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전다윗 기자] 국내 제약·바이오기업들이 조 단위 기술수출 '잭팟'을 잇따라 터뜨리고 있지만 시장의 반응은 예전과 사뭇 달라졌다. 대형 기술수출 소식에 주가가 크게 뛰었던 과거와 달리 최근엔 단순 규모보다 선급금과 임상·상업화 가능성 등 계약의 '질'을 따지는 분위기가 뚜렷해지고 있다.

4일 제약·바이오업계에 따르면 알테오젠은 지난 2일 글로벌 제약사 노바티스와 자체 개발한 피하주사(SC) 제형 변경 플랫폼 'ALT-B4'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이번 계약으로 노바티스는 ALT-B4를 활용해 여러 제품에 대한 피하주사 제형을 개발하고 상업화할 수 있는 독점적 권리를 복수 옵션을 통해 확보하게 됐다.
계약상 모든 옵션이 행사되고 개발 및 상업화 마일스톤이 모두 달성될 경우 알테오젠은 최대 32억2300만 달러(약 4조4165억원)를 수령할 수 있다. 제품 상업화 후 순매출액에 대한 로열티도 별도로 받는다.
4조원이 넘는 대형 계약에도 시장 반응은 미지근했다. 계약 발표 당일 알테오젠 주가는 9% 넘게 뛰어 32만9000원까지 치솟았지만 곧 상승분을 모두 반납하고 전 거래일보다 소폭(0.83%) 하락한 29만8500원에 장을 마쳤다. 4일 오전 11시 기준 주가는 28만6500원이다.
대형 기술수출에 성공한 한미약품 역시 호재가 장기간 주가 상승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한미약품은 지난달 24일 로슈그룹 자회사 제넨텍에 비만·대사질환 치료제 후보물질 'HM17321'을 기술수출했다. 총 계약 규모는 최대 23억달러(약 3조2000억원)다. 계약 발표 당일 주가는 상한가를 기록했지만 이튿날에는 차익실현 매물이 나오며 7% 넘게 하락했다.
올해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들의 기술수출 성과 자체는 여느 때보다 풍성하다. 올해 1월부터 현재까지 국내 제약·바이오 기업은 기술 수출 계약 13건을 성사시켰다. 이 가운데 계약 규모가 공개된 기술수출 계약 총액은 21조원을 넘어섰다. 지난해 거둔 사상 최대 실적(약 20조원)을 9개월 만에 초과 달성했다.

그럼에도 산업 성과와 주가 사이 온도차가 나타난 배경엔 기술수출을 바라보는 달라진 눈높이가 자리하고 있다. 과거에는 글로벌 제약사와 대규모 계약을 체결했다는 사실 자체가 기술력을 인정받았다는 신호로 받아들여졌다면, 이제는 실제 얼마만큼의 수익으로 이어질 수 있는지를 따져보기 시작했다는 것이다.
실제로 기술수출 때 발표되는 '최대 계약 규모'와 실제 기업이 손에 쥐는 금액 사이엔 상당한 차이가 있다. 계약 총액에는 임상 개발과 품목허가, 상업화 등 정해진 조건을 달성해야 받을 수 있는 마일스톤이 포함된다.
반면 임상에 실패하거나 개발이 중단되면 공시된 계약 총액을 모두 받을 수 없다. 아무런 조건 없이 먼저 받게 되는 선급금은 통상 전체 계약 규모의 일부에 그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계약 외형보다 실제 확보할 수 있는 수익을 따지는 분위기가 강해진 데에는 그동안의 '학습효과'도 영향을 미쳤다.
국내 제약·바이오 업계는 대형 기술수출 이후 임상 실패나 개발 전략 변경 등으로 기술이 반환되는 사례를 여러 차례 경험했다. 기술수출 자체가 신약 개발이나 상업화 성공을 보장하는 것은 아니라는 인식이 시장에 자리 잡은 셈이다.
이에 따라 기술수출을 평가하는 기준도 한층 까다로워졌다. 계약 총액뿐 아니라 당장 확보할 수 있는 선급금과 향후 마일스톤·로열티 규모, 임상 단계와 상업화 가능성 등이 주요 평가 요소로 떠올랐다.
허혜민 키움증권 애널리스트는 "제약·바이오 시장은 기술이전과 임상 성공에 기대가 높아진 뒤 실패와 반환을 경험하는 과정을 반복해 왔다"며 "이제 단순한 이벤트보다 기대가 실제 가치로 이어질 수 있다는 신뢰가 필요한 시점"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단순히 기술이전했다는 사실만으로 기업가치가 리레이팅되는 시기는 지나가고 있다"며 "경제적 권리와 파트너의 개발 의지가 뒷받침되지 않는 기술이전은 단기 모멘텀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고 평가했다.
/전다윗 기자(dav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