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7조 해군 MRO 시장 잡으려면…"KDDX부터 민간 정비 맡겨 실적 쌓아야"

87조 해군 MRO 시장 잡으려면…"KDDX부터 민간 정비 맡겨 실적 쌓아야"

함정 건조비만큼 드는 30년 MRO…수출 경쟁력 좌우
韓 조선소 건조 기술 강하지만 국내 해군 MRO 경험 부족
한화오션 "KDDX 시범사업으로 총수명주기 관리 역량 확보해야"

[아이뉴스24 최란 기자] 세계 해군 유지·정비·보수(MRO) 시장이 오는 2029년 87조원 규모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는 가운데 국내 조선업계의 해외 MRO 수주 경쟁력을 높이려면 한국 해군 함정부터 민간 정비를 확대해 실적을 쌓아야 한다는 주장이 나왔다.

한국 조선업은 함정 건조 분야에서 높은 경쟁력을 갖췄지만 인도 이후 유지보수는 군 자체 정비에 의존해 민간 조선소의 경험이 상대적으로 부족하다. 해외 함정 사업에서 건조뿐 아니라 수십 년간의 유지보수 역량까지 수주를 좌우하는 요소로 떠오른 만큼 국내 사업을 통해 MRO 경험부터 확보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대식 한화오션 특수선MRO사업담당 상무가 3일 국회도서관에서 진행된 'MASGA 시대를 여는 해양 MRO·수리조선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토론회'에서 발언하고 있다. [사진=최란 기자]

김대식 한화오션 특수선MRO사업담당 상무는 3일 국회도서관에서 열린 'MASGA 시대를 여는 해양 MRO·수리조선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토론회'에서 "함정 유지보수 사업의 국가적 경쟁력을 확보하려면 조선소와 군의 협업을 통한 총수명주기 유지보수 사업 모델 개발이 필요하다"고 밝혔다.

세계 해군 유지·정비·보수(MRO) 시장 규모는 2024년 570억달러(약 78조7000억원)에서 오는 2029년 630억달러(약 86조7000억원)로 성장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특히 최근 글로벌 함정 시장에서는 배를 얼마나 잘 건조하느냐뿐 아니라 인도 이후 수십 년간 얼마나 안정적으로 유지·보수할 수 있느냐가 수주 경쟁력을 좌우하고 있다.

김 상무는 "최근 함정 수출 사업에서는 인도 후 총수명주기간 유지보수 역량이 수주를 좌우한다"며 "캐나다 잠수함 사업(CPSP)에서도 유지보수 예산이 전체 사업 규모의 과반 이상을 차지했다"고 설명했다.

함정은 건조 이후 들어가는 비용도 막대하다. 김 상무에 따르면 함정을 30년간 운용할 경우 발생하는 MRO 비용은 최초 건조 비용과 유사한 규모로 추산된다. 이 가운데 창정비와 자재 비용이 82%를 차지한다.

결국 함정 한 척을 수출하는 것으로 사업이 끝나는 것이 아니라 이후 수십 년간 이어지는 정비와 부품 공급까지 확보해야 더 큰 시장을 잡을 수 있다는 의미다.

함정 잘 만들지만 정비 경험 부족…"KDDX부터 민간에"

문제는 국내 조선업계의 함정 MRO 경험이 건조 경쟁력에 비해 부족하다는 점이다.

한국 해군이 그동안 군 자체 정비를 중심으로 함정을 운용하면서 민간 조선소가 인도 이후 유지보수 사업에 참여해 실적을 쌓을 기회가 제한적이었기 때문이다.

한국형 차기 구축함(KDDX) 등 한화오션의 최첨단 수상함 함정모형들. [사진=한화오션]

김 상무는 "함정을 건조하는 기술과 생산 능력 면에서는 세계 어느 나라보다 뒤지지 않는다는 자신감이 있지만 MRO는 그동안 오랫동안 수행하지 않아 건조만큼의 자신감이 없는 게 사실"이라고 말했다.

이어 "이런 역량을 빠르게 확충하려면 해군의 유지보수 사업을 조선소가 발주받아 경험을 쌓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강조했다.

해군 입장에서도 민간 조선소 활용이 필요하다는 게 김 상무의 설명이다. 향후 해군 정비 인력 감소와 설비 부족 등에 대응하려면 군에 집중된 정비 물량을 민간 조선소로 분산하고 상태 기반 정비와 고장 예측 정비 등 스마트 MRO 체계도 구축해야 한다는 것이다.

김 상무는 첫 시험대로 현재 추진 중인 한국형 차기구축함(KDDX) 사업을 제시했다.

KDDX를 건조하는 단계부터 인도 이후 유지보수까지 함께 설계하는 '총수명주기 관리' 시범사업으로 추진해 국내 조선소가 실제 MRO 경험과 실적을 확보하도록 하자는 것이다.

김 상무는 "인도 후 유지보수 사업을 하려면 건조 초기 단계부터 검토와 예산 준비가 필요하다"며 "지금 추진 중인 KDDX 사업에 민간 위탁을 시범사업으로 먼저 해보는 것이 가장 효과적"이라고 말했다.

이를 통해 국내에서 함정 MRO 사업 모델을 구축하고 실적을 확보하면 향후 미국을 비롯한 해외 함정 MRO 사업이나 함정 수출 경쟁에서도 활용할 수 있다는 구상이다.

"가격만 봐선 경쟁력 못 키워"…MRO 발주 방식도 바꿔야

민간 정비를 확대하는 것과 함께 발주 제도도 개선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현재 해군 정비 민간위탁 사업의 '적격심사' 방식은 일정 자격을 갖춘 업체를 대상으로 가격 경쟁을 통해 사업자를 선정하는 구조다. 이 때문에 기술력과 장기적인 사업 역량을 갖춘 업체가 가격에서 밀려 탈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3일 국회도서관에서 'MASGA 시대를 여는 해양 MRO·수리조선 클러스터 구축을 위한 토론회'가 진행되고 있다. [사진=최란 기자]

김 상무는 "하청 위주 사업에서는 적절한 방법이었지만 MRO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지금 시점에서는 기술과 실력, 비전을 평가할 수 있는 제안서 평가 방식으로 전환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AI와 로봇을 활용한 스마트 MRO 도입을 위해 보안 규정을 개선하고 국내 조선산업의 공급망을 MRO에 적극 활용해야 한다는 제안도 나왔다.

김 상무는 조선소 반경 50㎞ 안에 1000개 이상의 부품업체가 밀집해 있는 국내 산업 기반을 활용해 수리부속 공급망을 구축하고, 늘어나는 정비 물량에 대응하기 위해 안벽과 도크 등 수리조선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고 제안했다.

/최란 기자(r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