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삼성은 또 아산인가…113조 투자 뒤엔 ‘35년 동행’ 있었다

왜 삼성은 또 아산인가…113조 투자 뒤엔 ‘35년 동행’ 있었다

온양 반도체부터 탕정 디스플레이까지 산업기반 축적
HBM·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다시 도약…“검증된 도시”에 미래 건다

[아이뉴스24 정종윤 기자] “왜 하필 아산일까.”

지난 7월 정부와 충청권이 반도체·피지컬 인공지능(AI)·데이터센터를 축으로 한 ‘3대 메가프로젝트’를 내놓은 뒤 삼성은 충청권에 약 140조원 규모의 투자 계획을 발표했다. 이 가운데 삼성디스플레이 67조원, 삼성전자 고대역폭메모리(HBM) 분야 46조원 등 113조원이 아산에 집중될 것으로 알려졌다.

수도권도, 다른 산업도시도 아닌 아산에 이처럼 대규모 투자가 몰리는 이유는 무엇일까.

답은 35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삼성에게 아산은 새롭게 가능성을 시험하는 도시가 아니라, 이미 생산과 기술, 인력, 협력기업, 지역사회까지 함께 성장해온 ‘검증된 산업 파트너’에 가깝다. 온양에서 시작한 반도체 인연이 탕정 디스플레이로 이어졌고 이제 다시 HBM과 차세대 디스플레이 투자로 확장되고 있다.

삼성전자 온양사업장 전경 [사진=아산시]

1991년 온양에서 시작된 반도체 인연

삼성과 아산의 첫 연결고리는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이다.

삼성전자는 1990년 9월 아산 온양사업장 건설에 착수했고 1년 2개월 뒤인 1991년 11월 가동을 시작했다.

당시 온양사업장은 4메가 D램을 비롯한 반도체 제품의 조립과 검사를 담당했다. 반도체 전공정에서 생산된 칩을 실제 제품으로 완성하는 후공정 역할을 맡으며 삼성전자의 대량생산 체제를 뒷받침했다.

삼성전자가 1974년 반도체 사업에 뛰어든 뒤 메모리와 시스템반도체, 파운드리로 사업영역을 넓혀 세계적인 종합반도체 기업으로 성장하는 동안 온양사업장도 함께 몸집을 키웠다.

1993년 삼성전자가 메모리반도체 시장 점유율 세계 1위에 올라서는 과정에서도 온양사업장은 패키징과 테스트 분야의 제조 노하우를 축적하며 경쟁력의 한 축을 담당했다.

30여 년이 지난 지금 온양사업장은 다시 한번 큰 전환점을 맞고 있다.

AI 시대 핵심 메모리로 꼽히는 HBM 연계 생산기지로의 전환이다. 단순 조립·테스트 중심 후공정 사업장에서 최첨단 AI 반도체 생산기지로 역할이 확대되는 셈이다.

오세현 아산시장과 조성일 삼성전자 DS부문 TSP총괄 부사장은 지난 7월 22일 아산시청에서 대규모 첨단 반도체 투자와 상생발전을 위한 업무협약을 체결했다.

새로 증설되는 공장에는 축구장 약 4개 규모인 3만1000㎡의 대형 클린룸이 들어설 예정이다.

공사는 9월 1일 시작됐고, 목표는 2029년 5월 HBM 양산이다.

삼성전자가 향후 아산에 계획한 HBM 관련 투자 규모는 46조원에 달한다. 1991년 4메가 D램 후공정에서 출발한 온양사업장이 약 35년 만에 AI 시대 최첨단 메모리 생산기지로 재편되는 것이다.

탕정으로 넓어진 동행…아산을 디스플레이 도시로

삼성과 아산의 인연은 반도체에서 디스플레이로도 확장됐다.

2003년 탕정면 명암리 일원에 삼성의 TFT-LCD 생산라인을 중심으로 ‘아산 디스플레이시티1 산업단지’가 조성되면서 탕정 일대는 대규모 디스플레이 생산거점으로 변하기 시작했다.

공장만 들어선 것은 아니었다.

생산시설을 따라 협력기업과 연구개발 인력, 물류 기능이 모였고 배후 주거지와 교통망도 함께 확장됐다. 아산의 도시 구조 자체가 디스플레이 산업을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됐다.

삼성디스플레이 역시 LCD에서 OLED,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기술 중심을 옮겨가는 과정에서 아산을 핵심 생산기지로 유지해왔다.

그 연장선에서 지난 1일 또 하나의 대규모 투자계획이 공식화됐다.

아산시는 충남도청 대회의실에서 충남도와 삼성디스플레이, 한국전력공사, 한국수자원공사와 총 67조원 규모의 첨단 전략산업 투자협약을 체결했다.

협약은 장기간 멈춰 있던 ‘아산 디스플레이시티2 일반산업단지’ 사업 재개를 공식화했다는 점에서도 의미가 크다.

디스플레이시티2는 삼성디스플레이 아산 1·2캠퍼스가 위치한 1단지의 후속 산업단지다.

2017년 공사에 들어갔지만 글로벌 디스플레이 업황 둔화와 코로나19 등의 영향으로 2021년 사업이 잠정 중단됐다.

