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서병기 기자] 넷플릭스 시리즈 ‘동궁’은 귀(⻤)의 세계를 넘나드는 능력을 가진 구천(남주혁)과 왕족의 비밀을 알고 있고 출생의 비밀이라는 반전까지 간직한 궁녀 생강(노윤서)이 왕(조승우)의 부름을 받고 동궁에 깃든 저주를 파헤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다. 궁은 사극에서 인간의 욕망이 집중되는 상징적 공간이다. ‘동궁’에서는 귀매가 끌어당기는 공간, 권력욕이 집중되는 상징이다.

고대 그리스 등 서양에서는 ‘신의 말씀’인 신탁(神託)을 통해 신이 사람을 매개자로 하여 그의 뜻을 나타내거나 인간의 물음에 대답하게 한다. ‘오이디푸스’처럼 저주의 신탁을 내려 비극화함으로써 인간의 근원을 생각하게 하기도 한다.
한국과 중국, 일본 등 동양에서는 억울하게 죽은 귀신(원귀 寃鬼)이 원한이 남아 저승에 들어가지 못하고 인간을 괴롭힌다. 괴롭히는 대상은 자신을 억울하게 죽게하는 데 가담한 사람들 중심이다. ‘동궁’은 억울하게 죽은 귀신이 연못과 우물에 남아있다. 특히 왕 계승 서열 1번인 세자(곽동연)가 다른 세자들을 내세우려는 세력들의 다툼에 의해 희생돼, 깊은 원한을 품은 악귀로 변모해 나타난다.
가해자들도 단순하지 않다. 왕은 귀신을 이용해 또 다른 가해자인 대왕대비(장영남)와 대적한다. 궁에서 나서 한번도 궁밖을 나가보지 않았고, 죽기 전 정신이 온전하지 못하는 상황이 되고나서야 사가로 나가는 ‘100% 로열 블러드’ 대비는 왕에게 궁녀의 천한 피가 섞였다 하여 왕을 인정하지 않았다. ‘궁중빌런’ 대왕대비는 결정적인 사안을 왕과 그의 아들인 영안군 앞에서 얘기하지 않고, 익상군(태인호)을 불러 상의한다.
‘동궁’을 제작할 때 중요한 작업은 왕의 캐릭터였다. “왕의 위엄 보다는 왕의 캐릭터를 어떻게 표현할 것인가에 중점을 맞췄다. 배다른 형들이 다 죽고, 천출로서 감내해야 하는 그 무엇이 있었다. 격렬하게 저항하지 않으면서 악행에 가담해야 한다. 왕이 가진 어두움을 빛과 색깔의 변화로 표현했다. 왕도 악행을 저지른다. 후반부는 구천과 생강을 제외하면 궁내 사람들은 죄다 나쁘다. 왕에게 욕망이 집중되는 레이어(결)가 많았다. 왕은 어쩔 수 없이 어디까지 물들었을까를 궁금하게 하는 캐릭터였다.”
그렇게 빌드업된 상태에서 왕과 대왕대비가 맞붙는 신은 ‘동궁’의 압권이다. ‘동궁’의 최정규 감독은 “신이 길고 무거웠다. 두 분이 주고 받는 감각이 너무 뛰어나 물흐르 듯이 흘러갔고, 여러 번 찍을 이유가 없었다. 대비를 짓누르는 압박 등 촬영 에너지가 놀라웠다”고 전했다.
이어 “대비는 자신의 행동에 대해 확신하는 캐릭터다. 신분제 하의 귀족 가문에서 자라났고, 대대로 명문으로 궁전의 다툼에서 늘 승리했다. 본인이 악인인줄 모른다. 이런 사람이 무너질 때는 자존심 때문이다. 그 표시가 구완와사 같은 게 아니었을까”라고 덧붙였다. 역시 궁은 사람을 바보 만드는 곳이다.
왕의 생모인 숙빈 최씨(황영희)는 대비의 성깔을 이용해 천출인 자신의 아들을 왕으로 앉으려는 무리수를 펼친 댓가로 악귀들로부터 괴롭힘을 당하다 아예 사가로 나가있다.

귀신도 단순귀신만 있는 게 아니다. ‘동궁’에서는 나쁜 기운들이 한 장소에 쌓여서 생겨난다는 ‘귀매’라는 말을 쓴다. 귀매는 인간에게 원한을 품지 않는다고 한다.
“귀신은 여러 가지가 있다. 일반귀는 미련이 있어 저승에 못간 혼이요, 딱히 해를 끼치지는 않소. 원귀는 원한을 품고 죽은 사람의 혼이요. 원한을 가지게 만든 사람을 괴롭히는데, 그 원한이 커져 덩어리를 이룰수록 혼을 무겁게 하고, 저승으로 못가게 땅에 묶어두오. 그 원한 덩어리를 없애야, 땅에 박힌 혼이 풀려 저승으로 가는 거고...”
필자는 곽동연이 연기한 세자를 보면서 조선시대 단종이나 사도세자가 생각났다. 둘 다 왕이 될 수 있자는 자격은 100%였지만, 왕을 제대로 해보지 못한 채 비운의 왕(세자)이 됐다.
