홈플러스 공백에 농축산물 판로 ‘직격탄’…연 1.3조원 시장 흔들리나

홈플러스 공백에 농축산물 판로 ‘직격탄’…연 1.3조원 시장 흔들리나

1-5월 국산 농수축산물 매출 2487억원…전년 동기 대비 55% 이상 감소
청과류 가락시장 반입 늘었지만 가격 하락…우유 납품량도 하루 140톤→40톤 급감
농협·농업법인 미수금 1062억원…산지 생산자 자금 부담까지 ‘이중고’
송옥주 의원 “홈플러스 공백 메울 공공유통망 필요…농협 하나로마트 대도시 진출 확대해야”

[아이뉴스24 이윤 기자] 대형마트 한 곳의 경영위기가 유통업체만의 문제가 아니라 농촌의 판로와 농가소득을 흔드는 ‘농업 유통위기’로 번지고 있다.

지난 13일 재개장한 홈플러스의 회생 여부를 결정할 법적 기한이 열흘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영업 위축으로 발생한 국산 농수축산물 유통 공백이 산지 농가와 생산자단체에 상당한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청과류와 우유 등 공급과잉과 소비 부진에 민감한 품목을 중심으로 충격이 집중되면서 정부 차원의 대체 판로 구축이 필요하다는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국회의원(경기도 화성시갑)이 농림축산식품부와 홈플러스, 농협경제지주,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 농협 조합공동사업법인 등에서 제출받은 자료를 분석한 결과, 홈플러스의 영업 위축이 농수축산물 판매 감소와 산지 출하 부담으로 이어지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자료에 따르면 올해 1월부터 5월까지 홈플러스에서 판매된 국산 농수축산물 매출액은 2487억원으로 집계됐다. 지난해 같은 기간 5721억원, 2024년 같은 기간 5535억원과 비교하면 55% 이상 줄어든 규모다.

특히 홈플러스가 정상적으로 영업하던 시기 국산 농수축산물의 연간 판매 규모가 약 1조3000억원에 달했다는 점에서 사태가 장기화할 경우 농축수산물 유통시장에 상당한 공백이 발생할 가능성이 제기된다.

홈플러스가 단순한 대형 유통채널 가운데 하나가 아니라 산지 생산자와 소비자를 연결하는 주요 판매망 역할을 담당해 왔기 때문이다.

2024년 기준 국내 대형마트 3사의 국산 청과류 매입액은 총 2조5075억원으로, 이 가운데 홈플러스가 매입한 금액은 5272억원이었다. 전체의 약 21%다. 홈플러스 청과류 가운데 농협이 공급한 물량만 2111억원으로 홈플러스 전체 청과 매입액의 약 40%를 차지했다.

결국 홈플러스의 구매력이 약화되면 대체 유통망을 즉시 확보하기 어려운 농협과 산지 생산자조직이 직접적인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 구조다.

더불어민주당 송옥주 국회의원 [사진=송옥주 의원실]

□ 홈플러스 빠진 청과시장…출하량 늘고 가격은 떨어졌다

청과류 시장에서는 이미 이상 징후가 나타나고 있다.

서울시농수산식품공사 자료에 따르면 올해 5월 말까지 서울 가락시장에서 거래된 청과류는 116만톤으로, 거래금액을 물량으로 환산한 톤당 거래가격은 약 243만원이었다.

거래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3만2452톤 증가했고 2년 전과 비교하면 5만3278톤 늘었다. 반면 톤당 거래가격은 전년보다 21만원, 2년 전보다 39만원 낮아졌다.

홈플러스의 판매망이 위축되면서 기존 대형마트로 향하던 일부 물량이 도매시장으로 이동했고 이 같은 추가 공급이 가격 하락 압력을 높인 요인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농산물은 공산품과 달리 출하시기를 장기간 조절하기 어렵다. 특히 신선 채소와 과일은 저장 가능 기간이 제한돼 판매처가 갑자기 사라질 경우 도매시장 출하 확대나 가격 인하를 감수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대형 유통채널의 공백은 단순한 판매처 감소를 넘어 산지 가격과 농가 수취가격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문제는 홈플러스에 농산물을 공급해 온 조직 상당수가 농림축산식품부가 지정·육성하는 생산·유통통합조직 등 규모화된 산지 생산자조직이라는 점이다. 정부 정책에 따라 공동선별과 공동출하, 규모화에 나섰던 조직들이 주요 판매처의 경영위기로 새로운 시장을 찾아야 하는 상황에 놓인 셈이다.

□ 우유시장도 충격…하루 100톤 규모 판매처 사실상 사라져

낙농업계가 받는 충격도 적지 않다.

농림축산식품부는 홈플러스에 공급되는 유제품을 원유 기준으로 환산할 경우 영업 위축 이전 하루 약 140톤이던 물량이 올해 1월 70톤 수준으로 절반가량 감소한 데 이어 6월에는 40톤 수준까지 떨어진 것으로 추정했다.

정상 영업 당시와 비교하면 하루 약 100톤 규모의 우유 판매시장이 축소된 것이다. 이는 국내 국산 우유 판매량의 약 2.5%에 해당하는 규모로 분석됐다.

농협경제지주 역시 홈플러스 영업 위축이 전체 우유 소비시장의 축소로 이어졌다고 진단했다.

우유는 대형마트 할인행사나 묶음판매 등에 따른 현장 구매 비중이 상대적으로 높은 상품이다. 대형마트 방문객 자체가 줄어들 경우 다른 유통채널로 소비가 완전히 이동하기보다는 전체 소비량이 감소할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특히 신선 살균유는 유통기한이 짧아 판매 감소가 곧바로 재고와 폐기 부담으로 연결될 수 있다.

