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효경 기자] 하정우 국가인공지능(AI)전략위원회 상근부위원장이 소버린 AI의 범위를 한국어·한국문화에 특화된 모델 개발에서 전력·반도체·데이터센터·통신망·AI 활용까지 아우르는 국가 인프라 전략으로 확장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AI 데이터센터를 지식과 로봇의 행동을 생산하는 '토큰 공장'으로 육성하고 국내 AI 반도체와 산업단지까지 연계해 한국을 '지능 수출국'으로 만들자는 구상이다.

하 부위원장은 2일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 열린 '대한민국 글로벌 로봇 파운드리 도약과 K-피지컬AI 강국 실현을 위한 포럼'에서 '초거대 AI 시대 국가 인프라 전략'을 주제로 기조연설에 나섰다. 국가AI전략위원회 신임 상근부위원장 취임 후 최초로 마련된 외부 강연이다.
하 부위원장은 "AI 3대 강국과 글로벌 AI 핵심 공급망 국가를 실현하려면 데이터센터와 반도체, 통신, 전력 등 기반 인프라가 중요하다"며 "AI 기술이 인간 전문가의 능력을 빠르게 추월하면서 최상위 AI를 자체적으로 개발하고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는 역량이 국가 경쟁력을 좌우하게 됐다"고 진단했다.
"한국어 잘하는 모델, 소버린 AI 전부 아냐"
하 부위원장은 AI 성능을 측정하는 벤치마크 '인류의 마지막 시험(Humanity’s Last Exam·HLE)'을 예로 들었다. 2024년 말 공개 당시 최고 수준의 AI 모델도 100점 만점에 10점을 넘지 못했지만 현재는 50~60점 수준까지 올라섰다는 설명이다.
하 부위원장은 "AI에 데이터 검색과 메모리, 코딩 등의 도구를 결합한 에이전틱 AI도 산업 현장에 본격적으로 투입되고 있다"며 "단순한 질문에 답하는 것을 넘어 스스로 계획을 세우고 실행한 뒤 결과를 판단하면서 제조·금융·바이오 등 산업의 생산성을 높이고 있다"고 말했다.
하 부위원장은 이 같은 AI 경쟁력을 뒷받침하는 핵심 요소로 메모리와 데이터, 컴퓨팅 인프라를 꼽았다. 특히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보유한 한국은 고성능 메모리 공급망에서 강점을 갖고 있다고 평가했다. 인터넷에서 누구나 확보할 수 있는 데이터를 넘어 제조 현장 근로자의 경험과 암묵지 등 고품질 산업 데이터를 디지털화하는 것도 과제로 제시했다.
소버린 AI 역시 특정 언어나 문화에 특화된 AI 모델만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선을 그었다.하 부위원장은 "한국어를 많이 학습시켜 한국 문화를 잘 이해하는 모델을 만들자는 것만이 소버린 AI는 아니다"며 "인공지능은 전력부터 활용까지 전체를 아우르는 개념"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스스로 모든 것을 다 할 수는 없기 때문에 전략적으로 키울 수 있는 역량은 키우고, 부족한 부분은 우리가 주도적으로 글로벌 파트너와 채울 수 있는 능력을 확보해야 한다"며 "그것이 소버린 AI, 즉 AI 주권의 정의"라고 설명했다.
최상위 AI를 안정적으로 개발·운영하려면 전력과 반도체, 그래픽처리장치(GPU), 추론용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운영 능력, 산업별 에이전틱 AI 활용 경험까지 전 영역의 역량을 갖춰야 한다는 의미다.
하 부위원장은 한국의 AI 경쟁력에 대해서도 자신감을 나타냈다. 그는 원천 기술과 파운데이션 모델 분야에서 한국이 미국과 중국에 이어 경쟁력을 확보했으며, 정부의 독자 AI 파운데이션 모델 사업과 GPU·데이터센터 지원이 국내 기업의 기술 수준을 끌어올렸다고 평가했다.