이번 대규모 투자로 2단지는 다시 움직이게 됐다.

삼성디스플레이는 아산을 중심으로 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라인을 단계적으로 확충할 계획이다. 첫 단계로는 아산디스플레이시티2 내 9만9141㎡ 부지에 2028년 6월까지 6500억원을 투입해 신규 생산라인을 구축한다.

삼성디스플레이 아산캠퍼스 전경 [사진=아산시]

113조원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지 않았다

삼성전자 46조원과 삼성디스플레이 67조원.

단순 합산하면 아산에 예정된 삼성의 첨단산업 투자만 113조원이다.

숫자는 크지만, 이 투자를 갑작스러운 선택으로 보기는 어렵다.

온양사업장이 35년 동안 축적한 반도체 후공정 경험과 탕정 디스플레이산단의 20여 년 산업기반, 관련 협력기업과 인력, 전력·용수·교통 인프라가 이미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기업 입장에서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는 공장 부지만 확보한다고 가능한 일이 아니다.

안정적인 전력과 대규모 산업용수, 숙련 인력, 협력사 공급망, 물류와 교통망, 신속한 인허가 체계가 모두 갖춰져야 한다.

아산은 삼성과 함께 30년 넘게 이런 조건을 축적해왔다.

삼성이 다시 아산에 대규모 투자를 결정한 배경을 ‘검증된 도시’라는 표현으로 설명할 수 있는 이유다.

생산기지만 아니었다…지역사회와 쌓은 신뢰

삼성과 아산의 관계는 공장과 투자에만 머물지 않았다.

삼성전자 온양사업장은 임직원 기부로 운영하는 ‘나눔키오스크’를 통해 지역 취약계층 아동을 후원하고, 사회복지기관에 친환경 차량을 지원하는 등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왔다.

명절에는 직거래장터와 상생마켓을 운영해 지역 농산물 소비 확대에도 참여했다.

삼성디스플레이도 2013년 아산시와 ‘행복아산 업무협약’을 맺고 지역 복지기관 지원과 복지사각지대 해소, 사회복지사업 발굴 등에 협력해왔다.

탕정한마음종합사회복지관 건립 지원과 취약계층 후원, 교육환경 개선, 농촌 봉사 등도 꾸준히 이어졌다.

삼성이 아산에서 일자리와 수출, 산업 성장을 이끌었다면 아산은 기업이 안정적으로 생산과 투자를 이어갈 수 있도록 도시 기반과 산업 인프라를 확충해왔다.

기업과 도시가 서로의 필요를 채우며 함께 성장해온 셈이다.

HBM·차세대 디스플레이…아산 산업지도가 다시 바뀐다

113조원 투자가 현실화하면 아산의 산업구조도 다시 한번 크게 달라질 전망이다.

온양에서는 HBM 중심의 첨단 반도체 후공정 산업이 강화되고, 탕정에서는 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 생산기반이 확대된다.

반도체와 디스플레이라는 두 축이 동시에 대규모 투자 국면에 들어가는 것이다.

관련 소재·부품·장비 기업의 추가 투자 가능성도 커진다.

대기업의 생산라인 증설은 협력기업의 동반 투자와 인력 수요, 연구개발 기능 확대를 유도할 수 있다. 기존 생산기지를 넘어 연구개발과 제조, 협력기업, 인재가 함께 모이는 첨단산업 클러스터로 발전할 여지도 있다.

아산시는 이번 투자가 지역 일자리와 인구 유입, 상권 활성화, 도시 인프라 확충으로 이어질 수 있도록 기업 지원과 정주여건 개선을 병행한다는 방침이다.

특히 대규모 투자가 계획에 그치지 않고 실제 공장 가동까지 이어지도록 인허가와 기반시설 구축 등을 밀착 지원할 계획이다.

오세현 아산시장은 “이번 삼성의 113조원 투자는 ‘3대 메가프로젝트’의 첫 삽이 전국 최초로 아산에서 시작된다는 의미와 함께 삼성이 아산의 성장 잠재력을 다시 한번 인증한 결단”이라며 “모든 행정 역량을 동원해 투자가 차질 없이 결실을 맺도록 밀착 지원하겠다”고 밝혔다.

오세현 아산시장(오른쪽)이 이재용 삼성전자 회장(왼쪽)과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아산시]

35년 전 온양의 반도체 공장에서 시작된 삼성과 아산의 동행은 이제 AI 반도체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무대를 옮기고 있다.

4메가 D램에서 HBM으로, TFT-LCD에서 OLED와 차세대 디스플레이로 기술은 바뀌었지만 생산기지의 중심에는 여전히 아산이 있다.

113조원이라는 숫자보다 눈여겨볼 대목도 여기에 있다. 기업이 수십 년에 걸쳐 같은 도시에서 투자를 이어간다는 것은 단순한 입지 선택 이상의 의미를 갖는다.

삼성과 아산이 지난 35년 동안 쌓아온 산업 기반과 협력 경험, 지역사회와의 신뢰가 다시 대규모 미래 투자로 연결되고 있다.

/아산=정종윤 기자(jy007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