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윤 기자] 47학급, 학생 1300명이 넘는 과밀학교에서 과학수업과 방송·정보화 기자재 관리, 임시 담임에 부장 업무까지 맡았던 41세 교사가 지난해 추석 연휴를 앞두고 숨졌다. 유가족과 동료 교사들은 그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만 봐서는 안 된다며 학교의 과중한 업무구조를 살펴 순직 여부를 판단해 달라고 요구했다.
충남교사노동조합은 1일 오전 10시 30분 충남도청 프레스센터에서 고(故) 윤범진 교사의 유가족과 동료 교사, 순직 신청을 대리하는 변호사 등이 참석한 가운데 ‘고 윤범진 교사 순직인정 촉구 기자회견’을 열었다.
윤 교사는 2025년 10월 추석 연휴를 앞두고 자택에서 숨진 채 발견됐다. 당시 41세였다.

윤 교사가 근무했던 아산신도시의 중학교는 당시 47학급, 학생 1307명 규모의 대규모 과밀학교였다. 윤 교사는 15년간 과학 교사로 재직했고 숨지기 전에는 일주일에 22시간, 하루 평균 4.5시간가량 수업을 담당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수업·평가·학생지도 외 업무도 적지 않았다.
충남교사노조와 유가족에 따르면 윤 교사는 과학정보부 소속으로 시청각·방송 업무를 맡아 교내 방송 송출과 장비 관리 등을 담당했다. 학교 건물 3개 동을 오가며 방송 상태를 확인하고 각종 기자재의 고장과 유지·보수 문제도 처리했다.
50대가 넘는 전자칠판과 전자교탁, 교사용 노트북, 방송기기와 각종 소모품 관리도 그의 업무에 포함됐다.
2025년 6월에는 담임교사의 병가로 임시 담임까지 맡았다. 여기에 과학정보부장 교사의 휴직으로 부장 업무 인수인계까지 겹치면서 업무 부담이 더욱 커졌다는 게 유족과 노조의 주장이다.
유가족은 기자회견에서 “남편을 가장 짓눌렀던 것은 학생을 가르치는 일이 아니라 학교의 수많은 기자재와 정보화 장비를 책임지는 일이었다”며 “남편의 죽음이 한 가족의 슬픔으로만 남지 않도록 한 교사가 극한까지 내몰렸던 학교 업무구조와 교육환경을 국가와 교육당국이 함께 돌아봐야 한다”고 호소했다.
동료 교사도 윤 교사가 대규모 학교에서 방송·정보 관련 업무와 담임 업무 등을 동시에 수행하며 상당한 부담을 겪었다고 증언했다.
동료 교사는 “46학급이 넘는 거대 학교에서 노후한 방송장비와 부족한 예산 속에 매일 여러 건물을 오가며 문제를 해결했다”며 “선생님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만 볼 것이 아니라 학교 현장의 구조적인 업무 과중과 행정지원 부재의 문제도 함께 살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윤 교사의 순직 신청을 대리하는 이나연 변호사는 순직 여부를 판단할 때 실제 수행했던 업무의 내용과 총량·강도, 업무 과정에서 누적된 신체적·정신적 부담을 종합적으로 살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 변호사는 “과중한 업무로 극한에 내몰려 사망한 고 윤범진 교사의 죽음을 개인의 불행으로만 남겨서는 안 된다”며 “순직 인정은 국가가 그 희생에 책임을 다하는 첫걸음”이라고 말했다.
충남교사노조와 유가족은 기자회견을 마친 뒤 아산교육지원청에 윤 교사의 순직인정신청서를 제출했다.
아산교육지원청은 사망경위조사서 등 관련 서류를 작성해 공무원연금공단으로 보낸다. 이후 공무원연금공단의 사실관계 조사·확인을 거쳐 인사혁신처 공무원재해보상심의회에서 최종 순직 인정 여부를 심의한다.
윤 교사의 사망 이후 해당 학교가 방송 관리 업무를 외주화한 사실도 알려졌다. 유족과 교사노조가 제기한 학교 내 업무분장의 적정성을 둘러싼 논의가 순직 심사와 별개로 교육현장의 과제로 남게 된 셈이다.
최재영 충남교사노조 위원장은 “고 윤범진 선생님의 죽음을 개인의 문제로 돌려서는 안 된다”며 “교사가 수업과 학생지도에 전념하지 못한 채 전문성과 무관한 행정업무까지 떠안고 버텨야 했던 학교의 구조를 살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충남교육청도 고인의 순직 심사에 필요한 절차에 책임 있게 협조하고 다시는 교사의 헌신과 희생에 기대어 학교가 운영되지 않도록 학교 행정업무 구조를 근본적으로 개선해야 한다”고 촉구했다.
/내포=정종윤 기자(jy0070@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