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드B] 진천까지 가서 '비밀협상'…SK하이닉스가 입단속한 까닭

[사이드B] 진천까지 가서 '비밀협상'…SK하이닉스가 입단속한 까닭

성과급 절반 이상 주식 전환에 반발 우려
반도체 업계 반면교사…합의 발표서 "외부 중재 없이" 강조

[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SK하이닉스가 20일 노사 잠정합의 소식을 전하면서 유독 강조한 말이 있습니다. 바로 '외부의 개입 없이'입니다.

SK하이닉스는 이날 "외부의 중재나 제도에 기대지 않고 노사가 자체적으로 돌파구를 마련했다"고 밝혔는데요. 자료 말미에서도 "노사가 이 모든 사안의 해결방안을 스스로 만들어 극복해 냈다"고 다시 한번 강조했습니다.

SK하이닉스 이천캠퍼스 전경. [사진=권서아 기자]

왜 이 말을 두 번이나 강조했을까요. 지난 몇 달간 SK하이닉스 임금·단체협상 과정을 들여다보면 그 이유를 짐작할 수 있습니다.

이번 교섭은 '철통 보안' 속에서 진행됐다고 합니다. 노조는 본교섭 이후 조합원들에게 회의 내용을 공유했지만 회사와 오간 성과급 지급 비율 등 구체적인 숫자는 좀처럼 공개하지 않았습니다.

교섭 장소도 눈길을 끕니다. 5차 교섭은 이천이나 청주 사업장이 아닌 충북 진천 모처에서 진행됐습니다.

취재 과정에서도 회사가 성과급의 절반 이상을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안을 처음 제시했다는 사실 정도가 어렵게 확인됐을 뿐 구체적인 조건은 한동안 베일에 가려져 있었습니다.

노사가 이렇게까지 조심스러웠던 데는 이유가 있었다고 합니다.

이번 협상의 최대 쟁점은 성과급을 더 주느냐, 덜 주느냐가 아니었습니다. 지난 2년간 전액 현금으로 지급했던 성과급 가운데 절반 이상을 주식으로 바꾸는 큰 변화가 필요했습니다. 이른바 '현상변경'이죠.

여기에는 인공지능(AI)발 반도체 호황으로 성과급 규모가 전에 없던 수준으로 커지며 사회적 관심이 커진 상황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수억 원의 성과급이 한꺼번에 현금으로 풀릴 경우 소비와 물가를 자극할 수 있다는 우려도 나오고 있고요.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 사업장이 몰린 경기 남부에서는 부동산 시장에까지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시선도 나왔습니다.

취재를 종합하면 이런 우려와 정책 당국의 분위기는 회사와 노조에도 여러 경로를 통해 전달된 것으로 전해집니다.

정부가 공식적으로 성과급 지급방식에 개입한 것은 아니지만, 거액의 성과급을 모두 현금으로 지급하는 데 대한 부담이 노사 양측에도 전해졌다는 겁니다.

이에 성과급 일부를 주식으로 지급하는 방향에 무게가 실렸고, 협상의 초점은 구성원들이 받아들일 수 있는 조건을 찾는 쪽으로 옮겨갔다는 후문입니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곽노정 SK하이닉스 CEO 등 주요 경영진이 SK하이닉스가 나스닥 ADR 거래를 개시된 지난 7월 1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타임스퀘어 나스닥 타워 앞에서 기념 촬영을 하고 있다. 2026.7.11 [사진=연합뉴스]

문제는 구성원들의 반발이었습니다. 매년 현금으로 받던 성과급 상당 부분이 주식으로 바뀌는 데다 지난해 노사가 성과급 제도를 향후 10년간 적용하기로 합의한 지 불과 1년 만이었기 때문입니다.

몇 달 전 삼성전자에서 벌어진 노사갈등도 영향을 미친 것으로 전해집니다.

삼성전자는 올해 3월부터 임금과 성과급을 둘러싼 노사갈등이 커졌고, 4월23일 평택캠퍼스에서는 4만명 이상의 구성원이 참여한 대규모 집회까지 열렸습니다.

파업에 따른 반도체 생산 차질과 국가 경제 영향을 우려해 대통령과 국무총리, 고용노동부·산업통상부 장관까지 잇따라 목소리를 냈습니다.

결국 파업과 긴급조정권 발동 가능성까지 거론되던 5월20일 김영훈 고용노동부 장관이 직접 중재에 나서면서 노사는 잠정합의에 도달했습니다.

SK하이닉스 입장에서는 경쟁사의 노사갈등이 회사 담장을 넘어 사회적 문제로 번지고 정부까지 등장하는 과정을 바로 옆에서 지켜본 셈입니다.

여기에 지난달 미국 나스닥에 미국 주식예탁증서(ADR)를 상장한 점도 변수가 됐다는 이야기가 나옵니다.

글로벌 투자자들이 SK하이닉스 주식을 직접 거래하기 시작한 상황에서 노사갈등이 파업이나 정부 중재로까지 번질 경우 생산 차질을 비롯한 경영 리스크로 비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노사 문제를 가급적 회사 안에서 풀어내야 할 필요성이 이전보다 커진 셈입니다.

SK하이닉스 2026년 임단협 잠정합의안 내용. [사진=SK하이닉스]

몇 달간의 협상 끝에 노사가 찾아낸 답은 '주식 60%'였습니다.

물론 전체 성과급의 60%를 주식으로 지급하는 것을 기준으로 삼되 구성원에게 선택권을 부여했습니다.

주식 가운데 40%는 바로 매도할 수 있도록 했고, 주가가 떨어질 경우 손실을 보완하는 장치도 마련한 것으로 전해집니다.

시행 첫해에는 당장 자금이 필요한 사유가 있는 구성원이 현금을 선택할 수도 있습니다.

다만 성과급을 둘러싼 논란이 완전히 끝난 것은 아닙니다. 구성원들의 평가는 엇갈리는 분위기 입니다.

잠정 합의안에 아쉬워하는 이들도 있고, 당초 걱정했던 것보다는 노조가 선방했다는 평가도 적지 않습니다.

주식 일부를 바로 처분할 수 있고 주가 하락에 대비한 보완책도 마련된 만큼 구성원의 부담을 상당 부분 덜어냈다는 겁니다. 이 정도 조건이라면 조합원 투표에서도 무난하게 가결되지 않겠느냐는 반응도 나옵니다.

몇 달간 철통 보안 속에서 이어온 협상은 이제 구성원들의 판단을 앞두고 있습니다. SK하이닉스가 거듭 강조한 '외부 개입 없는 노사 자율'이 마지막 관문인 조합원 동의까지 얻을 수 있을지 지켜볼 일입니다.

/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