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최란 기자]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K9 자주포가 국산 무기체계로는 처음으로 미국과 직접 공급계약을 체결하며 세계 최대 방산시장에 진입했다.
기존 무기를 그대로 수출한 것이 아니라 미국 육군의 차기 자주포 수요를 선제적으로 포착하고 별도 모델을 개발하는 한편 현지 생산기반까지 준비해온 결과라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의 미국 자회사 한화디펜스USA는 19일 미 육군과 K9 차륜형 자주포(K9MH) 시제품 6문을 공급하는 계약을 체결했다고 밝혔다. 계약금액은 1억30만달러(약 1417억원)이며, 추가 12문 공급 옵션까지 포함하면 누적 액면가는 2억6290만달러(약 3715억원)다.
이번 미국 시장 공략은 미 육군의 수요 변화를 빠르게 포착하면서 시작됐다. 한화는 2024년 3월 미 육군 예산안에서 차륜형 자주포 관련 사업이 추진되고 있다는 점을 확인하고 미국 시장 진출 가능성을 검토했다.
이 과정에서 김동관 한화그룹 수석부회장의 미국 방산시장 공략 의지도 사업 추진에 힘을 실었다. 김 부회장은 당시 미 육군 예산에 차륜형 자주포 사업이 포함된 점을 포착한 뒤 미국 시장을 겨냥한 사업을 구체화했고, 한화는 같은 해 12월 K9MH 자체 개발에 착수했다.
기존 궤도형 K9을 그대로 수출하는 대신 미 육군이 요구하는 차륜형 플랫폼을 별도 개발한 것이다.
개발 속도도 빨랐다. 한화는 개발 착수 이후 약 6개월 만에 기본·상세설계를 완료했고, 2026년 1분기 첫 시제품을 제작했다. 회사 측은 1989년 K9 개발 착수 이후 약 40년간 축적한 설계·생산·운용 노하우가 빠른 개발을 가능하게 했다고 설명했다.
제품 개발과 동시에 미국 현지화에도 속도를 냈다. 한화는 지난 4월 미국 앨라배마주 오펠리카의 유휴 공장을 3년간 임차하며 현지 생산거점 확보에 들어갔다. 미국 방산사업에서 현지 생산과 공급망 구축이 중요한 만큼 제품 수출에 그치지 않고 현지에서 생산·정비할 수 있는 기반까지 선제적으로 마련한 것이다.

정부와의 공조도 이어졌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와 방위사업청은 사업 초기부터 주요 현안을 공유하며 공동 대응했고, 수주 막바지까지 협의를 이어가며 계약 체결을 지원했다. 제품 개발과 현지화, 정부 지원이 결합된 '원팀' 전략이 이번 미국 시장 진입에 힘을 보탰다는 평가다.
이번 계약으로 한화는 기존 궤도형 K9에 이어 차륜형 자주포로도 미국을 비롯한 글로벌 시장 진입 기반을 확보하게 됐다.
K9MH는 기존 K9의 기술력을 바탕으로 개발한 차륜형 모델로 자동화 포탑을 적용한 것이 특징이다. 미 육군은 차기 자주포 도입을 위해 주요 글로벌 방산업체에 신형 자주포 시제품 제작을 의뢰하고 납기, 요구 성능, 현지화 비용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하고 있다.
한화는 이번 계약에 따라 K9MH 시제품 6문을 우선 공급한다. 이후 미 육군은 최대 4년간 K9MH가 실제 작전운용개념에 적합한지 검증하고 세부 성능과 사양을 보완할 예정이다.

이번 계약이 곧바로 대규모 양산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다만 미 육군의 실제 운용을 전제로 시제품 평가와 맞춤화 과정에 들어간 만큼 향후 최종 양산 계약으로 이어질 수 있는 중요한 첫 관문을 통과했다는 의미가 있다.
K9은 이미 글로벌 시장에서 경쟁력을 입증한 무기체계다. 국방과학연구소(ADD)와 국내 산·학·연은 1989년 개발에 착수해 1999년 K9을 실전 배치했다. 이후 2001년 튀르키예 수출을 시작으로 폴란드·인도·핀란드·노르웨이·에스토니아·호주·이집트·루마니아 등 9개국에 수출됐다.
현지 생산분을 포함해 국내외에서 2500문 이상이 생산·운용될 예정이며, 궤도형 자주포 수출시장에서 약 절반의 점유율을 차지하는 대표적인 국산 무기체계다.
결국 이번 계약은 단순히 K9의 수출국을 하나 늘렸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미국의 차기 자주포 수요를 선제적으로 포착해 미국 맞춤형 제품을 개발하고, 현지 생산기반과 공급망까지 준비한 한화의 미국 시장 공략이 첫 계약으로 이어졌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한화에어로스페이스 관계자는 "K9 자주포가 세계 최대 방산시장에 진입한 의미 있는 성과이자 대한민국의 무기체계가 미국을 지키는, 한미동맹의 새 역사를 썼다는 데 큰 의미가 있다"며 "차별화된 현지화 전략으로 미국에서도 안정적인 생산 기반을 구축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최란 기자(ran@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