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정비사업 '경쟁입찰' 사라졌다…2조 대어도 유찰

서울 정비사업 '경쟁입찰' 사라졌다…2조 대어도 유찰

서울 25곳 사업장중 22곳 단독응찰…경쟁입찰 단 3곳
선별수주 강화 기조…여의도·목동·성수 수의계약 수순
수백억 현금보증…공사원가 압박에 '선택과 집중' 뚜렷

[아이뉴스24 나광국 기자] 서울 핵심 재건축·재개발사업장에서 대형건설사간 수주경쟁이 빠르게 자취를 감추고 있다. 공사비가 2조원을 웃도는 대형사업장에서도 단 한곳만 응찰하는 사례가 잇따른다. 공사비와 금융비용 상승에 수백억원대 입찰보증금과 수주실패에 따른 매몰비용까지 부담으로 작용하면서 건설사들이 외형확대보다 수익성과 수주가능성을 따지는 '선별수주'에 나선 영향이다.

7일 정비업계에 따르면 올 1~7월 시공능력평가 상위 10개 건설사가 참여한 서울 정비사업 시공사 입찰 25건 가운데 복수 건설사가 실제 맞붙은 사업장은 압구정5구역과 성수전략정비구역 4지구, 신반포19·25차 3곳에 그쳤다. 나머지 22곳에서는 한곳만 응찰해 경쟁입찰이 성립하지 않았다.

서울 서초구 한 아파트 재건축 현장 [사진=연합뉴스]

사업비가 조단위를 넘어서는 '대어'에서도 이같은 흐름이 뚜렷하다. 총공사비가 2조원대인 여의도 시범아파트 재건축은 지난달 1차 입찰에서 삼성물산만 참여해 유찰됐다. 첫 현장설명회에는 7개 건설사가 참석했지만 실제 입찰까지 이어진 곳은 삼성물산뿐이었다.

재입찰에서도 경쟁구도는 만들어지지 않았다. 지난 3일 열린 2차 현장설명회에도 삼성물산만 참석하면서 수의계약 방식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가능성이 커졌다. 여의도 시범은 기존 1584가구를 최고 59층, 총 2491가구 규모로 재건축하는 사업으로 총공사비는 2조원을 웃돈다.

성동구 성수전략정비구역 2지구와 양천구 목동12단지도 마찬가지다. 예정공사비 2조137억원 규모인 성수2지구에는 DL이앤씨가, 1조7888억원 규모인 목동12단지에는 GS건설이 각각 단독응찰해 지난달 31일 나란히 유찰됐다.

성수2지구 현장설명회에는 DL이앤씨와 IPARK현대산업개발이, 목동12단지에는 GS건설·대우건설·포스코이앤씨·IPARK현대산업개발 4곳이 참석했지만 본입찰에서는 경쟁사가 모두 빠졌다.

목동10단지도 예정공사비가 2조6135억원에 달하지만 두차례 입찰에 현대건설만 참여했다. 여의도와 목동, 성수뿐 아니라 압구정 등 서울 최상급 정비사업지까지 단독응찰이 확산되면서 사업규모나 입지만으로 경쟁입찰을 장담하기 어려워진 모습이다.

건설사들이 경쟁을 피하는 가장 큰 이유는 수주전에 들어가는 비용이 크게 늘었기 때문이다. 한국건설기술연구원 집계를 보면 지난 6월 건설공사비지수는 138.22로 전년 동월보다 5.48% 상승했다.

공사원가 부담이 높은 상황에서 입찰보증금과 특화설계, 금융조건 마련, 홍보·영업 등에 들어가는 비용까지 감안하면 수주실패에 따른 부담이 커질 수밖에 없다.

입찰보증금만 수백억원에 달한다. 성수2지구는 1000억원 가운데 700억원을 현금으로 내야 하고 목동12단지는 보증금 800억원중 400억원을 현금으로 납부해야 한다. 여의도 시범 역시 500억원을 전액 현금으로 내는 조건이다.

복수 사업장 입찰이 동시에 진행되는 상황에서 대형건설사라도 여러곳에 수백억원씩 자금을 묶어두기는 부담스럽다는 게 업계 설명이다.

정비사업 물량자체가 부족한 것도 아니다. 8월 넷째주 기준 10대 건설사의 올해 도시정비사업 누적수주액은 약 30조8700억원에 달한다. 하반기에도 목동과 여의도 등에서 조단위 사업이 이어지는 만큼 모든 사업장에서 출혈경쟁을 벌이기보다 이미 공을 들였거나 수주가능성이 높은 곳에 역량을 집중하는 전략이 유리해진 셈이다.

송승현 도시와경제 대표는 "수익성이 높은 핵심사업장을 중심으로 '깃발을 꽂는' 선별수주 전략이 강화되고 있다"고 분석했다. 과거처럼 10대 건설사가 여러 현장에서 동시에 경쟁하기보다 상위업체를 중심으로 사업장별 수주구도가 일찌감치 좁혀지는 양상이 나타나고 있다는 설명이다.

서울 용산구 한 재개발 예정지와 강남 아파트 [사진=연합뉴스]

하반기에도 이같은 흐름이 이어질 가능성이 크다. 다만 모든 사업장에서 경쟁이 사라지는 것은 아니다. 목동7·14단지 등 일부 핵심사업장은 복수 대형사가 관심을 보이면서 경쟁입찰 가능성이 거론된다.

사업성과 상징성이 크고 향후 인근 정비사업 수주에도 영향을 줄 수 있는 일부현장에서는 건설사간 맞대결이 성사될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단독응찰 확산은 조합입장에서는 명암이 엇갈린다. 현재는 경쟁입찰이 두차례 무산되면 총회 의결을 거쳐 수의계약으로 시공사를 선정할 수 있다.

정부도 지난달 발표한 주택 신속공급 방안에서 단독입찰로 유찰된 경우 재입찰 절차를 간소화하고 입찰보증금 보증서 납부를 확대하기로 했다. 시공사 선정 과정에서 발생하는 시간과 현금부담을 줄이겠다는 취지다.

반면 건설사간 경쟁이 사라지면 조합이 공사비와 금융지원, 특화설계 등을 비교할 기회도 줄어든다. 실제 경쟁입찰이 성립한 압구정5구역에서는 건설사들이 이주비 대출비율과 사업비 조달금리, 추가분담금 납부조건 등을 달리 제시하며 경쟁을 벌였다.

단독입찰에서는 이같은 비교기준이 없어 수의계약 과정에서 조합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떨어질 수 있다.

정비업계 한 관계자는 "입찰보증금부터 설계·홍보비까지 부담이 커 수주가능성이 확실한 사업장만 본입찰에 들어가는 분위기"라며 "단독입찰이 반복될 경우 조합도 여러업체 조건을 비교하기 어려워질 수 있다"고 말했다.

결국 하반기 정비사업 시장은 모든 대형사업장에서 건설사들이 맞붙는 과거방식보다 각사가 수익성과 승산을 따져 사업장을 골라가는 '선택과 집중'이 더욱 뚜렷해질 전망이다. 시공사 선정속도는 빨라질 수 있지만 경쟁부재에 따른 조합 협상력 약화가 새로운 과제로 떠오를 것으로 보인다.

/나광국 기자(nkk118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