싸게 팔던 중국기업의 반격…'특허' 무기로 삼성·글로벌 기업 흔든다

싸게 팔던 중국기업의 반격…'특허' 무기로 삼성·글로벌 기업 흔든다

TCL·BOE·화웨이, 가격 경쟁 넘어 소송·특허료 요구
LCD 장악한 中, OLED·특허까지 진격…화웨이는 특허료 받는 단계로
가격·기술 넘어 특허·표준 전쟁…韓기업 경쟁 방정식 복잡해져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한때 '싼 가격'을 앞세워 글로벌 시장을 파고들던 중국 전자기업들이 달라지고 있다.

과거에는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글로벌 기업의 기술을 빠르게 따라잡고 가격 경쟁력으로 시장점유율을 높이는 전략이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자체 기술과 특허를 쌓아 글로벌 경쟁사를 법정에 세우고 특허 사용료까지 요구하는 단계로 올라섰다.

CES 2026의 TCL 부스 입구. [사진=박지은 기자]

중국 기업들이 단순한 '저가 추격자'에서 벗어나 기술과 특허를 무기로 글로벌 기업을 직접 압박하는 경쟁자로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삼성이 우리 기술을 잘못 광고했다"…TCL, 삼성에 소송

로이터통신에 따르면, 중국 TV 업체 TCL은 지난 1일(현지시간) 미국 캘리포니아주 중앙 연방지방법원에 삼성전자와 회사의 미국법인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TCL은 삼성전자가 일부 TV 제품을 실제 기술과 다르게 '미니 LED' 제품으로 광고해 소비자를 혼동시키고 TCL의 매출과 브랜드 가치에 피해를 줬다고 주장했다. TCL은 해당 표현 사용 중단과 손해배상을 요구했다. 삼성전자는 제품 설명의 정확성과 품질에 문제가 없다며 적극 대응하겠다는 입장이다.

TCL 4K 미니 LED TV [사진=TCL]

이번 소송은 중국 TV 기업의 위상이 얼마나 달라졌는지를 보여주는 사례라는 평가가 나온다.

불과 1년여 전만 해도 삼성전자가 TCL을 상대로 소송을 제기하는 쪽이었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독일에서 TCL의 일부 TV가 'QLED'라는 이름에 걸맞은 퀀텀닷 기술을 갖추지 않았다며 법적 대응에 나섰다. 독일 법원은 올해 3월 삼성전자 측 주장을 받아들여 해당 제품의 QLED 광고 중단을 명령했다.

하지만 이번에는 TCL이 미국 법원에서 삼성전자를 상대로 직접 소송을 제기했다.

과거 글로벌 기업이 중국 기업의 기술과 제품을 견제하는 구도였다면, 이제는 중국 기업도 기술력을 앞세워 글로벌 1위 기업을 상대로 법적 대응에 나서는 상황이 만들어지고 있는 것이다.

LCD는 가격으로 장악…이제 OLED·특허까지

중국 기업들의 전략 변화는 디스플레이 산업에서 가장 뚜렷하게 나타난다.

중국 BOE와 TCL CSOT 등은 대규모 생산능력과 가격 경쟁력을 앞세워 글로벌 LCD 시장의 주도권을 확보했다. 중국 기업의 대규모 투자 이후 LCD 가격 경쟁이 심화되면서 한국 기업들은 수익성이 떨어진 LCD 사업에서 철수하거나 생산을 축소해야 했다.

BOE가 투자·건설한 중국 첫 8.6세대 AMOLED 생산라인. [사진=신화통신]

이후 중국 기업들은 LCD에 머물지 않고 한국 기업들이 강점을 유지해 온 OLED 등 고부가가치 기술로 영역을 넓히기 시작했다. 중국 업체들이 저가 대중시장 기술을 장악한 뒤 한국 기업의 기술 우위 영역까지 진입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오는 이유다.

삼성디스플레이와 BOE의 특허 분쟁도 이런 변화를 보여준다. 삼성디스플레이가 BOE를 상대로 OLED 특허와 영업비밀 침해 문제를 제기하자 BOE 역시 미국에서 삼성디스플레이를 특허침해 혐의로 맞소송했다. 양측은 이후 특허 분쟁을 합의로 마무리했다.