강한 원한을 품은 세자였으니, 민간신앙에서는 죽으면 신이 된다는 믿음이 있었다. 사도세자와 단종은 각각 마을신으로 모셔진 경우가 많았다. 둘은 사회적 의미까지 합쳐진 경우지만, 개인적 억울함도 풀어주어야 원귀들이 극락왕생할 수 있다.
필자의 궁금증 중 또 하나는 ‘동궁’의 영상이 글로벌 플랫폼인 넷플릭스에서 공개될 때 해외에서 어떤 반응을 일으킬까 하는 점이었다.
‘동궁’의 최정규 감독도 이런 판타지적인 세계관을 어떻게 비주얼로 구현할 것인지를 가장 고민했다고 한다. 눈에 보이지 않는 존재를 다루지만, 시청자들이 느낄 수 있도록 하려고 했다. 귀의 세계를 겨울에 촬영하고 현실세계를 봄가을에 촬영한 것과, 같은 장소에서 두 번을 촬영해, 같은 구조라도 귀신 세계가 상대적으로 틀어져 있고 어긋난 질감의 느낌을 만들 수 있게 한 것도 그런 이유때문이었다.
불교 사상에는 죽은 뒤 저승으로 가는 길에 건너야 하는 경계의 강인 삼도천(三途川) 이야기가 있다. 이를 건너기 전, 도심한복판의 귀신 숙박지인 ‘호텔 델루나’의 1340살 장만월 사장(아이유)이 찾아오는 귀신들에게 이승에서 못다한 일들을 해결해주는 게 드라마 '호텔 델루나'다. 이 드라마는 현실세계와 다른 세계를 다른 색깔로 표현했다. ‘동궁’에서도 귀의 세계가 처음에는 레드, 귀매들의 공간은 퍼플, 후반은 구천도 악귀화하면서 권력 욕심은 노란 오염의 색깔로 활용됐다.
저주를 풀기 위해 대비가 궁에 들인 무당 역의 이홍내는 실제로 지리산까지 가 굿하는 모습을 참관까지 하며 ‘취사병, 전설이 되다’와는 180도 다른 캐릭터를 보여주었다. 엑시터시 상태의 표정을 짓는 것까지 포함해 모든 걸 쏟아부어 촬영후 탈진했다는 후문이다.
‘동궁’에는 다양한 크리처, 귀매가 나오는데 원전의 특징을 따르면서도 변용됐다. 그 중 구천을 따라다니는 작은 귀매로, 주인공과 대립하면서 감정적으로 교류하는 꺼먹살이는 독특한 비주얼과 사랑스러운 매력으로 ‘조선 그루트’라는 별명까지 얻으며 키링 등 굿즈로도 인기를 얻고 있다.
최정규 감독은 ‘동궁’이 기존 사극과 차별화되는 포인트로, 구천과 생강이 모험하며 난관을 뚫고나가는 어드밴처 호러 판타지 액션이라는 점을 강조했다. 그래서 보는 사람이 좀 더 재밌고 두근두근함을 느꼈으면 하는 바람을 가지고 있다고 했다. 해외에서는 분명 생소한 문화권 이야기가 포함됐겠지만, 표현은 보편적이고, 직관적인 방식을 사용했다는 것이다.
최정규 감독의 기획 연출 의도에 부합했는지, ‘동궁’의 해외반응은 매우 좋은 편이다. '기묘한 이야기'와 '콘스탄틴' 등과 비교하는 반응도 나왔다. 해외 언론에서는 “흥미로운 미스터리와 압도적인 영상미, 탄탄한 세계관은 시청자를 단숨에 사로잡는다.”(Decider), “‘동궁’이 구현해 낸 독보적인 세계관은 단연 이 작품의 최고 장점이자 관전 포인트다”(TIME) “다양한 초자연적 존재들의 디자인과 구천이 오가는 귀의 세계를 정교하게 구현한 시각효과는 작품의 볼거리를 한층 풍성하게 완성하며, 압도적인 스펙터클을 선사한다”(South China Morning Post) 등의 반응을 내보냈다.
넷플릭스를 통해 한국 사극을 시청한 외국인들 사이에서는 첫 번째 사극인 ‘킹덤’을 보면서 조선시대 모자인 ‘갓’이 큰 화제가 됐다. 서사구조도 기이한 역병에 신음하는 조선시대에 세자가 악에 맞서 백성을 구원하는 이야기가 진행되면서, 서양보다 훨씬 스피디하게 움직이는 조선시대 좀비들이 돋보였다. 궁내에 귀신과 한이 서려있는 상황을 풀어헤쳐나가는 ‘동궁’은 또 다른 오컬트 사극으로 소비되고 있는 것.
이밖에도 최정규 감독은 “‘동궁’의 남자주인공 구천 역의 남주혁은 눈 때문에 잘생기고 멋있다. 많은 얘기를 하는 캐릭터가 아니어서 진심을 표현할 수 있을 것 같아 캐스팅했다. 장영남은 나이가 안맞는 배역인데, 너무 욕심이 나 역할을 부탁했다”고 캐스팅 비하인드를 들려줬다.
/서병기 기자(wp@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