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경환 기자] SK가 전남 동부권에 AI·반도체 분야를 중심으로 100조 원대 투자를 추진할 것으로 알려지면서 지역사회의 기대가 커지고 있다.
그러나 이번 대규모 투자 구상을 국립의대 문제와 연결해 바라보는 시각을 두고서는 보다 냉정한 접근이 필요하다는 지적도 나온다.

민형배 전남광주통합특별시장은 최근 의대 문제로 동부권 소외론이 확산되는 상황에서 SK가 동부권에 100조 원가량의 대규모 투자를 발표할 것이라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
투자 분야로는 AI와 반도체 등이 거론되고 있다.
SK의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된다면 전남 동부권 경제에는 분명 획기적인 전환점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여기서 놓쳐서는 안 될 문제가 있다.
100조 원대의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가 이뤄진다면 동부권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덜 필요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더욱 필요해진다는 점이다.
AI와 반도체 산업은 공장 하나를 건설하는 것으로 끝나는 산업이 아니다.
연구·개발인력과 생산인력, 협력업체 종사자들이 유입되고 그 가족까지 지역에 정착해야 하나의 산업생태계가 완성된다.
기업 입장에서 우수한 인력을 확보하는 데 있어 주거와 교육, 문화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의료환경이다.
특히 고급 연구인력과 젊은 전문인력에게 자신과 가족이 위급한 상황에서 이용할 수 있는 수준 높은 의료기관이 있는지는 지역 정착을 결정하는 중요한 요소가 될 수 있다.
따라서 SK의 대규모 투자가 현실화될수록 순천·여수·광양을 중심으로 한 전남 동부권의 의료수요 역시 지금보다 커질 가능성이 높다.
현재 인구만 놓고 의료수요를 판단할 것이 아니라 향후 20~30년의 산업구조와 인구 이동, 기업 유치까지 고려한 미래 의료수요를 판단해야 하는 이유다.
전남 동부권은 이미 여수국가산단과 광양제철소 등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산업시설이 밀집한 지역이다.
여기에 AI·반도체 산업까지 본격적으로 들어온다면 기존 철강·석유화학 산업에 첨단산업이 더해지는 새로운 산업벨트가 형성될 수 있다.
그렇다면 그 산업벨트를 뒷받침할 의료 인프라도 함께 준비해야 한다.
특히 산업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중증응급환자와 심뇌혈관질환, 산업재해 등에 대응할 수 있는 고도화된 의료체계와 전문 의료인력 양성 시스템은 선택이 아니라 지역의 필수 기반시설에 가깝다.
이런 관점에서 순천대학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 설립 문제를 바라볼 필요가 있다.
순천대 의대 문제는 단순히 동부와 서부 가운데 어느 지역에 기관 하나를 배치할 것인가의 문제가 아니다.
향후 전남 동부권이 대한민국의 새로운 AI·반도체 산업거점으로 성장한다면 그곳에서 일하고 생활할 사람들에게 어떤 의료환경을 제공할 것인가라는 국가 산업정책의 문제이기도 하다.
더구나 AI와 의료산업은 앞으로 밀접하게 결합할 가능성이 크다.
AI 기반 의료영상 분석, 디지털헬스케어, 의료데이터, 바이오·의료반도체 등은 이미 미래산업의 중요한 분야로 부상하고 있다.
순천대학교에 의과대학과 대학병원이 설립되고 이를 AI·반도체 산업과 연계한다면 단순한 의료인력 양성을 넘어 의료·AI·반도체·바이오를 연결하는 산학연구 생태계로 발전시킬 가능성도 있다.
순천대가 최근 제시한 방안 역시 의대와 대학병원을 동부권에 함께 배치하고 통합대학본부는 서부권에 두는 방식이다.
이는 동부권에는 의료·산업·연구 기능을 강화하고 서부권에는 통합대학의 행정 중심기능을 배치해 양 지역이 역할을 분담하는 방식으로 볼 수 있다.
따라서 SK의 동부권 투자를 의대 문제의 반대급부처럼 접근해서는 곤란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기업투자는 기업의 경제적 판단에 따른 산업투자이고, 의대와 대학병원은 지역주민의 생명권과 의료접근성, 국가 의료정책에 관한 문제다.
두 사안을 놓고 어느 하나를 얻었으니 다른 하나를 양보해야 한다는 식의 접근은 바람직하지 않다.
오히려 논리는 반대일 수 있다.
SK의 100조 원대 투자가 현실화돼 동부권이 AI·반도체 산업의 중심지로 성장한다면 인구와 산업 규모가 확대되고 의료수요 역시 증가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순천대 의대와 대학병원 설립의 필요성은 지금보다 더욱 커질 수 있다.
정부와 전남광주통합특별시도 의대 문제를 현재의 인구와 지역 간 정치적 배분만으로 판단할 것이 아니라 향후 산업투자가 가져올 인구·경제·의료수요 변화까지 포함해 판단해야 한다.
기업이 들어오는 것만으로 지역균형발전이 완성되는 것은 아니다.
기업이 투자하고, 대학이 인재를 키우고, 연구기관이 기술을 개발하며, 좋은 의료·교육 환경을 갖춰 근로자와 가족이 지역에 정착할 때 비로소 지속 가능한 산업도시가 만들어진다.
100조 원의 투자가 동부권의 산업지도를 바꾼다면 의료지도 역시 그 변화에 맞춰 다시 그려야 한다.
SK 투자와 순천대 의대는 서로 맞바꿀 카드가 아니다.
오히려 대규모 첨단산업 투자가 현실화될수록 순천대 의대와 대학병원은 동부권의 미래산업을 완성하기 위해 더욱 필요한 기반시설이 될 수 있다.
이제 논의의 초점은 ‘동부권에 무엇을 하나 더 줄 것인가’가 아니라 ‘대한민국의 새로운 첨단산업 거점에 어떤 대학·연구·의료 인프라를 함께 구축할 것인가’로 전환돼야 한다.
/광주=이경환 기자(khlee@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