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이윤 기자] 남의 가정이 무너지는 순간이 ‘예능’이 됐다. 부부가 서로에게 고성을 지르고 폭언을 쏟아낼수록 화면은 더 화려해지고 출연자가 눈물을 흘리거나 감정을 폭발시키면 어김없이 다음 회 예고편의 핵심 장면이 된다. 한 가족에게는 평생 기억될 상처가 방송에서는 시청률을 끌어올리는 ‘킬링 포인트’로 소비되는 모습이다.
이혼과 부부 갈등을 소재로 한 방송 프로그램이 늘어나면서 가족 해체와 개인의 상처까지 지나치게 오락화하는 것 아니냐는 지적이 나온다.
특히 일부 프로그램에서는 이혼 전 갈등보다 이혼 이후 달라진 외모와 자유로운 생활, 새로운 연애와 사회적 성공을 집중적으로 조명하면서 이혼을 마치 답답했던 현실에서 벗어나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신데렐라 서사’처럼 소비하는 경향까지 나타난다.
물론 이혼 자체를 부정적으로 바라볼 이유는 없다. 폭력과 학대, 반복되는 갈등 등 혼인관계를 유지하기 어려운 상황에서 이혼은 개인의 삶과 존엄을 지키기 위한 선택이 될 수 있다. 다양한 가족 형태 역시 존중받아야 한다.
문제는 이혼이 아니라 이혼을 팔아 시청률을 만드는 방식이다.
현실의 이혼에는 재산분할과 채무, 주거 문제, 양육비, 자녀의 정서적 혼란, 부모와 자녀의 관계 변화 등 복잡한 문제가 뒤따른다. 방송처럼 마지막 회가 끝나고 자막이 올라간다고 모든 문제가 사라지는 것도 아니다. 자녀가 있는 부부라면 부부관계는 끝나더라도 부모로서의 책임은 계속된다.

그러나 이런 현실은 시청률을 만들기 어렵다. 대신 고성과 폭언, 외도 의혹과 경제적 갈등, 눈물과 충돌이 전면에 등장한다. 누가 더 잘못했는지를 놓고 출연진과 시청자가 편을 나누고 방송 직후 온라인 공간에서는 다시 ‘누가 가해자인가’를 놓고 또 다른 싸움이 벌어진다.
부부의 복잡한 삶이 결국 한 편의 막장 드라마처럼 소비되는 셈이다.
더 심각한 문제는 자극의 경쟁이 이혼 프로그램에만 머물지 않는다는 점이다. 일부 연애·관찰·서바이벌 예능과 온라인 콘텐츠에서는 욕설과 모욕적인 발언, 위압적인 태도와 공격적인 행동이 이른바 ‘센 캐릭터’를 만드는 요소로 활용된다.
문신이나 특정 외모를 문제 삼자는 이야기가 아니다. 문신은 개인의 표현이고 취향이다. 문제는 제작진이 특정 외형과 욕설, 위압적 행동, 폭력적인 이미지를 의도적으로 결합해 ‘불량한 캐릭터’를 만들고 이를 화제성을 높이는 상품으로 소비하는 방식이다.
더 많이 욕할수록 화면에 오래 등장하고 더 크게 싸울수록 예고편에 등장한다. 상대방을 무시하거나 조롱하는 발언도 ‘사이다’라는 이름으로 포장된다. 사회생활이었다면 비판받았을 행동이 방송에서는 ‘캐릭터가 확실하다’는 평가를 받고 논란이 커질수록 출연자의 이름은 포털과 SNS를 장식한다.
욕설이 화제성이 되고 싸움이 조회수가 되며 논란이 유명세로 연결되는 기묘한 구조다.
결국 방송이 의도했든 그렇지 않았든 ‘문제를 일으켜도 유명해지면 성공할 수 있다’는 잘못된 성공 공식을 보여줄 위험성을 무시하기 어렵다.
특히 청소년에게 미치는 영향을 가볍게 볼 수 없다.
TV 본방송에는 시청등급이라도 붙어 있지만 SNS와 온라인 동영상 플랫폼의 환경은 다르다. 한 시간짜리 방송에서 가장 자극적인 20~30초만 잘라낸 영상이 숏폼으로 유통된다. 부부가 왜 싸웠는지, 출연자가 이후 어떤 반성을 했는지, 제작진이 어떤 설명을 붙였는지는 사라진다.
욕설 한마디와 고성, 싸움, 충격적인 발언만 남는다.
그리고 그것이 수십만, 수백만 조회수를 기록한다.
조회수가 올라가면 비슷한 영상이 다시 만들어진다. 제목은 더 강해지고 썸네일은 더 자극적으로 변한다. ‘충격’, ‘역대급’, ‘분노’, ‘폭발’, ‘경악’ 같은 표현이 경쟁적으로 붙는다. 제작자는 더 강한 장면을 찾고 플랫폼의 추천 시스템은 이용자의 반응이 높은 콘텐츠를 확산시킨다.
제작자는 자극을 팔고, 플랫폼은 자극을 증폭시키며, 시청자는 자극을 클릭한다.
