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김정관 산업통상부 장관이 1일 다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습니다. 대미 투자 문제를 논의하기 위해 지난달 미국을 찾은 지 불과 13일 만입니다.
김 장관은 지난달 16~19일 워싱턴DC를 찾아 하워드 러트닉 미국 상무장관과 이틀 연속 만나 대미 전략투자 프로젝트를 논의했습니다. 이날 다시 미국으로 향한 김 장관은 러트닉 장관과 만나 관련 논의를 최종적으로 정리할 계획입니다.

그는 출국길에서 "관련 일정들을 국내에서 논의해왔기 때문에 그런 내용을 최종적으로 정리할 필요가 있다"고 밝혔습니다.
미국을 향한 한국 기업들의 투자 행렬은 이미 반도체와 배터리, 자동차, 철강 등으로 빠르게 확산하고 있습니다. 미국은 제조업 부활을 내걸고 한국 기업에도 더 많은 현지 투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이미 미국에 공장을 짓고 있는 기업들의 현장에서는 다른 목소리가 나옵니다. 막대한 투자금을 마련하는 것만큼 실제 공장을 짓고 가동하는 과정도 만만치 않다는 겁니다.
미국 텍사스주 테일러에 들어선 삼성전자 반도체 공장에서는 현재 '훅업(Hook-up)' 작업이 한창입니다. 공장에 반도체 장비를 들여온 뒤 전기와 가스, 용수, 배기시설 등을 연결해 실제 생산이 가능하도록 만드는 작업입니다.
삼성전자는 테일러 1공장의 연내 가동을 목표로 장비 설치와 공정 안정화 작업을 진행하고 있습니다. 본격적인 양산은 내년부터 시작할 계획입니다.
문제는 속도입니다. 현지 사정에 밝은 업계 관계자들에 따르면 미국에서는 반도체 공장과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등 대형 건설 프로젝트가 한꺼번에 늘면서 필요한 인력을 구하는 것부터 쉽지 않다고 합니다.

인건비와 공사비 부담은 큰 반면 한국과 다른 작업 방식과 인력 운용 등으로 공사 속도를 끌어올리는 데도 어려움이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특히 훅업은 전기와 배관 등 숙련인력이 대거 필요한 작업입니다. 현지 작업 속도가 기대만큼 나지 않으면서 정해진 공기를 맞춰야 하는 한국 파견 직원들의 부담도 상당하다고 합니다.
삼성전자만 겪는 문제는 아닙니다. 세계 최대 파운드리 업체 TSMC도 미국 애리조나에 대규모 반도체 생산기지를 건설하면서 비슷한 벽에 부딪혔습니다.
로이터는 지난 7월 "TSMC가 애리조나 투자를 확대하는 과정에서 건설 노동자 부족과 기반시설의 제약에 직면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웬델 황 TSMC 최고재무책임자(CFO)도 "물리적인 제약이 있다. 확보할 수 있는 건설 노동자의 수와 이용 가능한 기반시설이 그렇다"고 밝혔습니다. 이어 "팹을 짓는 데 2~3년이 걸리고 생산능력을 끌어올리는 데 다시 1~2년이 걸린다"며 "지름길은 없다"고 말했습니다.
미국이 제조업을 다시 불러들이는 속도를 현장의 인력 기반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는 셈입니다.

미국은 수십 년 동안 제조시설이 해외로 이동하면서 제조업 기반과 숙련인력 생태계가 약해졌습니다. 최근 반도체 공급망 재편과 AI 경쟁이 본격화되자 첨단 제조시설을 다시 자국으로 끌어들이고 있지만 공장을 지을 사람과 경험까지 단기간에 늘리기는 어렵습니다.
삼성전자와 TSMC뿐만이 아닙니다. 인텔과 마이크론도 미국 곳곳에서 대규모 반도체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는 지난달 27일 인디애나주 웨스트라피엣에서 40억달러 규모의 고대역폭메모리(HBM) 후공정 공장 착공식을 열었습니다. 공장 건설과 운영 등을 통해 약 7000개의 일자리가 만들어질 것으로 예상됩니다.
인텔이 오하이오주 뉴앨버니에 짓고 있는 반도체 공장에서도 속도 문제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현지 공영방송 WOSU는 지난달 26일 "인텔의 오하이오 반도체 공장 건설이 느리지만 꾸준하게 진행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첫 번째 팹의 완공 목표는 2031년으로 잡혀 있습니다.
기업들은 아예 필요한 사람을 직접 키우기 시작했습니다. 마이크론은 지난달 24일 아이다호주 보이시에 약 5574㎡ 규모의 반도체 인력훈련센터를 열었습니다. 신규 직원들이 실제 팹 운영과 제조 시스템을 직접 익힐 수 있도록 교육하고 견습 프로그램도 확대하기 위해서입니다.
AI 데이터센터 건설 붐은 인력난을 더 키우고 있습니다. 반도체 공장과 데이터센터, 발전소와 송전망 모두 전기공과 배관공 등 비슷한 숙련인력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댈러스 연방준비은행은 지난달 17일 텍사스 경기 보고서에서 "데이터센터 건설 붐으로 콘크리트 작업자와 전기공 같은 숙련인력이 부족해지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보고서는 수요가 많은 숙련공을 다른 업체가 데려가는 일이 늘면서 이직도 잦아지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불과 3~6개월 전에 채용한 자리를 다시 채워야 하는 사례까지 나타나고 있습니다.
댈러스 연은은 "데이터센터 건설과 관련된 직종을 중심으로 숙련인력을 구하기 위한 경쟁이 계속되고 있다"고 짚었습니다. 지난 7월 보고서에서도 "데이터센터 개발업체들이 전기공과 기술자 등 숙련인력을 찾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미국 제조업 부활이 역설적으로 '사람 부족'이라는 새로운 병목을 만들고 있는 것입니다. 공장 건설 계획과 투자금은 빠르게 늘어나지만 수십 년에 걸쳐 약해진 제조업 인력 기반은 같은 속도로 되살아나지 않고 있습니다.
그 사이 현장에서는 예상보다 많은 시간과 비용이 들어가고, 공기를 맞추기 위해 한국에서 파견된 직원들의 업무 부담도 커지고 있다는 얘기가 나옵니다. 삼성전자뿐 아니라 미국에 생산시설을 늘리고 있는 국내 제조기업들이 공통으로 마주할 수 있는 문제입니다.

미국은 제조업을 되살리겠다며 한국을 비롯한 해외 기업에 더 많은 투자를 요구하고 있습니다. 한국 기업들도 이미 막대한 자금을 들여 미국 곳곳에 공장을 짓고 있습니다.
미국의 제조업 재건을 위한 투자가 필요한 것과 별개로 현장의 여건이 이를 감당할 수 있는지도 살펴볼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진행 중인 공장 건설조차 인력과 비용 문제로 기업과 파견 직원들이 어려움을 겪는 상황에서 추가 투자 요구만 계속 늘리는 것이 지속 가능한 방식인지도 고민해볼 대목입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