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대구의 인공지능(AI)·소프트웨어 역량과 경북의 탄탄한 제조업 기반을 하나로 묶는 ‘대경권 딥테크 동맹’이 본격 가동된다.
대구와 경북이 행정구역을 넘어 모빌리티·로봇·시스템반도체를 공동으로 키우고 연구개발(R&D)부터 기술이전, 실증과 양산까지 연결되는 초광역 첨단산업 생태계를 만들겠다는 구상이다.

대구시는 경북도와 초광역 협력체계를 구축하고 이달부터 ‘4극3특 과학기술혁신지원사업’을 본격 추진한다고 10일 밝혔다.
과학기술정보통신부가 추진하는 이 사업은 저성장과 지역소멸에 대응하고 국가균형발전의 새로운 성장축을 만들기 위한 지역 자율형 R&D 사업이다.
수도권을 제외한 전국을 대경권·중부권·호남권·동남권 등 4개 권역과 강원·전북·제주 등 3개 특별자치권역으로 나눠 각 지역이 스스로 사업단을 구성하고 중점 기술과 연구과제를 설계하도록 한 것이 특징이다.
중앙정부가 연구과제를 정해 지역에 내려보내는 방식에서 벗어나 지역이 ‘무엇을 연구하고 어떤 산업을 키울 것인가’를 직접 결정한다는 점에서 기존 R&D 사업과 차이가 있다.
대구와 경북이 선택한 전략은 서로의 강점을 결합하는 것이다.
대구가 축적해 온 AI·소프트웨어 혁신 역량을 경북의 제조업 기반과 연결해 연구기술이 실제 산업현장으로 빠르게 확산되는 구조를 만들겠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대경권은 공동 전략산업과 산업생태계의 완성도, 향후 성장 가능성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 모빌리티와 로봇, 시스템반도체를 3대 중점기술 분야로 선정했다.
특히 연구과제를 책상 위에서 정하지 않았다.
지역 연구기관과 대학, 기업 등을 대상으로 두 차례 수요조사를 실시해 440여건의 기술수요를 발굴하고 이를 사업 기획에 반영했다.
산업현장에서 필요한 기술을 찾아 연구개발하고 다시 기업에 적용하는 ‘현장 수요형 R&D’를 지향하는 셈이다.
올해 대경권 사업에는 총 131억원이 투입된다.
분야별로 모빌리티 43억원, 로봇 37억원, 시스템반도체 37억5000만원 등이 배정됐다. 대구시와 경북도는 2027년 이후 지원 규모를 지속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다.
사업은 미래유망 딥테크 기술발굴형, 딥테크 지역확산형, K-UBRC 구축, 산학연 허브 구축 등 4개 축으로 추진된다.
미래유망 딥테크 기술발굴형은 과학기술원과 대학·정부출연연구기관, 지역기업이 손잡고 미래산업의 원천기술 확보에 나선다.
딥테크 지역확산형은 여기서 한 단계 더 나아간다.
개발된 기술이 논문이나 연구실에 머무르지 않도록 기술이전과 시제품 제작, 실증, 양산 연계를 지원해 지역기업의 실제 사업화로 연결한다.
결국 연구비를 얼마나 집행했느냐가 아니라 개발된 기술 가운데 몇 건이 지역기업의 제품과 매출로 이어지느냐가 사업의 핵심 성적표가 되는 구조다.
인적 자원의 활용 방식도 눈길을 끈다.
K-UBRC를 구축해 은퇴 과학자와 대학, 지역산업을 연결하고 이들의 전문성을 기업 기술자문과 현장 애로 해결에 활용한다.
산학연 허브도 구축해 지역 대학·연구기관·기업 간 네트워크 플랫폼과 글로벌 오픈이노베이션 랩을 운영한다.
대구와 경북의 사업을 실제 하나의 체계로 움직이기 위한 컨트롤타워도 마련됐다.
DGIST(대구경북과학기술원) 안에 대경권 단일 사업단을 신설해 초광역 R&D 사업을 통합적으로 추진한다.
이 대목은 적지 않은 의미를 갖는다. 대구와 경북이 각자 예산과 사업을 나눠 갖는 ‘무늬만 협력’에서 벗어나 하나의 사업단 아래 공동 기술전략을 추진하는 실험이기 때문이다.
김태운 대구시 인공지능혁신성장실장은 “본 사업은 대경권 미래산업의 경쟁력을 좌우할 중요한 기틀이 될 것”이라며 “경북도 및 지역 산·학·연과 유기적으로 협력해 첨단산업 생태계를 구축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대경권의 산업적 강점은 분명하다. 대구에는 AI·소프트웨어와 로봇 관련 혁신역량이 있고 경북에는 전자·자동차부품 등 제조업 기반이 자리하고 있다.
문제는 그동안 행정구역과 기관별 칸막이 속에 흩어져 있던 역량을 얼마나 하나의 산업생태계로 묶어낼 수 있느냐다.
131억원은 출발점일 뿐이다. 대구에서 개발한 AI와 소프트웨어가 경북의 제조현장에 들어가고, 그 기술이 시제품과 실증을 거쳐 새로운 기업과 일자리로 돌아올 때 비로소 ‘대경권 초광역 R&D’의 의미가 완성된다.
대구의 ‘두뇌’와 경북의 ‘제조 근육’을 결합한 이번 실험이 수도권에 맞설 또 하나의 첨단산업 축으로 성장할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