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아연, '크루서블' 무단 사용 고발…영풍·MBK '최대주주 권한' 어디까

고려아연, '크루서블' 무단 사용 고발…영풍·MBK '최대주주 권한' 어디까

"정당한 주주활동"vs"사업 주체 혼선 초래"
"주주권과 경영권은 별개…장세환·윤종하 대외활동 자격 따져봐야"

[아이뉴스24 양길모 기자] 고려아연이 미국 통합제련소 사업인 ‘프로젝트 크루서블(Project Crucible)’의 명칭과 표지를 무단으로 사용했다며 영풍·MBK파트너스 측을 경찰에 고발하면서, 최대주주 측의 주주활동 범위와 대외적인 사업 관여 자격을 둘러싼 논란이 커지고 있다.

고려아연 핵심 광물 미국 제련소 [사진=고려아연]

특히 미국 현지 행사에서 고려아연의 핵심 사업을 설명한 윤종하 MBK파트너스 부회장과 장세환 영풍문고홀딩스 대표가 어떤 자격으로 행사에 참여했는지를 두고도 논쟁이 이어지고 있다. 쟁점이 단순한 명칭 사용을 넘어 최대주주가 피투자회사 사업에 어디까지 관여할 수 있는지로 확대되는 모습이다.

7일 업계에 따르면 고려아연은 지난 5일 한국기업투자홀딩스와 영풍, 윤종하 부회장, 장세환 대표 등을 부정경쟁방지법 위반 및 업무방해 혐의로 서울 종로경찰서에 고발했다.

고려아연은 영풍·MBK 측이 회사와 사전 협의 없이 미국 통합제련소 사업의 명칭인 ‘프로젝트 크루서블’을 사용해 도메인을 등록하고 현지 행사를 개최했다고 주장하고 있다. 이 과정에서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관계자들에게 사업 주체에 대한 혼선을 초래할 수 있었다는 것이 고려아연 측의 설명이다.

고려아연에 따르면 영풍·MBK 측은 지난 6월 ‘crucibleTN.com’이라는 도메인을 등록했다. 이후 7월에는 테네시주 정부 관계자와 지역 인사, 언론인 등을 대상으로 프로젝트 크루서블 명칭을 내건 리셉션 초청장을 발송했고, 같은 달 9일 미국 내슈빌 허미티지 호텔에서 행사를 진행했다.

최윤범 고려아연 회장(왼쪽 두번째)이 미국 통합제련소 부지를 둘러보는 모습

반면 영풍·MBK 측은 해당 활동이 정당한 주주권 행사라는 입장이다. 이들은 고려아연의 최대주주 그룹으로서 회사 기업가치에 중대한 영향을 미치는 미국 핵심광물 사업에 대해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투자자 등과 소통하는 것은 당연한 주주활동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재계와 법조계 일각에서는 최대주주의 주주권과 회사의 경영·대표 권한은 구분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상법상 회사의 대표 권한은 원칙적으로 이사회가 선임한 대표이사에게 있고, 주요 업무집행 역시 이사회의 의사결정 영역에 속한다. 이에 따라 최대주주라는 이유만으로 주주 또는 그 관계자가 회사의 특정 사업에 직접 관여하거나 회사를 대표해 대외적인 활동을 할 수 있는 것은 아니라는 지적이 나온다.

윤종하 MBK 파트너스 부회장이 6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의 중소벤처기업부에 대한 국정감사에서 의원 질의에 답하고 있다. [사진=김성진 기자]

특히 장세환 대표의 역할이 도마에 올랐다. 장 대표는 영풍문고홀딩스 대표이지만 고려아연의 주주인 영풍의 공식 임원은 아니다.

그럼에도 미국 현지 행사에서 고려아연의 프로젝트를 설명하고 영풍의 기술을 프로젝트와 연결해 소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어떤 공식적인 권한과 자격으로 사업을 대외적으로 설명했는지를 두고 의문이 제기되고 있다.

윤종하 부회장의 경우 고려아연 주주인 한국기업투자홀딩스의 기타비상무이사라는 점에서 장 대표와는 차이가 있다. 그러나 법조계에서는 윤 부회장 역시 고려아연의 경영진이 아닌 만큼 고려아연의 경영이나 특정 사업에 직접 관여할 권한이 있는지는 별개의 문제라는 지적이 나온다.

결국 이번 논란의 핵심은 최대주주의 주주활동이 회사의 경영과 사업 수행 영역까지 확장될 수 있느냐에 있다.

최대주주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해외 정부나 투자자들과 소통하는 것 자체는 가능하지만, 실제 사업 주체인 고려아연이나 이사회와 별도 협의 없이 회사의 핵심 사업을 대외적으로 홍보할 경우 다른 주주와 투자자, 현지 정부 및 지역사회에 혼선을 줄 수 있다는 것이다.

재계 관계자는 "최대주주가 기업가치 제고를 위해 해외 정부나 투자자들과 소통할 수는 있다"면서도 "장세환 대표의 경우 영풍의 공식 임원도 아닌 만큼 오너 일가라는 이유만으로 나섰다는 비판에서는 자유롭기 어려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무엇보다 이 같은 활동이 다른 주주나 투자자, 미국 정부와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게 혼란을 줄 수 있다는 점이 문제"라며 "최대주주라는 지위를 내세워 다른 주주의 권리나 회사 이사회의 권한을 무시하는 것으로 비칠 가능성도 있다"고 지적했다.

/양길모 기자(dios102@inews24.com)