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란 기자] 한 번 충전과 발전용 엔진의 결합으로 약 966㎞를 달린다. 현대자동차가 전기차와 내연기관의 장점을 결합한 주행거리 연장형 전기차(EREV)를 앞세워 '전기차 캐즘'이 길어지는 미국 시장 공략에 나선다.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미국에서 싼타페 EREV를 출시하고, 이어 제네시스 EREV도 선보일 예정이다.
충전 인프라가 상대적으로 부족하고 장거리 이동이 많은 북미 시장의 특성을 겨냥한 전략이다. 차량 생산뿐 아니라 배터리 공급망까지 현지화해 북미 전기차 시장에서 원가 경쟁력과 공급 안정성을 동시에 확보하겠다는 구상이다.
1일 업계에 따르면 현대차는 내년 상반기 싼타페와 제네시스 EREV를 북미 시장에 투입한다. 순수 전기차 전환 속도가 예상보다 더딘 상황에서, 충전 부담은 줄이면서 전기차 특유의 주행 성능을 유지하는 EREV를 새로운 대안으로 제시한 것이다.

EREV는 배터리로 차량을 구동하면서 엔진은 배터리를 충전하는 발전기로 쓰는 방식이다. 배터리 잔량이 충분할 때는 전기차와 유사한 주행 감각을 유지하다가 배터리가 부족해지면 엔진이 돌아가며 전기를 만들어 주행을 이어간다.
전기차의 정숙성과 주행 감각은 유지하면서도 충전 인프라와 주행거리 불안이라는 전기차의 약점을 엔진으로 보완하는 것이 EREV의 핵심이다.
현대차가 EREV를 북미 시장에 선제 투입하는 이유는 명확하다. 국토가 넓고 지역별 충전 인프라 격차가 큰 미국은 전기차의 주행거리 불안이 가장 크게 부각되는 시장이기 때문이다.
이런 미국 시장의 특수성은 국토가 좁고 이동 거리가 짧은 국내와 비교하면 더욱 뚜렷해진다. 서울에서 부산까지도 400㎞ 남짓에 불과하고 전국 어디를 가더라도 하루 만에 왕복이 가능한 한국에서는 실익이 크지 않다.
또 충전 인프라도 도심과 고속도로 휴게소 위주로 촘촘하게 갖춰져 있어 장거리 이동 중 충전 공백에 대한 소비자 불안감 자체가 낮다.
반면 편도 수백㎞ 이동이 많고 지역별 충전 인프라 격차가 여전히 큰 미국에서는 주행거리 확장이야말로 소비자를 움직일 핵심 요인으로 꼽힌다.
호세 무뇨스 현대차 대표이사 사장은 지난 26일 서울 콘래드서울호텔에서 열린 '2026 CEO 인베스터 데이' 미디어 간담회에서 "미국 시장에서 EREV는 앞으로 개척자가 될 것"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싼타페 EREV는 내년 상반기 미국 앨라배마 공장에서 현지 생산돼 출시된다. 2개의 전기모터와 새로 개발한 고성능 배터리를 조합해 600마일(약 966㎞) 이상의 목표 주행거리를 갖춘다.
제네시스 EREV도 2027년 초 출시 예정으로 640마일(약 1030㎞) 이상의 주행거리를 목표로 한다.

EREV의 경쟁력은 배터리 기술에도 있다.
현대차그룹은 일반 순수 전기차보다 배터리 용량을 50% 미만으로 줄이는 대신 자체 개발한 고출력 배터리 셀을 적용해 충분한 성능과 전기차 특유의 주행감을 구현한다는 전략이다.
배터리 용량을 줄이면 차량 가격과 무게를 낮추는 데 유리하다. EREV는 장거리 주행에 필요한 에너지를 모두 대용량 배터리에 의존하지 않고 엔진을 발전기로 활용하기 때문에 순수 전기차보다 상대적으로 작은 배터리를 사용할 수 있다.
새 배터리 셀은 기존 하이니켈 배터리와 비교해 출력 성능을 2배 이상 높이고 충전 시간은 40% 줄인 것으로 전해졌다.
대용량 배터리로 주행거리를 늘리는 기존 전기차 방식 대신, 고출력 배터리와 발전용 엔진을 결합해 비용·무게·충전 부담의 균형을 맞추겠다는 것이 현대차 EREV 전략의 핵심이다.

현대차그룹은 EREV 출시와 함께 북미 배터리 공급망 현지화에도 속도를 내고 있다.
현대차그룹은 SK온과 함께 미국 조지아주 바토우 카운티에 배터리 합작법인 HSBMA(Hyundai SK Battery Manufacturing America)를 설립해 운영 중이다.
HSBMA는 현대차그룹과 SK온이 각각 50%씩, 총 50억달러를 공동 투자해 설립한 배터리 합작법인이다. 연간 35GWh, 전기차 약 30만대분의 배터리 셀 생산 능력을 갖추고 있다.
HSBMA는 현대차그룹 메타플랜트 아메리카(HMGMA)와 기아 조지아 공장, 현대차 앨라배마 공장과 인접해 있어 공급망 관리 측면에서 유리하다는 평가를 받는다.
HSBMA에서 생산된 배터리 셀은 현대모비스가 팩으로 제작해 북미에서 생산하는 현대차, 기아, 제네시스 전기차에 공급될 예정이다.
추후 EREV용 배터리 셀도 HSBMA에서 생산될 가능성이 거론된다. 싼타페 EREV를 비롯한 향후 EREV 모델의 현지 생산 여부에 따라, HSBMA를 중심으로 한 북미 배터리 공급망과 맞물려 돌아갈 가능성도 있다는 관측이다.
앞서 현대차그룹은 2030년까지 북미 부품 현지화율을 현재 약 60%에서 80%까지 높이겠다고 밝힌 바 있다. 북미에서 생산하는 차량의 공급망을 현지 중심으로 재편해 원가 경쟁력을 확보하겠다는 것이다.
/최란 기자(r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