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뉴스24 박지은 기자] 히트펌프 한 대를 가정에 설치하려면 실외기만 가져다 놓는 것으로 끝나지 않는다. 집 안으로 온수를 보내는 배관과 물탱크, 난방용 버퍼탱크가 필요하다. 태양광 등과 연계하면 전력 제어 설비도 붙는다.
집마다 구조가 다른 만큼 이를 설계하고 시공할 전문 인력도 필요하다. 시장이 커지면 삼성전자와 LG전자 같은 완제품 업체뿐 아니라 배관·탱크·부품업체, 설치·시공업체, 유지·보수 인력까지 새로운 시장이 생기는 셈이다.

신문선 삼성전자 DA사업부 상무는 10일 제주 애월읍에 자리한 히트펌프 실증 가정에서 기자들과 만나 "(시장이 커지면) 히트펌프 전문가라는 새로운 직종도 생길 수 있다"며 유럽에서는 이미 히트펌프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 생태계가 형성되고 있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유럽히트펌프협회(EHPA)가 지난 1월 발표한 보고서를 살펴보면 유럽 히트펌프 산업의 직간접 일자리는 약 43만3000개에 달한다. 히트펌프와 관련 부품 생산거점도 약 300곳이다. 유럽에서 설치되는 히트펌프의 최대 70%가 현지에서 조립된다.
시장이 커지면서 제품을 제대로 설치할 숙련 인력을 확보하는 것도 과제가 됐다. 국제에너지기구(IEA)는 히트펌프 확산 과정에서 설치기사 부족을 주요 병목 가운데 하나로 지목하고 기존 난방기사와 배관공, 전기기사 등을 전문인력으로 교육할 필요가 있다고 분석했다.
각국 정부가 보조금으로 초기 수요를 만드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영국은 공기열 히트펌프 설치에 7500파운드를 지원하고 있다. 도시가스망 밖에서 기름이나 액화석유가스(LPG)로 난방하는 일부 가구에는 지원액이 최대 9000파운드까지 올라간다.
한국도 이제 초기 시장을 만들기 시작했다. 정부의 2026년 난방 전기화 사업과 연계해 제주도가 가장 먼저 대규모 보급에 나섰다. 올해 상반기 1042가구에 이어 하반기 1418가구를 추가해 총 2460가구에 히트펌프를 보급할 계획이다.

지원 대상은 3킬로와트(kW) 이상 태양광 설비를 갖춘 단독주택 가운데 가스·기름보일러를 공기열 히트펌프로 교체하는 가구다. 사업비는 가구당 최대 1400만원이다. 국비와 도비로 70%, 최대 980만원을 지원해 소비자는 최대 420만원을 부담한다. 히트펌프뿐 아니라 300~500리터 축열조와 가상발전소(VPP) 설비도 사업에 포함된다.
신 상무는 "현재 수준의 산업 기반에서는 보조금 없이는 시장이 작동하기 어렵다"며 "유럽도 처음에는 높은 수준의 보조금을 지원하다 시장이 커지면서 점차 낮춰왔다"고 말했다.
보조금이 초기 수요를 만들고 수요가 부품과 설치·시공, 유지보수 업체와 전문인력을 키운 뒤 규모가 커지면서 가격을 낮추는 구조다. 제주에서 시작된 히트펌프 보급사업이 국내에서도 이런 생태계를 만들 수 있을지가 관건이다.
/제주=박지은 기자(qqji0516@inews24.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