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창재 기자] 김용판 대구 달서구청장이 취임하자마자 달서구 행정의 판을 다시 깔고 있다. 그런데 지금까지 공개된 내용을 보면 ‘새 판’보다 먼저 눈에 들어오는 것은 걷어낼 사업들의 목록이다.
69개 사업이 일몰 검토대상에 올랐다. 달서생태관과 달성습지 에코전망대, 달서 별빛천체과학관 등 총사업비 594억원 규모의 대형 프로젝트도 포함됐다.

행정에서 불필요한 사업을 없애는 것은 필요하다. 세금이 들어가는 사업이라면 더욱 그렇다. 전임 구청장이 추진했다는 이유만으로 성역이 될 수도 없다.
하지만 전임 행정의 판을 걷어내는 것과 더 나은 판을 만드는 것은 완전히 다른 문제다.
달서구는 지난 21일 민선 9기 재정운용 대혁신을 위한 ‘일몰사업 보고회’를 열었다. 김 구청장이 지난 13일 선언한 ‘재정 비상체제 전환 및 예산운용 대혁신’의 후속 조치다.
달서구가 밝힌 재정 상황은 분명 녹록지 않다.
실질 가용재원은 줄고 대규모 시설 건립에 따른 부담은 커지고 있다. 재정자립도는 계속 떨어지고 있 사회복지비 비율은 전국 기초지자체 가운데 세 번째로 높다고 한다.
그렇다면 기존 사업을 원점에서 들여다보는 것은 당연하다.
문제는 숫자다.
당초 56개였던 일몰 검토사업은 69개로 늘었다. 그런데 이를 통해 달서구가 제시한 예상 절감액은 약 19억6000만원이다.
69개 사업을 한꺼번에 구조조정하는 것과 비교하면 선뜻 고개가 끄덕여지는 규모인지 의문이다.
더구나 달서구는 이를 ‘재정 비상체제’, ‘예산운용 대혁신’이라고 부르고 있다.
그 정도의 표현을 사용하려면 적어도 19억6000만원을 줄였다는 사실을 넘어 달서구 재정구조가 어떻게 달라지는지를 시민들에게 보여줘야 한다.
두근두근 페스티벌과 달서맛축제를 대표축제로 통합한다고 한다. 중복을 없애고 효율성을 높일 수 있다면 반대할 이유가 없다.
그러나 행정의 효율성은 단순히 행사 숫자를 줄인다고 생기는 것이 아니다.
기존 행사가 어떤 경제적·문화적 효과를 냈는지, 통합했을 때 기존 참여자와 상권이 입을 손실은 없는지, 새 대표축제가 기존 행사보다 얼마나 경쟁력이 있는지를 먼저 따져야 한다.
‘두 개를 하나로 만들었다’는 것은 행정행위일 뿐 그 자체가 성과는 아니다.
더 신중해야 할 대목은 594억원 규모의 대형 사업들이다.
달서생태관, 달성습지 에코전망대, 달서 별빛천체과학관 건립까지 일몰 대상으로 올렸다.
대형 시설은 한번 만들면 운영비가 지속적으로 들어간다. 이용객이 적고 경제성이 떨어지는 시설이라면 과감하게 중단하는 것이 맞다.
하지만 반대쪽 계산도 해야 한다.
그동안 사업을 위해 투입된 용역비와 설계비는 얼마인지, 진행된 행정절차는 어디까지인지, 국·시비 확보와 관련된 문제는 없는지, 사업을 중단할 경우 발생하는 매몰비용은 얼마인지까지 공개돼야 한다.
앞으로 들어갈 돈만 계산해서 ‘절감’이라고 부르고 이미 들어간 돈과 포기해야 할 편익을 계산하지 않는다면 그것은 온전한 재정혁신이라고 보기 어렵다.

무엇보다 김용판표 구조조정이 경계해야 할 것은 ‘전임 흔적 지우기’라는 의심이다.
새 단체장이 취임하면 이전 단체장의 핵심 사업을 재검토하는 모습은 지방정부에서 낯설지 않다.
문제는 이 과정이 반복될 때다.
전임자가 만들고 후임자가 없애고, 또 다음 단체장이 새로운 사업을 시작한다면 가장 큰 피해자는 정치인이 아니다. 그 과정에서 사라지는 행정의 연속성과 이미 투입된 시민의 세금이다.
그래서 사업 일몰에는 사업 신설보다 더 냉정한 기준이 필요하다.
누가 시작했느냐가 아니라 왜 필요 없게 됐는지, 정치적 판단이 아니라 객관적인 비용·편익과 주민 수요가 어떻게 달라졌는지를 숫자로 설명해야 한다.
김 구청장이 스스로 제시한 기준도 있다.
“구민에게 정말 필요한가”, “투입한 예산만큼 효과가 있는가”, “달서의 미래에 도움이 되는가”다.
좋은 질문이다.
그런데 이 질문은 일몰 대상인 69개 사업에만 적용돼서는 안 된다.
앞으로 김용판 구청장이 새롭게 추진할 모든 사업에도 똑같이 적용돼야 한다.
전임자의 100억원짜리 사업에는 현미경을 들이대면서 자신의 신규 사업에는 느슨한 잣대를 적용한다면 ‘재정혁신’이라는 명분은 그 순간 무너진다.
또 하나 묻지 않을 수 없다.
69개 사업을 정리한 뒤 그 자리에 무엇을 채울 것인가.
지금 달서구가 시민에게 보여줘야 하는 것은 폐기할 사업의 긴 목록보다 절감한 재원을 어디에, 왜, 얼마만큼 다시 투입할 것인지에 대한 구체적인 청사진이다.
재정혁신은 돈을 쓰지 않는 행정이 아니다. 같은 세금을 더 가치 있는 곳에 쓰는 행정이어야 한다.
김 구청장은 “오랫동안 추진해 온 사업이라도 필요성과 효과가 낮다면 과감히 재정비하겠다”고 했다.
그 결단 자체를 탓할 일은 아니다.
다만 ‘과감함’이 곧 ‘옳음’을 의미하지도 않는다.
특히 취임 초기의 속도전은 더욱 경계해야 한다. 충분한 성과평가와 주민 의견 수렴 없이 일몰부터 결정한다면 혁신의 속도가 아니라 졸속의 속도가 될 수도 있다.
판을 엎는 것은 어렵지 않다. 어려운 것은 엎은 판보다 더 나은 판을 다시 까는 일이다.
김용판표 ‘판 다시 짜기’가 진짜 재정혁신인지, 전임 행정의 성과 지우기인지 판단할 시간은 아직 남아 있다.
다만 그 평가는 69개라는 일몰 사업 숫자도, 594억원이라는 사업비 규모도 아니다.
얼마를 없앴느냐가 아니라 달서구민의 삶에서 무엇이 더 좋아졌느냐가 최종 성적표다.
그리고 김용판 구청장이 지금 던지고 있는 질문은 머지않아 자신에게 그대로 돌아올 것이다.
“김용판의 새 판은 과연 구민에게 정말 필요한가. 투입한 예산만큼 효과가 있는가. 그리고 달서의 미래에 실제로 도움이 되는가”
그 답을 내놓지 못한다면 ‘재정 대혁신’이라는 거창한 간판도 결국 판만 다시 깐 행정이라는 평가를 피하기 어려울 것이다.
/대구=이창재 기자(lcj123@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