온라인 소비 확대도 국내 낙농업계에는 또 다른 변수다. 온라인에서는 보관과 배송이 상대적으로 편리한 멸균유의 경쟁력이 높기 때문이다.

식품의약품안전처 수입식품정보마루에 따르면 올해 8월 22일 현재 멸균유 수입량은 3만330톤으로 전년 같은 기간보다 8% 증가했다. 지난해 연간 멸균유 수입량 역시 5만776톤으로 전년보다 5% 늘었다.

대형마트에서 판매되는 국산 살균유 시장은 위축되는 반면 온라인을 중심으로 수입 멸균유가 시장을 확대하는 흐름이 맞물릴 경우 국내 낙농가가 체감하는 부담은 더욱 커질 수 있다는 분석이다.

□ 판로 막힌 것도 모자라 대금까지…미수금 1000억원 넘어

홈플러스 사태의 또 다른 뇌관은 납품대금이다.

한국농식품법인연합회가 지난달 송옥주 의원실에 제출한 자료에 따르면 주요 유통업체의 납품대금 미지급 문제는 농식품 생산·유통업계의 반복적인 경영 위험으로 자리 잡고 있다.

자료상 미지급액은 2024년 7월 티몬·위메프 사태 당시 1355억원, 2025년 7월 초록마을 260억원, 2025년 3월 홈플러스 2000억원 규모로 파악됐다.

산지 생산자단체가 집계한 올해 7월 말 기준 홈플러스 관련 미수금은 농협 303억원, 농업법인 759억원으로 총 1062억원에 달한다.

판매망 축소로 매출이 감소한 상황에서 이미 공급한 농산물의 대금까지 제때 회수하지 못하면 생산자조직의 현금흐름이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특히 농업법인과 산지유통조직은 농가에 농산물 대금을 지급하고 선별·포장·운송비 등을 부담해야 해 유통업체의 대규모 미수금이 장기화할 경우 경영 부담이 농가로 전이될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대형마트 한 곳의 위기’ 넘어 농산물 유통구조 문제로

이번 사태를 계기로 국내 농수축산물 유통망의 구조적 취약성을 점검해야 한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정 대형 유통업체가 위기에 빠질 경우 수천억원에서 1조원대 규모의 국산 농수축산물 판로가 한꺼번에 흔들릴 수 있다는 사실이 확인됐기 때문이다.

특히 대형마트 시장이 재편되면서 남은 사업자의 구매력이 커질 경우 산지 생산자와 유통업체 간 협상력의 불균형이 확대될 수 있다는 우려도 있다. 소비자 입장에서도 대형 유통채널 감소가 장기적으로 선택권 축소와 유통시장 집중으로 이어질 가능성을 살펴볼 필요가 있다.

이에 따라 홈플러스의 회생 여부와 별개로 농산물 유통 공백을 최소화하기 위한 비상대책을 마련해야 한다는 지적이 제기된다.

농림축산식품부와 농협, 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aT) 등 공공·협동조합 유통망을 활용해 홈플러스가 담당했던 물량을 분산하고 산지 생산자조직과 대체 판매처를 연결하는 체계를 강화해야 한다는 것이다.

농협 하나로마트의 대도시 진출 확대 역시 대안 가운데 하나로 거론된다. 도시와 농촌 농협이 공동으로 참여하는 조합공동사업법인 등을 통해 대도시 소비지에 판매망을 확보하면 산지 농산물의 안정적인 판로를 넓히는 동시에 민간 대형마트 의존도를 일정 부분 낮출 수 있다는 취지다.

다만 정부나 농협 등의 홈플러스 인수 문제는 막대한 자금 투입과 사업성, 기존 유통사업과의 관계, 공공성 등을 종합적으로 따져야 하는 사안인 만큼 별도의 면밀한 검토가 필요하다는 시각도 있다.

□ 송옥주 “연 1.3조원 국산 농수축산물 시장…공백 방치해선 안 돼”

송옥주 의원은 홈플러스 사태가 유통기업 한 곳의 회생 문제에 그쳐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다.

송 의원은 “홈플러스 위기가 국산 농수축산물의 유통 공백을 낳고 대도시 소매시장의 독과점을 부추길 것이라는 우려가 현실화하고 있다”며 “10만명의 고용을 창출했던 홈플러스는 연간 1조3000억원 규모의 국산 농수축산물을 공급해 온 큰 시장이었던 만큼 이 시장을 되살려 산지 농수산물 판로에 차질이 없도록 힘을 보태겠다”고 밝혔다.

이어 “도시와 농촌 농협이 만든 조합공동법인이 대도시에 농협 하나로마트를 설립할 수 있도록 하는 농협법 개정안이 시행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며 “홈플러스의 유통 공백을 메우고 공공유통시장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겠다”고 말했다.

홈플러스의 향후 회생 절차가 어떤 결론에 이르더라도 이미 발생한 농수축산물 유통 공백과 산지 피해를 해소하는 문제는 별도로 남는다.

홈플러스의 위기는 이제 한 기업의 생존을 넘어 농민이 생산한 농산물을 누가, 어디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판매할 것인가라는 문제로 확산하고 있다. 회생 여부를 결정할 시간이 다가오는 만큼 정부와 국회, 농협 등 관계기관이 산지 피해와 유통시장 재편에 대응할 구체적인 대책을 제시해야 할 시점이다.

/화성=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