AI 데이터센터서 지식·로봇 행동 생산⋯"지능 수출국으로"
하 부위원장은 AI 데이터센터를 AI 시대의 새로운 공장인 '토큰 공장'으로 규정했다. 토큰은 AI가 텍스트와 이미지, 프로그램 코드 등의 정보를 처리하고 생성하는 기본 단위다.
전력과 용수를 공급받는 AI 데이터센터에 GPU와 데이터가 투입되면 지식과 정보뿐 아니라 제조 현장에서 로봇을 움직이는 행동까지 토큰 형태의 결과물로 생산된다는 설명이다.
하 부위원장은 "전 세계의 조선소와 자동차 공장에서 로봇을 움직이고 업무를 자동화하는 토큰을 공급할 수 있다면 지능 수출국으로 가는 길이 될 것"이라며 "이것이 AI 시대 선도 국가로 가는 방법 중 하나"라고 말했다.
다만 국내에 데이터센터를 많이 건설한 뒤 글로벌 빅테크에 빌려주는 방식만으로는 부가가치를 국내에 남기기 어렵다고 지적했다. 국내 기술과 AI 반도체를 데이터센터에 결합해 제조·조선·자동차 등 산업에 특화된 고부가가치 토큰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글로벌 네트워크 인프라도 확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일반 제품이 비행기나 선박을 통해 수출된다면 AI가 만든 지식과 지능은 광케이블을 통해 이동하기 때문이다.
하 부위원장은 한국의 해저 광케이블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취약하고 태평양을 직접 연결하는 경로도 부족하다고 진단했다. 그는 "전 세계로 가장 많은 토큰을 수출해야 하는데 고속도로가 아니라 1~2차선 비포장도로가 놓인 것과 같다"며 해저케이블에 대한 대규모 투자를 주문했다.
AI 데이터센터 전략도 초대형 시설 건설에만 머물러서는 안 된다고 봤다. 대규모 학습용 데이터센터와 함께 산업단지 인근에 중소형·모듈형 데이터센터를 배치해 피지컬 AI의 추론을 담당하도록 해야 한다는 제안이다. 로봇과 자율 시스템은 낮은 지연시간이 중요한 만큼 실제 활용 현장 가까이에 데이터센터가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안정적인 전력 공급을 위해 발전원과 송·배전망, 에너지저장장치(ESS), 무정전전원장치(UPS) 투자도 함께 이뤄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에서 생산한 전력을 지역에서 소비하는 '지산지소' 방식으로 데이터센터와 산업단지를 연결하는 방안도 제시했다.
하 부위원장은 2029년까지 데이터센터를 빠르게 확보해야 미국을 비롯한 해외 AI 수요를 국내로 유치할 수 있다고 봤다. 정부와 지방자치단체가 전력·용수·부지와 세제 혜택, 규제 완화 등을 지원하되 데이터센터 사업자에게도 국내 AI 반도체와 서버 도입, 지역 산업 기여를 요구해야 한다고 했다.
그는 "데이터센터 자체는 고용이 많지 않다"며 "데이터센터가 지역 학교·스타트업·연구기관에 저렴한 컴퓨팅 자원을 제공하고 지역 인재를 채용하도록 하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어 "냉각 과정에서 발생하는 폐열의 재활용과 지역 전력망 안정화 대책도 데이터센터 건설 조건에 포함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하 부위원장은 반도체 제조 공정과 칩 설계, 소프트웨어, 데이터센터, AI 모델, 피지컬 AI를 하나의 풀스택 산업으로 연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지역의 전력망과 데이터센터, 클라우드, 로봇 파운드리를 연계하고 이곳에서 생산한 AI 로봇을 다시 공장과 산업 현장에 공급하는 선순환 구조를 만들자는 구상이다.
/최효경 기자(hyomirror@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