그 사이 청소년도 같은 영상을 본다.
문제는 청소년이 화면 속 모든 상황을 성인과 동일한 방식으로 받아들인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데 있다. 가치관과 인간관계에 대한 인식이 형성되는 시기에 반복적으로 접하는 언어와 행동은 사회적 학습의 한 요소가 될 수 있다.
갈등이 발생하면 대화보다 욕설을 하고, 상대방을 존중하기보다 공개적으로 망신을 주며, 조롱과 공격적인 언행을 해야 ‘사이다’라는 환호를 받는 모습이 반복된다면 방송이 전달하는 메시지는 결코 가볍지 않다.
욕을 하면 사람들이 관심을 보인다. 싸우면 영상 조회수가 올라간다. 논란을 만들면 유명해진다. 유명해지면 또 다른 프로그램에 출연한다.
방송이 직접 청소년에게 “욕하고 싸우라”고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그러나 문화는 반드시 교과서처럼 문장으로 가르치는 것이 아니다. 반복해서 보여주고, 박수를 보내고, 유명하게 만들고, 경제적 보상까지 뒤따르는 모습을 통해 사회가 무엇에 관심을 주는지를 보여준다.
그렇다면 제작자 역시 “시청자가 원해서 만든다”는 말 뒤에만 숨어서는 안 된다.
시청자는 채널을 선택하지만 무엇을 촬영하고 어떤 장면을 편집할지는 제작자가 결정한다. 수시간의 촬영분 가운데 어떤 30분을 방송할지, 그중 어느 30초를 예고편으로 만들지, 출연자의 어떤 말을 크게 자막으로 띄울지 결정하는 것도 제작진이다.
결국 자극은 우연히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상당 부분 선택되고 편집되고 상품화된다.
물론 시청자 역시 책임에서 자유롭지 않다. 자극적인 장면을 욕하면서도 클릭하고, 논란을 비판하면서 영상을 공유하고, 다음 회에는 어떤 싸움이 벌어질지 기다린다면 시장은 이를 ‘시청자의 선택’으로 받아들인다.
불편하다고 말하면서 계속 보는 역설이다.
방송사는 시청률을 원하고 제작사는 화제성을 원한다. 플랫폼은 체류시간과 조회수를 원하며 출연자는 유명세를 얻는다. 시청자는 더 강한 이야기를 요구한다.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지는 순간 한 가족의 파경도, 한 사람의 눈물도, 욕설도, 싸움도 모두 콘텐츠가 된다.
그렇다면 이제 질문해야 한다.
사람의 불행은 어디까지 예능이 될 수 있는가
가족이 무너지는 장면을 반복해서 보여주면서 이혼 이후의 화려한 삶만 강조한다면 그것은 현실을 보여주는 것인가, 이혼 판타지를 판매하는 것인가. 욕설과 공격적인 행동을 반복적으로 노출하면서 ‘센 캐릭터’라고 박수를 친다면 그것은 다양성인가, 불량한 행동의 상품화인가
그리고 무엇보다 그 장면을 보고 있는 청소년에게 어른들은 무엇을 보여주고 있는가
이혼은 죄가 아니다. 동시에 신데렐라의 유리구두도 아니다. 욕설은 개성이 아니고 상대방을 모욕하는 행동은 카리스마가 아니다. 폭력적이고 위압적인 행동 역시 높은 조회수를 기록했다는 이유만으로 정당화될 수 없다.
표현의 자유와 방송의 재미는 보장돼야 한다. 하지만 자유에는 책임이 따른다. 특히 수백만 명에게 동시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방송과 플랫폼이라면 그 책임은 더욱 무겁다.
시청률 1%와 조회수 100만 회가 성공의 기준이 되는 동안 정작 놓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 돌아볼 시점이다.
오늘 방송에서 욕설을 쏟아낸 출연자는 다음 주 다른 프로그램의 인기 출연자가 될 수 있다. 파경을 겪은 출연자는 새로운 인생을 시작하는 스타로 등장할 수도 있다. 그것 자체가 잘못은 아니다.
그러나 그 과정에서 현실의 책임과 상처는 지워지고 오직 자극과 성공만 남는다면 이야기가 달라진다.
타인의 불행을 팔아 시청률을 만들고, 욕설과 충돌을 팔아 조회수를 만들면서 청소년 보호를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
제작자는 시청자 탓을 하고 시청자는 제작자 탓을 할 일이 아니다.
자극을 만든 사람도, 그것을 확산시킨 플랫폼도, 열광하며 소비한 시청자도 이 문화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않다.
시청률은 떨어지면 다시 올릴 수 있다. 조회수도 새로운 콘텐츠로 다시 만들 수 있다.
그러나 한 세대가 미디어를 통해 배운 언어와 인간관계의 방식은 쉽게 되돌리기 어렵다.
방송이 정말 두려워해야 할 것은 시청률 하락이 아니다. 시청률을 위해 지켜야 할 선까지 무너뜨렸다는 사회의 평가다.
/수원=이윤 기자(uno29@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