중국 기업 입장에서는 자체 특허가 글로벌 기업의 소송에 대응하는 '방패'인 동시에 협상력을 높이는 '무기'가 된 셈이다.

특허 쌓은 화웨이…이젠 미국 기업에 사용료 요구

화웨이는 중국 기업의 변화를 가장 잘 보여주는 사례다. 화웨이는 막대한 연구개발 투자를 통해 글로벌 특허 경쟁력을 높였고, 이를 실제 사업 협상에 활용하고 있다.

MWC 상하이 2025 화웨이 부스 모습. [사진=한국화웨이]

특허를 보유하면 경쟁사의 특허침해 소송에 대응할 수 있을 뿐 아니라, 상대 기업을 상대로 맞소송을 제기하거나 특허 사용료를 요구할 수도 있다. 결국 특허가 많다는 것은 단순히 기술을 많이 개발했다는 의미를 넘어 글로벌 기업과 협상할 수 있는 힘을 확보했다는 의미다.

화웨이는 최근 미국 PC 업체 HP와 무선통신 기술 등을 포함한 글로벌 특허 크로스라이선스 계약을 체결했다. 글로벌 시장에서 미국의 제재를 받고 있는 화웨이가 역설적으로 미국 기업과 특허를 놓고 협상할 수 있는 위치에 올라섰다는 점을 보여주는 사례다.

중국 기업들이 과거처럼 해외 기업의 특허를 사서 사용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제는 자신들이 보유한 기술의 대가를 요구하는 단계로 올라섰다는 분석이다.

특허 없는 中기업은 역으로 피소…트랜션의 '성장통'

모든 중국 업체가 특허 '공격수'로 올라선 것은 아니다. 중국 스마트폰 업체 트랜션은 테크노·인피닉스·아이텔 등 저가 브랜드를 앞세워 아프리카를 비롯한 신흥시장에서 빠르게 성장했지만 해외 사업을 확대하면서 특허 장벽에 부딪혔다.

샤오미의 플래그십 스마트폰 '샤오미 17 울트라'를 살펴보는 기자들. [사진=샤오미]

외신에 따르면 퀄컴은 트랜션을 상대로 인도에 이어 유럽과 중국에서 특허침해 소송을 제기했고 필립스도 인도에서 소송에 나섰다. 노키아 역시 트랜션에 특허 사용료를 요구했다.

이는 가격 경쟁력만으로 글로벌 시장에서 성장하는 데는 한계가 있다는 점을 보여준다. 자체 특허와 핵심 기술을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기업은 시장점유율을 높아질 수록 오히려 글로벌 기업들의 특허망에 더 많이 노출될 가능성이 커지기 때문이다.

반대로 화웨이와 BOE, TCL처럼 특허 경쟁력을 확보한 기업은 글로벌 경쟁사의 공격을 방어하는 데 그치지 않고 특허를 무기로 글로벌 기업과 경쟁하기 시작했다.

'가격 vs 기술' 공식 깨졌다…삼성·LG도 복잡해진 中 경쟁

삼성전자와 LG전자 등 한국 기업들이 직면한 중국 기업과의 경쟁 구도도 달라질 수밖에 없다.

삼성전자와 LG 등 한국 기업 입장에서는 중국과의 경쟁이 더 이상 '가격 대 기술'의 단순한 구도가 아니라 제품 경쟁력은 물론 특허, 표준, 공급망, 글로벌 소송까지 확장되고 있다.

삼성 LG 로고 합침 [사진=서민지 기자]

대외경제정책연구원(KIEP)도 지난해 발간한 보고서에서 중국이 "2000년대 중반 이후 기술 자립과 영향력 확대를 통해 특허 네트워크상에서 신흥 강자로 부상했다"고 평가했다.

KIEP는 중국의 부상이 "무역이나 공급망 차원을 넘어 특허 네트워크 차원에서도 나타나고 있다"며 한국도 생산과 특허 네트워크를 함께 살펴 기술·공급망 충격을 선제적으로 관리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