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정종오 기자] 연구자가 인공지능(AI)에게 요청하면 AI가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고 어떤 물질이 잘 결합할지 분석해 유망한 신약 후보를 설계하는 기술이 나왔다. 한국과학기술원(KAIST) 연구팀이 세계에서 가장 빠르게 단백질 구조 예측을 수행하는 바이오 AI 모델 ‘K-Fold(케이폴드)’를 국내 독자 기술로 개발했다.
일부 항목에서는 구글 딥마인드(Google DeepMind)의 알파폴드3(AlphaFold 3)의 능력을 뛰어넘었다.
KAIST(총장 배충식)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 ‘AI 특화 파운데이션 모델 프로젝트’의 주관기관으로 ‘팀 KAIST’를 구성하고 차세대 바이오 AI 모델 ‘K-Fold’를 28일 공개했다.

‘팀 KAIST’는 화학과 김우연 교수가 연구를 총괄하고 김우연 교수 그룹과 김재철AI대학원 황성주·안성수 교수 그룹 연구원들이 AI 모델 개발을, 생명과학과 오병하·김호민·이규리 교수가 단백질 데이터 구축과 검증을 담당한다.
KAIST 교원창업기업 히츠(HITS)는 K-Fold를 연구자가 실제 활용할 수 있도록 웹 기반 AI 연구 플랫폼 ‘하이퍼랩(HyperLab)’과 연계해 서비스로 구현했다. K-Fold의 성과 확산과 산업계 활용 촉진은 한국제약바이오협회와 한국바이오협회가 맡는다.
K-Fold의 가장 큰 특징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단백질과 약물의 ‘결합’을 AI로 예측한다는 것이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먼저 질병과 관련된 단백질이 어떤 모양인지 파악하고 수많은 물질 가운데 어떤 것이 그 단백질에 잘 붙어 원하는 작용을 하는지 찾아야 한다. K-Fold는 단백질의 3차원 구조를 예측하는 것은 물론 약물 후보가 단백질의 어디에 어떤 모습으로 결합할지까지 미리 계산해 유망한 후보를 빠르게 찾도록 돕는다.
단백질 하나의 구조만 예측하는 데 그치지 않는다. 단백질과 단백질, 단백질과 약물 후보 물질, DNA·RNA 등 여러 생체분자가 서로 만났을 때 어떤 구조를 만드는지까지 예측할 수 있다.
성능도 세계적 수준이다. 지난 3월 과제 단계평가에서 K-Fold의 분자 복합체 구조 예측 정확도는 구글 딥마인드의 AlphaFold3(알파폴드3)에 근접한 수준으로 평가됐다. 연구팀이 8월 자체 수행한 성능평가에서는 일부 평가 항목에서 기존 글로벌 모델보다 높은 성능도 확인했다.

암을 비롯한 여러 질환의 주요 신약 표적인 G-단백질 연결 수용체(GPCR)와 인산화효소(Kinase), 질병을 일으키는 단백질을 직접 제거하는 새로운 신약 기술인 표적단백질분해(TPD) 분야에서 약물이 표적 단백질에 어떻게 결합하고 작용하는지를 예측하는 데 높은 성능을 보였다.
기존 단백질 구조 예측 AI는 구조를 계산하기 전에 비슷한 단백질의 서열 정보를 대량으로 찾아 비교하는 복잡한 사전 작업이 필요했다. K-Fold는 이러한 과정에 의존하지 않는 새로운 방식을 적용해 사전 계산 단계를 없애고 기존 모델 대비 구조 예측 속도를 최대 25배 높였다.
같은 시간에 더 많은 신약 후보를 살펴볼 수 있다는 의미다. 구조 예측에 필요한 시간과 컴퓨팅 자원을 줄이면서 수많은 후보 가운데 가능성이 큰 물질을 빠르게 골라내 연구자가 실제 실험할 대상을 좁히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배충식 KAIST 총장은 “AI시대의 국가 경쟁력은 핵심 기술을 우리 스스로 개발하고 활용할 수 있는 ‘소버린 AI’ 역량에 달려 있다”며 “K-Fold는 국내 독자 AI 기술을 바이오와 결합해 세계 수준의 기술에 도전하고, 실제 신약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서비스로 연결했다는 데 의미가 큰데 KAIST는 앞으로도 AI 원천기술과 과학기술의 융합을 통해 대한민국의 AI 기술 주권과 미래 경쟁력을 높여가겠다”고 말했다.
연구팀은 K-Fold를 개발하는 데서 그치지 않고 연구자가 웹에서 대화하듯 사용할 수 있는 AI 연구 서비스로 구현했다.
KAIST 교원창업기업 히츠의 멀티에이전트 플랫폼 ‘하이퍼랩(HyperLab)’에 K-Fold를 탑재해 별도의 고성능 컴퓨터를 직접 구축하거나 복잡한 AI 프로그램을 다루지 않아도 사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자가 “이 단백질에 강하게 결합하는 항체를 설계해줘”라고 요청하면 AI가 단백질 구조를 예측한다. 결합 가능성이 큰 후보를 설계한 뒤 계산을 통해 결과를 평가하는 과정을 단계적으로 지원한다.
“이 암 표적 단백질에 적합한 펩타이드 후보를 찾아줘”라고 요청하는 것도 가능하다. 연구자가 직접 여러 프로그램을 옮겨 다니며 구조를 계산하고 결과를 분석하는 대신 AI에게 연구 목표를 말하면 필요한 분석과 설계를 차례로 수행하도록 한 것이다.
하이퍼랩은 이를 위해 구조 예측과 약물 설계, 유전체·단백질 등 생명과학 데이터 분석에 활용할 수 있는 120여 개의 계산 도구와 160여 개의 전문 기능을 갖췄다. 100여 개의 전문 데이터베이스와 대규모 지식그래프를 연결해 필요한 연구 정보를 찾아 분석에 활용할 수 있도록 했다.
연구 질문을 이해하고 필요한 도구를 선택해 구조를 예측하고 결과를 분석한 뒤 다시 설계를 개선하는 일련의 과정을 지원한다는 점에서 연구자를 돕는 ‘AI 공동연구자(Co-Scientist)’를 지향한다.
바이오 AI는 신약 개발의 시간과 비용을 줄일 수 있는 핵심 기술로 떠오르면서 미국·영국·중국의 글로벌 빅테크와 주요 연구기관들이 치열한 개발 경쟁을 벌이고 있다. 이번 K-Fold 개발은 바이오 AI 핵심 기술을 해외 모델에만 의존하지 않고 국내 기술로 확보해 실제 연구에 활용할 수 있는 ‘소버린 바이오 AI’ 기반을 마련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
이번 성과는 지난 6월 23일 열린 ‘2026 한국생체분자과학연합학술대회’에서 김우연 교수가 ‘에이전틱 AI 기반 생성형 신약 설계(Generative Drug Design Powered by Agentic AI)’를 주제로 한 기조강연을 통해 처음 공개했다.
김우연 KAIST 화학과 교수는 “K-Fold는 기존 모델을 따라가는 게 아니라 새로운 AI 구조를 적용해 기존 방식의 한계를 뛰어넘기 위해 개발했다”며 “세계 최고 수준의 바이오 AI를 연구자 누구나 활용할 수 있는 과학 AI 플랫폼으로 발전시키겠다”고 말했다.
‘팀 KAIST’ 컨소시엄은 K-Fold를 무료로 배포할 예정이다. 하이퍼랩은 국내외 연구자를 대상으로 베타 서비스를 제공한 뒤 올해 안에 단계적으로 상용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정종오 기자(ikokid@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