 수 있다.

최근에는 바로 이 정제마진을 끌어올리는 힘이 강해지고 있다. 원유가 부족한 것이 아니라 석유제품이 부족한 상황이 나타나고 있어서다.

경기도 성남시 대한송유관공사 서울지사 앞에서 유조차가 분주하게 오가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글로벌 원유·석유제품 거래업체 비톨에 따르면 전쟁 여파로 러시아와 중동에서 각각 하루 약 200만 배럴씩, 총 400만 배럴가량의 석유제품 공급이 감소한 상태다.

문제는 이를 대신해 생산량을 늘릴 여력도 충분하지 않다는 점이다. 미국 정유공장 대부분이 사실상 최대 수준으로 가동되고 있어 단기간에 석유제품 생산량을 크게 늘리기 어렵다.

원유 공급이 늘어나더라도 정유설비가 정상화되지 않는다면 제품 부족은 계속될 수 있다는 의미다.

실제 제품별 가격에서도 공급 부족의 강도가 나타난다. 미국 경유 크랙스프레드는 이달 초 장중 배럴당 108.02달러까지 치솟으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크랙스프레드는 석유제품 가격에서 원유 가격을 뺀 값으로 특정 제품의 수급 상황과 수익성을 보여주는 지표다.

미국 경유 크랙스프레드를 국내 정유사의 복합정제마진에 그대로 적용할 수는 없다. 하지만 경유에서만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는 마진이 나타났다는 것은 글로벌 석유제품 시장이 그만큼 타이트하다는 의미로 해석할 수 있다.

특히 경유는 국내 정유사의 복합정제마진을 구성하는 핵심 제품이다. 휘발유와 경유, 항공유 등을 해외에 판매하는 국내 정유사 입장에서는 제품 가격 강세가 실적 개선으로 연결될 가능성이 커진다.

하반기 정제마진, 지난해의 3배 전망

증권가에서도 정유업계의 마진 강세가 당분간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다.

신한투자증권은 올해 하반기 복합정제마진을 배럴당 평균 30달러로 전망했다. 전쟁 이전인 지난해 4분기 평균 10달러와 비교하면 세 배 수준이다.

14일 서울 중구 하나은행 딜링룸에 국제유가가 표시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2027년에도 복합정제마진이 배럴당 평균 19달러를 기록할 것으로 예상했다.

정유설비가 다시 정상적으로 가동되고 석유제품 공급이 안정되기까지 시간이 필요한 만큼 당장 제품 공급 부족이 해소되기는 쉽지 않다는 판단이다.

정유업계로서는 유가가 100달러를 넘어선 것 자체보다 석유제품 가격이 원유 가격보다 얼마나 더 높은 수준을 유지하느냐가 중요한 이유다.

비싼 원유 사고도 남겼다…정유 4사 '고마진' 효과

이미 실적에서도 이런 흐름은 확인되고 있다. 각사가 공개한 실적자료와 업계 집계에 따르면 올해 2분기 GS칼텍스의 정유사업 영업이익은 2조1993억원, HD현대오일뱅크는 1조2833억원을 기록했다. 에쓰오일은 정유부문에서 5324억원, SK에너지는 6512억원의 영업이익을 냈다.

서울의 한 주유소에서 시민들이 주유를 하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국내 정유 4사가 정유사업에서 모두 흑자를 기록한 것이다. 석유제품 가격이 강세를 보이면서 원유 가격 상승에 따른 부담을 상당 부분 상쇄한 결과로 풀이된다.

원유를 들여오는 조건도 정유사에 유리하게 바뀌었다. 사우디아라비아 국영 석유회사 아람코는 아시아에 공급하 아랍라이트 원유의 OSP를 지난 7월 두바이·오만유 대비 배럴당 9.5달러 할증에서 8월 1.5달러 할인으로 낮췄다.

한 달 사이 무려 배럴당 11달러가 떨어진 셈이다.

정유사 입장에서는 원유 구매 비용은 낮아지는 반면 정제해 판매하는 석유제품 가격은 높은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다. 원료 가격은 내려가고 제품 가격은 오르는 '고마진' 환경이다.

결국 관건은 '100달러 유가'가 아니다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어서면서 소비자 입장에서는 휘발유와 경유 가격 상승에 대한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그러나 정유업계의 손익 구조는 조금 다르게 움직인다.

정유사 실적을 좌우하는 것은 국제유가의 절대적인 수준이 아니라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의 차이, 즉 정제마진이기 때문이다.

GS칼텍스 여수공장 전경. [사진=GS칼텍스]

현재처럼 석유제품 공급이 원유보다 빠르게 줄어 제품 가격이 강세를 이어가고, 동시에 OSP까지 낮아진다면 정유사에는 상당히 우호적인 환경이 조성된다.

결국 국내 정유 4사의 하반기 실적을 가를 변수는 국제유가가 배럴당 100달러를 넘었느냐가 아니다. 경유·휘발유·항공유 등 석유제품 공급 부족이 얼마나 오래 지속되고, 높은 정제마진을 얼마나 오랫동안 지켜낼 수 있느냐가 핵심이다.

정유업계 관계자는 "정유사 실적은 유가의 절대 수준보다 원유와 석유제품 가격의 차이가 얼마나 벌어졌는지가 중요하다"며 "글로벌 제품 공급 부족으로 높아진 정제마진이 얼마나 오래 유지되느냐가 하반기 실적의 관건"이라고 말했다.

/송대성 기자(snowball@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