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부 파동은 1986년 4월24일 대한축구협회가 “고려대에서 선수등록 취소를 요청한 김종부는 선수 자격이 없어 월드컵 대표팀에서도 제외시킨다”고 결정해 걷잡을 수 없이 악화됐다.
대한축구협회의 결정은 스카우트 때문에 더 이상 말썽을 빚어서는 안 된다는 판단하에 일벌백계 원칙을 적용한 것으로 많은 공감을 얻기는 했다.
그러나 32년만에 다시 밟은 월드컵 그라운드는 한국이 총력으로 임해야 할 큰 싸움터였다. 곳곳에서 김종부의 구제 의견이 비등하기 시작했다.
특히 대표팀 사령탑을 맡고 있는 김정남 감독의 애정 어린 호소는 고려대와 축구협회로 하여금 김종부의 구제를 위한 재검토 쪽으로 몰아가는 여론을 일으켰다.
김종부를 월드컵 대표팀에서 제외시킬 정도로 강경했던 축구협회는 고려대에 제명 취소를 요청했다.
마침내 고려대는 4월30일 오후 “김종부가 월드컵 대회에 참가하는데 필요하다면 4월23일 취한 선수등록 취소 통보의 효력을 월드컵 대회 때까지 유보할 수 있다”고 결정했다.
그리고는 이튿날인 5월1일 축구협회로 공문을 보냈다.
고려대는 이 공문에 “대한축구협회가 요청한 김종부의 제명 취소 요청은 절대로 재고될 수 없다”고 못 박았다.
고려대가 이 같은 단서를 달게 된 것은 김종부가 이때까지도 고려대의 의사와는 반대로 대우에 기울어 있기 때문이었다.
축구협회는 5월1일 오후3시 고려대측의 공문이 접수된 즉시 긴급 이사회를 열었다. 이사회는 “김종부의 자격을 일시적으로 소생시켜 월드컵 대표 선수 자격을 복권시킨다”고 결의 했다.
4월24일 회장단 회의에서 김종부를 제명한 지 딱 1주일만의 일이었다.
김종부는 우여곡절 끝에 1983년 세계청소년축구선수권대회를 통해 자신이 스타덤에 오르는 계기가 됐던 멕시코 고원을 다시 밟게 된 것이다.
5월3일 오후 3시20분 미디어의 스포트라이트를 받으며 출국한 김종부는 미국 산호세에서 전지훈련중인 월드컵 대표팀 캠프에 합류해 또 한 차례의 영광과 굴욕을 향해 훈련에 돌입했다.
조이뉴스24 /김덕기(축구전문대기자) chooggu@joy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