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AI가 소환한 X세대의 청춘…SNS에서 다시 만난 1990년대

[기자수첩] AI가 소환한 X세대의 청춘…SNS에서 다시 만난 1990년대

“분명 AI가 만든 영상인데, 보고 있자니 1990년대의 청춘이 그리워졌다.”

[아이뉴스24 이윤 기자] 최근 인스타그램 등 SNS에서 접한 AI 영상 하나가 한동안 눈길을 붙잡았다. ‘뱅뱅뱅(BANG BANG BANG)’과 ‘BAD’를 트로트 감성으로 재해석한 영상이다. 단순히 노래의 장르만 바꾼 것이 아니다. 80-90년대 가요 프로그램을 떠올리게 하는 화면과 의상, 특유의 손짓과 몸짓, 표정까지 더해지면서 마치 오래된 방송자료를 다시 보는 듯한 착각을 불러일으킨다.

특히 놀라운 것은 입모양이다. 노래의 음절과 입술 움직임이 자연스럽게 맞물리고, 음악에 따라 달라지는 표정과 시선, 손짓까지 제법 정교하다. 불과 얼마 전만 해도 AI 영상에서는 어색한 얼굴과 손동작, 맞지 않는 립싱크를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었다. 이제는 반대로 어디가 AI의 흔적인지를 찾기 위해 화면을 자세히 들여다보게 된다.

그런데 영상을 계속 보게 만든 것은 기술적인 완성도만은 아니었다.

그 안에는 X세대가 기억하는 80-90년대의 공기와 노스탤지어(Nostalgia)​가 있었다.

90년대를 청춘으로 보낸 세대에게 당시 대중문화는 단순한 ‘복고’가 아니다. TV 앞에서 가요 프로그램을 기다리고 카세트테이프와 CD로 음악을 듣고, 친구들과 약속 장소를 정해 만나던 시절이다. 지금 보면 다소 촌스럽게 느껴지는 패션과 과장된 가수들의 손짓조차 그 시대를 살아온 이들에게는 자신의 젊은 날과 연결된 기억이다.

AI 영상 속 인물의 손짓 하나를 바라보다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다.

‘아버지가 젊었던 1990년대로 돌아가 지금의 노래를 부른다면 저런 모습이 아닐까.’

물론 실제로 존재했던 장면은 아니다. 90년대에 ‘뱅뱅뱅’이 트로트로 불린 적도 없다. 그러나 AI가 당시의 영상 질감과 음악, 의상과 몸짓을 하나로 결합하자 어디선가 본 듯한 ‘과거’가 만들어졌다.

본 적 없는데 익숙하다.

경험하지 않은 장면인데 묘하게 그립다.

AI가 만들어낸 새로운 형태의 노스탤지어다.

더 흥미로운 것은 이러한 콘텐츠가 인스타그램과 같은 SNS를 만나면서 빠르게 일상으로 들어오고 있다는 점이다. 과거 새로운 기술을 이해하려면 설명서를 읽거나 전문적인 용어를 알아야 했다. 지금은 다르다. 스마트폰 화면을 넘기다 우연히 마주친 수십 초짜리 영상 하나만으로도 생성형 AI가 어디까지 발전했는지를 직관적으로 경험한다.

SNS의 노출 구조 역시 AI 콘텐츠 확산에 힘을 보탠다. 이용자가 흥미를 느끼고 영상을 오래 시청하거나 댓글을 남기고 공유하면 유사한 콘텐츠를 다시 접할 가능성이 커진다. 결국 AI 영상은 기술 분야에 관심이 있는 일부 이용자를 넘어 평범한 일상의 피드 속으로 자연스럽게 스며든다.

이 지점에서 AI는 새롭게 느껴지는 동시에 친숙해진다.

그간 생성형 AI는 누군가에게 어렵고 낯선 기술이었다. 일자리를 대신할 것이라는 우려, 딥페이크와 허위정보, 저작권 논란처럼 AI를 둘러싼 담론 역시 무거운 주제가 많았다.

하지만 AI가 자신의 청춘과 부모 세대의 기억을 건드리는 순간 이야기는 달라진다.

미래의 기술이 과거의 추억을 보여주는 역설이다.

AI를 잘 모르는 사람도 90년대 감성이 담긴 영상을 보면서 “AI가 이제 이런 것까지 만드는구나”라고 말한다. 복잡한 기술적 설명 없이도 AI를 경험하고 웃고, 추억을 이야기한다.

어쩌면 생성형 AI가 대중화되는 중요한 지점도 여기에 있을지 모른다. 기술이 사람에게 가까워지는 것은 성능이 좋아지는 순간만이 아니다. 자신의 경험과 감정, 기억 속으로 들어왔을 때 비로소 ‘내가 사용하는 기술’로 받아들여진다.

X세대에게 AI가 만든 레트로 영상은 그런 연결고리가 될 수 있다.

다만 감탄 뒤에는 경계해야 할 부분도 분명하다. 실제 사람과 구별하기 어려운 영상이 만들어질수록 초상권과 저작권, 음성 도용, 딥페이크와 허위정보 문제는 더욱 커질 수밖에 없다. AI로 제작한 콘텐츠임을 명확히 알리고 원작자와 실제 인물의 권리를 존중하는 기준도 함께 자리 잡아야 한다.

기술이 정교해질수록 책임 역시 정교해져야 한다.

그럼에도 ‘뱅뱅뱅’과 ‘BAD’의 트로트 버전 영상은 생성형 AI가 어디까지 우리 곁으로 들어왔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AI는 글을 쓰고 이미지를 만드는 단계를 지나 음악을 재해석하고 사람을 움직이고, 입술을 노래에 맞추며 이제는 특정 시대의 분위기와 감성까지 재구성한다.

그리고 인스타그램이라는 일상의 공간에서 그 기술은 X세대가 잠시 잊고 있었던 청춘까지 소환한다.

미래에서 온 AI가 우리를 다시 1990년대로 데려가고 있는 셈이다.

AI가 만든 과거는 실제 기억이 아니다. 하지만 그 화면을 보며 떠올리는 젊었던 부모의 모습과 친구들, 자신의 청춘과 그리움은 분명 진짜다.

그래서 AI가 새롭게 보인다.

그리고 이상하리만큼 친숙해진다.

어쩌면 앞으로 AI의 경쟁력은 얼마나 진짜 같은 영상을 만드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을지도 모른다. 사람의 기억을 얼마나 자연스럽게 건드리고 세대의 감정을 얼마나 깊게 연결할 수 있느냐​가 콘텐츠의 힘이 될 가능성이 있다.

SNS에서 우연히 마주친 짧은 영상 하나가 그래서 의미심장했다.

본 적 없는 과거인데 그립고 가장 미래적인 기술인데 가장 오래된 추억이 떠오른다.

AI의 기술은 과연 어디까지 갈 것인가

이제 그 질문의 답은 먼 미래가 아니라 우리가 무심코 넘기고 있는 인스타그램 피드 속에서 이미 시작되고 있다.

/수원=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