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황세웅 기자] LG에너지솔루션이 미국 미시간주 랜싱 공장을 본격 가동하면서 전기차(EV) 중심이던 북미 생산 전략을 에너지저장장치(ESS)로 넓히는 '리밸런싱' 작업에 속도를 내고 있다.
전기차 시장 성장세가 당초 예상보다 둔화된 가운데 이미 구축한 대규모 생산설비를 ESS에 활용해 공장 가동률을 높이고, 인공지능(AI) 데이터센터 확대로 급성장하는 북미 전력 저장 시장을 선점하겠다는 전략이다.
19일 LG에너지솔루션에 따르면 회사는 18일(현지시간) 미국 미시간주 랜싱에서 공장 오픈 기념식을 열고 본격적인 가동에 들어갔다.

랜싱 공장은 연간 35기가와트시(GWh) 이상의 생산능력을 갖추고 ESS용 리튬인산철(LFP) 배터리와 전기차용 니켈·코발트·망간(NCM) 배터리를 함께 생산할 예정이다.
GM용 EV 공장에서 ESS·토요타 복합기지로
랜싱 공장의 가장 큰 특징은 당초 계획과 달리 전기차와 ESS를 동시에 겨냥하는 복합 생산거점으로 탈바꿈했다는 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제너럴모터스(GM)는 지난 2022년 약 26억달러를 투자해 랜싱에 얼티엄셀즈의 세 번째 합작 배터리 공장을 건설하기로 했다. 당시에는 GM 전기차용 배터리를 생산하는 것이 주된 목적이었다.
하지만 미국 전기차 시장 성장 속도가 예상보다 느려지면서 생산 전략에 변화가 생겼다. GM이 랜싱 공장 지분을 LG에너지솔루션에 넘기면서 단독 생산기지로 전환됐고, 이후 토요타와 ESS 고객을 동시에 대응하는 공장으로 역할이 재편됐다.
전기차용 NCM 배터리는 토요타에 공급된다. 미국 켄터키주 조지타운에 위치한 토요타 생산공장에서 만들어지는 2027년형 하이랜더 등 북미 전기차 모델에 탑재될 예정이다.
LG에너지솔루션과 토요타는 지난 2023년 연간 20GWh 규모의 고니켈 배터리 장기 공급계약을 체결한 바 있다.

ESS용 LFP 배터리는 LG에너지솔루션의 ESS 시스템통합(SI) 자회사 버텍을 통해 전력 인프라와 AI 데이터센터 고객 등에 공급된다.
향후 랜싱 공장의 ESS 역할은 더욱 커질 전망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랜싱에서 파우치형 배터리를 생산하는 데 이어 각형 LFP 제품까지 제품군을 확대하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미국 정부가 공개한 내용에 따르면 LG에너지솔루션은 테슬라와 약 43억달러 규모의 LFP 배터리 공급계약도 체결했다. 로이터는 해당 배터리가 오는 2027년부터 테슬라의 '메가팩3' ESS 제품에 활용될 예정이라고 보도했다.
결국 랜싱은 특정 완성차 업체에 전기차 배터리를 공급하는 공장에서 시장 상황에 따라 EV와 ESS 수요에 대응하는 전략 거점으로 성격이 달라진 셈이다.
AI 데이터센터가 키운 ESS...북미 5대 생산거점 구축
LG에너지솔루션이 랜싱의 무게중심을 ESS로 옮긴 배경에는 북미 전력 저장 시장의 빠른 성장이 자리 잡고 있다.

AI 데이터센터가 급증하면서 대규모 전력을 안정적으로 공급하기 위한 ESS의 중요성이 커지고 있어서다. 재생에너지 발전량이 확대되는 가운데 전력망 안정화를 위한 저장장치 수요도 동시에 증가하고 있다.
로이터는 우드맥킨지 전망을 인용해 미국 데이터센터 전력수요가 올해부터 2030년까지 약 360% 증가해 110GW 수준에 이를 것으로 내다봤다.
미국 ESS 시장도 급성장할 전망이다. 미국청정전력협회(ACP)에 따르면 미국의 ESS 누적 설치 규모는 2031년 200GW·655GWh까지 확대될 것으로 예상된다. 현재와 비교하면 약 4배 수준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이 같은 수요에 대응하기 위해 북미 ESS 생산망을 빠르게 확대하고 있다.
랜싱 공장 가동으로 회사는 △미시간 랜싱 공장 △미시간 홀랜드 공장 △캐나다 넥스트스타에너지 온타리오 공장 △혼다 합작 L-H 배터리 컴퍼니 오하이오 공장 △GM 합작 얼티엄셀즈 테네시 공장 등 북미 ESS 5대 생산거점 체계를 갖추게 됐다.

회사는 올해 말까지 북미에서만 50GWh 이상의 ESS용 LFP 배터리 생산능력을 확보한다는 계획이다.
수주도 빠르게 늘고 있다.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지역 중심 ESS 수주잔고는 지난해 말 기준 약 140GWh에 달한다. 올해 상반기에만 3조원 이상의 신규 수주 계약을 확보했다.
신규 투자 대신 기존 EV 설비 활용...'리밸런싱' 시험대
랜싱 공장은 LG에너지솔루션이 최근 강조하고 있는 '전략적 리밸런싱'을 가장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기도 하다.

전기차 수요 둔화로 배터리 업계의 공장 가동률 부담이 커진 상황에서 신규 ESS 공장을 처음부터 짓는 대신 기존 전기차 배터리 생산거점을 ESS용으로 전환하는 방식이다.
이를 통해 추가 설비투자 부담을 낮추면서도 성장하는 ESS 시장에는 빠르게 대응할 수 있다. EV 수요가 다시 늘어날 경우 전기차용 배터리 생산을 병행할 수 있다는 점도 장점이다.
LG에너지솔루션은 최근 북미를 중심으로 전기차 배터리 생산시설 일부를 ESS용으로 전환해 왔다. 랜싱 역시 NCM과 LFP를 함께 생산하면서 고객과 시장 상황에 따라 생산 포트폴리오를 조정할 수 있는 구조를 갖췄다.

김동명 LG에너지솔루션 사장은 "랜싱 공장의 가동은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사업의 성장을 가속화할 중요한 이정표"라며 "미국 모빌리티 산업과 에너지 인프라 미래를 뒷받침할 최첨단 배터리 제조 네트워크를 구축해 미국 배터리 생태계를 강화하고 현지 생산 역량을 확대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랜싱 공장의 가동은 LG에너지솔루션의 북미 전략이 단순히 전기차 배터리 생산능력을 늘리는 단계에서 벗어나 이미 확보한 생산시설을 시장 수요에 맞춰 얼마나 빠르게 재배치하느냐로 이동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향후 AI 데이터센터와 전력망 투자를 중심으로 북미 ESS 시장이 예상대로 순항한다면, 선제적으로 구축한 5대 생산거점의 가동률을 끌어올리고 수주를 실제 매출과 수익성으로 연결하는 것이 LG에너지솔루션 북미 사업의 핵심 과제가 될 전망이다.
/황세웅 기자(hseewoong8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